취업 시장의 정의

 

나는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소위 '취업 준비생'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들은 1년 넘게 취업을 준비 중인 백수가 둘, 계약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할 기간제 교사가 하나, 올해 대학원을 마치면 취업을 해야 할 대학원생이 하나다.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들인데, 모이기만 하면 취업 얘기를 한 지도 오래다. 한 친구의 생일을 맞아 모인 엊그제의 술자리에서도 취업 이야기가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1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친구가 전날 가고 싶은 회사의 인턴직 실무면접을 하루 종일 보고 왔기 때문이다. 친구는 전날 자기가 어떻게 면접을 보았는지 이야기 했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주위의 취업 사례로, 또 취업 시장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번졌다.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마음 한 켠으로는 쪽글을 쓸 걱정을 하고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취업 시장은 정의로운가, 취업 시장의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새 나는 취업 생각 밖에는 하고 있지 않은 시시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취업 시장의 정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취업 시장의 정의롭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 해야 한다. 취업 시장의 정의롭지 않은 바로 그 부분이 취업 시장이 정의로워야 할 바로 그 부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취업 시장의 정의롭지 않은 세 부분, 고용주(기업)와 취업 준비생의 관계, 취업 시장에서의 성 평등, 빽과 취업의 상관 관계를 이야기함으로써 취업 시장의 정의란 무엇인지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철저한 갑과 을

 

이 글을 읽는 어떤 사람에게는 취업 시장이라는 말부터가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업 시장이라는 말은 취업 준비생이나 기업 모두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다. 실제로 나를 비롯한 취업 준비생들은 우리를 소비해 줄 기업의 선택을 바라면서 취업 시장의 때깔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기업은 이 지원자가 때깔만 그럴듯하고 알맹이는 없을까 걱정하며 4,5 차에 이르는 길고 긴 면접이나 몇 박 몇 일의 합숙 면접, 심지어는 한 두 달의 인턴 기간을 거치는 등 물건을 속지 않고 사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문제는 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전혀 맞지 않다는 데 있다. 양질의 공급은 넘쳐 나는 데 비해 신입 사원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다. 긴 경기 침체로 잘 다니던 직원마저 내쫓는 일이 비일비재다.(경기회복 기대 속에 기업들 구조조정 '칼바람'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40527082008223) 능력이 좋다고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이 회사 저 회사에서 모셔가겠다 하는 인재의 존재는 먼 옛날 이야기다. 능력이 좋은 사람도 한 군데만 최종 합격하면 다행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과 취업 준비생의 관계는 철저히 갑과 을 관계가 된다. 기업이 부당한 대우를 해도 다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의롭지 못한 취업 시장의 한 단면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자기 소개서에 한 줄 더 적기 위해 대학생 시절부터 기업을 위해 무급으로 일한다. 홍보 대사나 서포터즈 같은 이름 아래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자신과 전혀 상관도 없는 기업의 홍보글을 올린다. 공모전은 또 어떠한가. 취업 준비생들은 기업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를 기꺼이 빼앗긴다. 아이디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는 기업은 널렸다. 공모전에서는 당선 시키지 않아 놓고(,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아 놓고) 공모전에 낸 아이디어는 써 먹는다. 무급 인턴 제도는 어떠한가. 기업은 아쉬울 것 많은 취업 지원생들을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뽑아 놓고 돈도 한 푼 주지 않으면서,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붙잠아 두고 복사를 시키고 잡무를 시킨다. 그리고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말한다. “양적인 스펙이 아니라, 남과 다른 스토리가 중요하다. 그러니 남과는 다른 한 줄을 만들어라. (예를 들면 인턴 같은 것!)”

하지만 이 정의롭지 않은 취업 시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취업 준비생 당사자는 언젠가는 취업을 해야 할 철저한 ''이기 때문이고, 이 과정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사람에게는 이미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취업 지원팀 행사에 여학생만 바글바글한 이유

 

남녀 평등에 있어 역차별이 만연한 사회라 한다. 남성이 힘든 사회이고, 이에 대한 반증으로 남성의 여성 혐오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취업 시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시기상조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취업 시장에 들어오면 여성이 남성보다 취업에 있어 얼마나 불리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같은 학교 같은 과 CC인 친구 커플은 함께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영어 점수니 학점이니 교환 학생 경험이니 모든 수치화된 스펙이 여자가 남자 보다 더 뛰어난데도, 서류 통과율은 남자가 훨씬 높다. 같은 회사를 써도 그렇다. 학교 취업 지원팀에서 모집하는 취업 멘토링 행사나 취업 박람회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훨씬 많다. 남자들은 여자보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쉽기 때문에 그런 행사를 굳이 찾아다니지 않는 것이다. 내가 면접을 보러 갔던 한 방송국은 대놓고 나에게여자는 남자보다 우리 회사에서 버티기 힘든데, 우리 회사 들어오면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럴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했다. 유명한 가방 회사인 MCM의 여성 대표는 자신이 여자지만 여자를 뽑고 싶지 않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결혼하면 육아와 집안일을 아직까지 여성이 전담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관습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하지도 않으면서 여성은 태생적으로 이기적이고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존재라고 비난하는 시각이 아직도 만연하다. 이것은 분명 정의롭지 않은 취업 시장의 또 다른 단면이다. 기업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데 사용하는 논리들이 얼마나 정의롭지 않은 것인가는 여성을 다른 집단으로 대체해 말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리 회사에 여태까지 들어왔던 전라도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었으니, 우리 회사는 전라도 사람을 뽑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여태까지 일했던 흑인은 모두 참을성이 없어 금방 퇴사했으니, 우리 회사는 흑인을 뽑고 싶지 않습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다른 정의롭지 못한 취업 시장의 문제들과는 달리 취업 시장에서의 성 평등 문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 가는 사회 변동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의 문제로서, 점점 더 나아져 가고 있으며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빽 없는 서러움

 

. 유행 지난 단어처럼 들리지만 아직도 빽의 힘은 존재한다. 빽이란 취업이나 승진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외부적 요소를 뜻한다. 과거처럼 여러 종류의 빽이 만연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빽의 힘은 존재한다. 하지만 요즘 빽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 예전 세대의 빽처럼 공공연하지는 않다. 아버지가 특정 기업의 고위임원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친구가, 주위에서 보기엔 별 준비도 안 하고 경쟁자들보다 훨씬 부족한 스펙으로 그 기업에 한 번에 입사한다거나, 석사 이상만 뽑기로 유명한 정부 부처의 특채에 그 부처 고위직 아버지를 둔 친구가 별 특이한 스펙도 없는 학부 졸업생 신분으로 한 번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일들. 물론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일들이다. 그래서 빽 없는 취업 준비생인 나와 내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찌질하게 동창들에 대한 의혹만 제기하고 만다. 물론 공공연하게 자기가 빽으로 들어갔음을 말하는 순수한 동창들도 가끔은 있다. 빽을 써서 자녀를 취업시킨 고위 공무원들의 일은 때때로 기사화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이력서 속 부모님 직업을 기입하라는 칸과 함께 나를 비롯한 빽 없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박탈감을 선사한다. 취업 준비를 위해 마음을 다잡으면서요즘 세상에 빽이 어딨어.”하다가도 대기업 이력서에 부모님 직업을 쓸 때면빽을 안 본다면 이 칸은 대체 왜 있는 걸까.”하는 의혹이 든다. 입사 지원서의 부모님 직업란은 정의로운 것일까 한탄하며 비슷한 입장의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지만, 이것은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너무도 거대한 불의다. 그리고 그런 현실 속에서너라면 빽이 있으면, 그 빽 안쓰겠냐?” 하는 친구들의 자조 섞인 이야기를 듣자면 빽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내 마음은 더 불편해진다. “그래, 있으면 썼겠지.”

 

 

취업 시장의 정의

 

다시 돌아와 취업 시장의 정의를 이야기하자면, 취업 시장에서 구현되어야 할 정의란 '각 지원자가 능력에 맞게 평가 받고 취업을 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정의는 실제로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취업 시장은 취업 시장의 ''인 취업 준비생들이 나서지 못할 만큼만 부당하고, 여성 지원자들이 여자라서 떨어지더라도 여자라서 떨어졌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을 만큼 교묘하고, 빽의 존재는 있더라도 웬만해서는 외부에서 의혹을 제기할 만한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이러한 취업 시장의 불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기업 채용의 불투명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기업의 채용은 채용 과정이 외부의 감시를 받지 않고, 특정 기업에서 떨어지는 지원자는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의 정책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옳은 것일까? 기업의 이 같이 닫힌 채용 구조는 본 글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문제 뿐 아니라 다른 부정을 용납할 여지를 언제나 내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부조리를 알면서도 감히 취업 시장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다. 게다가 정부가 취업 시장의 부당함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자본의 힘은 정치의 힘을 넘어섰다. 민주화 이후 정치적 자유가 신장 되어 대학생 신분으로 정부에 돌을 던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내가 정치적으로 부당함을 느낄 때에도 정부에 돌 던지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정치 운동하는 나를 못마땅해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가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나 정보과 형사 혹은 국정원이 아니다. 바로 기업이다. 기업 그 중에서도 대다수의 취업 준비생들이 선망하는 일부 기업들이 지금 같이 정부를 넘어서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한, 취업 시장의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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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강정인 교수님 '정치 사상의 이해' 수업에서

'00의 정의(00는 자유)'라는 쪽글을 쓰라 하셔서 썼던 쪽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네. 사회도, 내 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