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게 유전인지 환경적인 특성인지 때로 궁금해진다. 우리 아빠는 유난히도 음악을 좋아하셨다. 엄마의 전문분야가 문학과 연극이라면 아빠는 철학과 음악과 영화였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소녀와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 사이에서 태어난 셈이다. 아쉽게도 집에 수없이 쌓여있던 문학 계간지와 오래된 시집 소설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소녀로 자라나지 못했다. 엄마는 원체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도 좋아하게 만드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에 반해 아빠는 다르셨다. 젊은 시절 아빠는 백만원에 육박하는 인켈 전축을 사셨다. 아빠는 당시 친구들이랑 당구칠 돈도 없어 엄마한테 당구비를 꿔서 당구쳤던 학생이었다. 우리가 아직 어렸던 때에는 애들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야 한다며 압구정 현대 백화점에 가서 피아노를 사오셨다고 한다. 그 때 우리 아빠는 백수였다. 


이 오디오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유난한 우리아빠의 '음악열'의 산물 중 하나다. 우리언니는 마이마이가 처음 나왔을 때 또래 중에 제일 먼저 마이마이를 가지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같은 방을 썼는데, 우리의 방에는 언니의 오디오도 있었다. 물론 아빠가 사주신 거였다. 우리는 밤마다 그 오디오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삼학년쯤 되어 언니와 방을 따로 쓰게 되자 아빠가 이제 너도 오디오가 필요하겠다며 나를 데리고 용산으로 가셨다. 아빠는 용산에서 내가 고른 CD가 세 개 들어갈 수 있는 인켈 오디오를 사주셨다. 헬로 키티가 그려진 것과 같은 오디오를 사려 하면 말리고는 음질 좋은 걸 사야한다는 아빠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CD를 세 개나 넣어야 하는 시스템이 버거웠는지 나의 첫 인켈 오디오는 CD부분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고장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그 오디오는 우리 가게의 라디오로 전락하고 아빠와 나는 또 다시 용산에 갔다.


그 때가 중학교 일이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용산에서 내가 고른 나의 두 번째 오디오가 바로 저 오디오, 소니 오디오이다. 당시 용산에서 일본 보따리 장수가 가져온(지금 생각해보면 정식 수입이 아닌) 몇 개 없는 오디오라고 해서 꽤 비싼 값을 주고 샀었다. 내가 저 오디오에 첫 눈에 반해서 아빠를 졸랐고 아빠는 고민하다가 오디오를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으로는 이 녀석의 수려한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 녀석은 cd를 넣고 꺼내기 위해 cd부분을 열 때가 압권이기 때문이다. 마치 트랜스포머와 같이...는 좀 오버고 오픈카의 뚜껑이 열리듯이 혹은 아름다운 미녀가 혀를 내밀듯이 유유하게 cd창이 열리는 모습은 십 년 가까이 보아도 여전히 아름답다. 자기위해 방의 불을 껐을 때 오디오에서 나오는 오렌지 불빛도 아름답다.


게다가 이 오디오는 얼굴값 한 번 하지 않았다. 사용한지 10년가까이 잔고장 한 번 없었다. 이쯤되니 소니 사를 찬양해야 할 것만 같다. 여전히 좋은 음질으로 cd를 재생한다. 나는 이 오디오로 라디오를 들었고 cd를 들었다. 이 녀석과 함께 공부했고 아침에 학교갈 준비를 했다. 힘든 새벽에도 나와 함께였다. 이 오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와 말 소리로 사춘기를 보냈다. 그런데 여전히 이 녀석은 멀쩡하다. 산 지 1년이 됐다고 해도 믿을만한 외양과 품질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한다고 생각하고 물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물건은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사용한 물건에 대한 정은 큰 편이다. 그래서 핸드폰도 새 것으로 잘 바꾸지 못한다. 이 오디오는 그런 녀석들 중 대빵급 정도 되는 녀석이다. 이 오디오가 만신창이가 되어 고장이 나도 나는 아마 이 오디오를 절대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아빠가 25년 전 산 그 인켈 전축을 듣지는 않지만 절대 버리지도 않고 안방 침대 옆에 고이 모셔두는 것처럼.  


그리고 또 하나, 이 오디오를 보면 오디오와 함께 한 시간 외에도 아빠의 음악열이 느껴져서 좋다. 가난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모자람이 없었던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내일 당장 먹을 게 없어도 걱정은 접어두고 동네 갤러리에 갔던 부모님 말이다. 워크맨, 휴대용 cd플레이어, 오디오,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까지. 우리집은 가난했지만 나는 이 모든 걸 가졌었다. 이 오디오를 보며 아빠를 생각한다. 여전히 서로 음악을 추천하는 아빠와 나의 관계가 좋다. 나는 아빠의 전축으로 아빠의 앨 그린 LP를 재생해 듣고 아빠는 내 mp3로 언니네 이발관이나 장기하와 얼굴들을 듣는 이런 관계. 집이 아무리 부자여도 이런 부자(父子)는 흔치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