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사람, 약이라도 한 것 같지않냐? 이런 영화를 제정신으로 만들 수 있냐? 좀 과격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윤성호는 주성치랑 비슷한데 감성이 풍부한 주성치라고,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음 근데, 난 주성치 영화는 별론데 윤성호 영화는 미친듯이 좋다.
도약선생을 보러 간 극장은 홍대에 있었다. 장마가 끝난 여름은 미친듯이 더웠다. 해가 미친 걸까 지구가 미친 걸까 약간 고민이 되었다. 암튼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미친 게 분명한 날씨였다. 흘러내리는 땀만큼 내 기도 빨리는 듯 했다. 점점 죽어가는 나자신에게 생명을 불어넣기위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몰래 영화관에 반입하려고 기다렸다.
오늘따라 영화관 입장가능시간이 15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준비중이었다. 영화 시작 5분 전 드디어 입장했다.
영화관 안은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평일이라 그런가 라고 생각했다. 혼자 온 사람도 많았다. 대다수의 관람객은 여자였고 혼자온 여자, 친구들과 온 여자 등등이 주였다. 커플은 딱 한 쌍이었나, 무튼 영화관 안에 남자는 한 명이었던 것 같다. 이런 영화는 여자가 보쟤도 남자가 안봐주는 영화인건지 이런 영화 좋아하면 남자친구가 안생기는 건지 좀 궁금하다.
자기가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을 영화를 보기전부터 확신하고 온 '윤성호빠'들이 모인 것 같은 그런 영화관에서 영화는 내내 빵빵 터졌다. 시작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웃었던 것 같다. 웃겨서 웃고 어설퍼서 웃고 어이없어서 웃고...무튼 내내 웃었다.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과 이번 장면에 대한 웃음, 그 두 가지 밖에는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헤실헤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안웃을 때도 나는 혼자 빵빵터졌다.
'은하해방전선'과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부터 눈부신 포텐을 드러냈던 박혁권은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무표정하고 현실적인 연기는 마치 장기하 같다. 박혁권과 장기하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건 같이 본 친구가 발견했는데 영화의 테마 곡 '도약은 패턴'을 듣다가 장기하가 부른거야? 라고 해서.
장기하 특유의 그 자기는 무표정하고 진지한데 보는 사람은 웃으면 안될 것 같긴한데 뭔가 웃기기도 하고 그런 감정 들게 만드는 그런 거 있잖아. 노래 부르고 있는데 남이 보기엔 연기하고 있는 듯한...박혁권이랑 장기하는 그런 게 많이 닮았다. 물론 박혁권이 더 웃기지만.
박희본의 생기는 여전하다. 사투리도 귀엽고. 하지만 박희본보다는 나수윤의 초식동물스러운 캐릭터가 더 기억에 남는 영화다. 나수윤은 왠지 더 큰 배우가 될 것 같다.
영화는 자유롭다. 별 틀이 없다. 힘 빼고 만든 영화다. 전작 '은하해방전선'이 잘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 느껴지는 힘이 들어간 영화라면 이 영화는 노력을 안했다기보단 글쎄, 그냥 만드는 사람들도 즐기면서 만든 영화 같달까. 그런 영화다.
영화의 중반부에 '코치님은 군필자!' 이런 식으로 짧은 제목과 함께 꽁트식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윤성호의 (아마도 학생시절) 단편인 '졸업 영화'를 연상시킨다. 졸업영화도 그렇고 도약선생도 그렇고 틀도 없고 이게 영화여 뭐시여 싶은데 웃기다. 웃긴다...대놓고 웃긴다. 영화를 여러 편 만들고 있는데도 그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사라지고 있지 않구나 싶어서 놀랍다.
사자자세 같이 대놓고 웃기는 장면에서는 '나 원래 이런 대놓고 웃기는 거에 잘 안웃는 사람인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미친듯이 폭소하고있다. 뭔지 모르겠다. 윤성호 영화를 보면서 나오는 웃음은 마치 자기가 현실에서 겪은 그런 사건에서 나오는 웃음같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어제 겪은 일인데 겪은 당시에 나는 엄청 웃겨서 쓰러질 뻔한 그냥 현실의 사소한 사건있잖아...근데 그걸 웃기다고 남들 말해주면 아무도 안웃는 그런거...그래서 "야 너도 그자리에 있었어야돼!!진짜 웃겼다니까!!" 하고 설명하게 되는 그런 거.
윤성호 영화의 개그는 그렇다. "아 나 진짜 웃긴데!!!!!!진짜 웃긴데...!!!...응?이게 안웃겨?....아 이걸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명장면은 대구시육상경기장에서 허가를 안받고 훈련해서 사무실에서 경비아저씨한테 혼나는 장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에피소드는 6편 '두근두근 어버이연합' 이었다. 나는 윤성호가 그 보수적인 할아버지들을 묘사하는 게 정말 재밌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한 교회개그랑...(교회개그는 개콘 슈퍼스타kbs의 전도사님이 아니라 윤성호가 원조다) 윤성호의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개그 코드는 단연코 그 둘이다.
무튼 정말 재밌다. 미친듯이 웃기다. 윤성호는 미친 것 같다. 아니면 천재거나. 사실 '할 수 있는 자를 구하라'를 넘어서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역시나 이번 영화도 남에게 추천할 수가 없다. 나만 재밌을지 니들도 재밌어할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암튼 나는 재미있었다.
윤성호가 상업영화를 준비한댄다. 로맨틱코미디랬나 멜로랬나 뭐 그랬는데 과연 성공할까 궁금하다. 뜰까봐 걱정된다...............감독님 죄송.
명대사는 '볼턴, 이청용이 뛰는 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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