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캡처본을 보면서 우리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친엄마와 친아빠가 이혼해서 어린 시절에 친엄마를 거의 못 만나고
친아빠와 새엄마 아래서 자랐다.
물론 자기 자식이 아니라도 자기 자식처럼 사랑을 주는 좋은 새엄마들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엄마의 새엄마는 그랬던 것 같진 않다.
그리고 엄마는 형제들도 매우 많았다.
나는 아직도 이모와 외삼촌을 다 합치면 몇 명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거의 막내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 모습에 우리 엄마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얼마 전에 뭘 좀 찾느라 엄마 화장대 서랍을 열었는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내게 써주신 편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식이 많았고, 그래서 손주도 무척 많았다.
이모와 외삼촌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내가
외사촌들이 몇 명인지 헤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튼 내가 당장 머릿 속에 생각나는 외사촌들만 해도 족히 열 다섯 명은 된다.
그 중에서도 나는 막내에서 두번째 딸의 막내 딸이었기 때문에
내가 어렸을 때도 할아버지는 이미 80대셔서
귀가 잘 안들리셨고 항상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고 다니셔서
나와 막 이렇다할 엄청난 추억이 있지도 않다.
근데 어느 날은 엄마가 할아버지께 부탁했었나
아니면 엄마와 할아버지가 통화를 할 때 옆에서 엄마한테 부탁해서
할아버지한테 편지를 받고 싶다고 했던가
(우표를 붙여 편지 주고 받는 걸 처음 알고
한동안 누구와도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 난리였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먼저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곧 할아버지가 나에게 편지를 쓰셨다.
달력을 찢어 뒷면에 쓰신 편지였다.
내 이름이 맨 위에 적혀있었다. OO 보아라. 하고.
그리고 짧은 내용이었지만 할아버지의 흔들리고 큼직한 글씨가
참 따뜻한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편지는, 나에게도 15명의 손주 중 한 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손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줘서
소중한 편지였는데.
엄마는 내 편지를 20년이 넘게 서랍 속에 소중하게 간직해둔 것이었다.
그 편지를 보면서 수많은 자식 중의 한 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자식이 된 기분을 느끼셨으리라.
형제가 단둘이어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잘 받고 자랄 수 있던 나와 달리
우리 엄마는 엄마의 사랑은 거의 받을 수 없었고,
아빠의 사랑을 수많은 형제들과 나눠 받으며 자랐을텐데도
자식을 받은 사랑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종종 궁금했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대놓고 애정표현을 하는 분은 아니셨던 것 같고
또 자식을 챙기면서 새 부인의 눈치도 보신 것 같지만
그래도 무심한듯 다정하게 엄마를 챙기셨던 것 같다.
가끔 엄마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던 이야기를 할 때,
새벽에 과일 같은 걸 먹으라고 엄마 머리 맡에 조용히 두고 간 얘기 같은 걸 할 때에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나와 언니에게 줄 사랑이 생겨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엄마나 본문의 주인공을 보면서
사람은 꼭 엄청난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만 잘 자랄 수 있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사랑의 기억만 있어도 의지에 따라 잘 자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와 아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지만
엄마가 엄마의 엄마와 아빠에게 받은 사랑의 기억이
내가 들은 것보다는 더 여러 개 있길 바라는
그래서 엄마의 유년시절이 좀 더 따뜻했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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