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랑 얘기하다 든 생각인데
내가 진짜 한심해하는 행동이 있단 걸 깨달았어.

사람마다 되게 싫어하는 행동들이 있잖아.
남한테 폐를 끼치거나 상처주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지각하거나 생각없거나 배려없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근데 그게 난 회피하는 건 거 같아.

내가 태생이 겁쟁이거든. 겁이 진짜 많았어.
그러다보니까 회피 성향도 강했음.
예를 들면 구구단 외우는 거 학교에서 한 명씩 일어나서 시험보는 날이 있었는데
구구단 못 외워서 그날 엄마한테 오만 핑계대고 학교 안 갔어ㅋㅋㅋ 엄마는 내가 그래서 학교 안간 줄 몰랐지만

근데 우리 엄마는 회피하는 거 되게 싫어해.
아빠가 어마무시한 회피형 인간이거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내가 엄마한테 혼날 일 해도 엄마한테 솔직히 말하면 보통 봐줬어.
근데 숨기거나 솔직하게 말 안하면 엄청 싫어했어. 눈치본다고...ㅋㅋ 우리 엄마 성격 쎄고 다혈질이라 본인이 눈치보이게 행동하면서 눈치보면 눈치본다고 뭐라한다. ㅋㅋ

근데 우리 언니는 엄마가 그러는 거 엄청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맨날 성적표 숨기다가 결국 수능 성적표까지 숨겨서 엄마 속터지게 만들었는데

난 그정돈 아니었어. 좀 그래도 깡이 있었다고 해야하나? 막 회피하고 싶어서 어쩌지 하고 머리 한참 굴리다 지쳐서 에라이 모르겠다 ㅅㅂ 하고 걍 질러버리는 타입이야.

과도한 회피형은 아닌 거겠지. 뭐 걍 일반 사람들 수준인지도? 회피하다가 극한 상황 가면 진짜 망해버리는 거 아니까 그 전에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생각은 하고 보통 극한의 상황 오기 전에 해결은 해. 안 그러면 마음이 진짜 계속 무겁고 괴롭거든ㅋ 시험 앞뒀는데 공부 하나도 안하고 누워서 폰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근데 해결 제때 못할 때도 물론 있어...지금도 책 출판한다고 한지 2년 됐는데 인쇄소에 돈 다 넣고 가제본 다 해놓고 책 안 내고 있어...마음 속의 짐이고 마음이 항상 좀씩 불편해...돈 언제 사라지나 걱정되고...ㅋㅋㅋ 안한다고 좆될 일 없는 혼자만의 프로젝트라 그런가봐.

대학 와서 돈 없이 살 때는 그렇게 카드값 얼마 썼나 보기가 무섭더라고...그래서 안보고 살았어...;;; 지금도 돈에 대해서는 넘 복잡하고 별로 신경 쓰기 싫고 귀찮아서 통장에 당장 얼마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잘 보지도 않고. 돈에 대해선 회피하는거지. 매번 경제 신문도 읽고 재테크도 관심 갖고 집도 사야하는데 생각만 해. 그래서 이것도 맨날 내 맘 속에 쌓여있는 짐이야ㅋㅋㅋ

살 너무 쪄서 운동해야하는데 운동도 회피 중...어휴 미루기 왕이다.

하여튼 이렇게 회피하는 사람이어도 뭔가 딱 아 지금 안하면 좆된다, 이건 꼭 해야한다 싶은 건 떨리는 마음 억지로 부여잡고 딱 마주하는 편이라 지금까지 인생 안 망하고 살아온 것 같아.

근데 가끔 사람들 중에 끝의 끝까지 상황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런 거 보면 진짜 별로란 생각이 들더라. 사실 내 인생 아니니까 그래 뭐 잘 되겠지 알아서 해라 하는 게 대외적 스탠스지만.

연애하다가도 헤어지잔 말 한 마디 못해서 잠수타거나 진짜 자기 커리어가 달린 먹고 사는 문제인데 내가 책 출판 안하듯 안하고 미루거나 그런 사람들 보면 속으로 진짜 너무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한심하단 생각이 드는 것 같아.

예전에 중학교 때 외고입시할 때 1년 가까이 같이 열심히 준비해놓고 외고입시 시험 한 두 달 전에 자기 다른 거 하고 싶다고(걍 회피하려는 핑계) 학원 뛰쳐나갔다가 직전 되니까 돌아와서 다시 외고 입시 본 애가 있었는데 직전에 부담감 못 이기고 도망갔던 그 마음은 알겠다만 난 저런 태도가 너무 별로더라. 불안하면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봐야지...

그리고 뛰쳐나가기 전에도 나보다 공부 못했는데...난 한번도 걔를 라이벌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뛰쳐나갈 때도 가지 말라고 후회한다고 말렸는데...뛰쳐나갔다가 돌아와서는 나한테 자기가 뛰쳐나갔어서 너보다 구린 과 갔다고 그러더라고ㅋㅋㅋ 저러려고 도망갔나 싶었어.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결과가 이런 거라고 핑계 대려고.

근데 보통 저렇게 계속 습관적으로 회피하는 사람들은 보통 되게 핑계가 많더라. 뭐는 이래서 못했고 뭐는 저래서 못했고 이번엔 잘 할 수 있고...그렇게 10년 동안 말만 하는 거 옆에서 보고 있으니 속이 터져서 잘 안 만나는 친구도 있어.

반대로 회피형 성향 전혀 없고 추진력 좋은 사람들 보면 그 추진의 결과가 어떻든 되게 존경스럽고 대단해보이고 부럽고 그래. 지금 내 보스들이 좀 그런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의 그 추진력과 부지런함에 매번 놀라. 저런 사람들이 사업하는구나, 난 사업이랑은 안 맞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해.

내가 생각할 때 어른의 기준은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가 있는지 아닌지 아닐까 싶어. 자기 인생에서 대면하기 힘든 걸 대면하는 용기가 있는지, 용기가 없어서 내내 도망다니기만 하는지.

결과가 실망스러울지라도 꾸준히 불편하거나 어려운 현실을 대면하고 또 그에 맞춰 계속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원하는 대로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어른이라고 생각해. 어른인데 어른이 아니면 어른이 되려고 좀 노력하면서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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