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백신 1차 조차 맞지 않은 미접종자이지만
내가 미접종자일 수 있는 이유는
백신을 맞지 않아도 생계가 위협받지 않아서다.

의료기관 종사자도, 교육계나 서비스업 종사자도 아니고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제하는 구글이나 삼성 같은 회사에 다니지도 않는다.

다니던 회사는 2년 전 때려치고 이제는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로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백신을 강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내가 다니던 회사도 백신 접종을 전혀 강제하지 않아서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 몇몇도 백신 미접종 상태지만)

그래서 나는 운 좋게도 백신 접종 여부를 온전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대로 미접종 상태로 잘 살아가고 있다.

돈 많은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일 거다. 골프장은 4단계든 언제든 백신패스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가 있지.
밥벌이의 권력, 생계의 권력이 운 좋게도 스스로에게 있는 사람은 백신 접종 여부를 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 '권력'은 나처럼 사회적이기도 하지만, 보통 그보다는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 돈이 있으면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직장에 다녀도 거부하고 그만두면 되니까.

자가격리나 재택치료의 경우도 마찬가지.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방역정책도 경제적인 계층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상당히 달라진다. 영등포 쪽방이나 노량진 고시원에서 자가격리, 재택치료 하는 것과 한강이 보이는 저 어디 성동구 갤러리아포레 80평이나, 그렇게까진 아니어도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그럭저럭 아파트에서 자가격리, 재택치료하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다.

내일이나 모레쯤 또 다른 방역 정책이 발표된단다.
마트에도 방역패스를 도입할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미접종자는 식당이나 카페 출입을 1인도 허용 안할 수도 있다는 뉴스도 나온다.
미접종자 차별 정책이 본격화된 세상은 모든 걸 사람 시켜 할 수 있는 청담동 사모님과,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나와, 혼자 사는 영등포 쪽방촌 노인이나 노량진 고시원의 수험생에게 모두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가난하면 백신을 맞아야 한다. 가족이 없어도 그렇다. 사는 집의 환경이 좋지 않다면 자가격리나 재택치료는 훨씬 괴로울 것이다.

요즘은 미접종자가 PCR 음성 확인서를 받으려면 선별진료소 줄을 1시간은 서야 하는데, 노인들이 그 줄을 설 수 있을까? 설 수는 있어도 젊은이들과 괴로움의 정도는 비교할 수 없을테지.

미접종자 차별 (a.k.a 방역패스) 정책은 경제적으로 가난할수록, 사회적으로 고립될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더 강하게 개인의 자유를 빼앗겠지. 코로나19가 그러는 것처럼. 무전강제, 유전자유.

난 아직까지는 운이 좋다. 언젠가 내가 백신을 맞을 수도 있을까? 아직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내가 백신을 맞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내 선택일 수 있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