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에 대한 담화

카톡용량 정리하다가 몇년 전 틴더남과의 대화를 복기함 해외에서 연구하다 들어온 총각이었고 본격 대화 시작 전 학벌의 과시를 느껴버리는 바람에 보사삭되고 말았지만 토론 자체는 엄청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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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생각나서.
난 정상적이지 않은 심리에 대해 굉장히 흥미를 느끼는 편인데 폴리아모리를 처음 알고서도 한동안 그랬다.

어느 정도였냐면 책 원래 잘 읽지도 않는데 폴리아모리인 홍승은이란 작가가 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란 책도 사서 읽음. 왜 저러나 너무 궁금해서.

나와 너무 다른 심리라 이해해보고 싶어서 읽은 건데 너무 솔직하게 써주셔서 이해는 확실히 됐다.

홍승은 작가는 원래 꽤 오랜 시간 사귀며 동거하던 남친이 있었는데 본인이 좌파, 페미니스트라서 막 지역에 강의를 다니다 남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였나 하여튼 뭔 복잡한 성소수자랑 만나 서로 끌리게 되었다.

근데 동거하던 남친도 좋아서 대놓고 둘다 만나겠다 하고 만나다가...남친이 처음엔 괴로워하더니 결국 이 작가의 설득에 넘어가서 다같이 폴리아모리 하기로 하고ㅎㅎㅎ 결국 셋이 같이 살게까지 됐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읽다보니 그럴싸한 용어로 포장해놨을뿐 저런 게 폴리아모리라면 오래전 과거부터 있던 삶의 형태가 아닐까 싶었다.

옛날에 놈팽이 할배들이 밖에서 어느날 첩 데리고 들어오면 본부인이랑 첩이랑 놈팽이 할배랑 다같이 살잖아. 본부인이랑 첩은 사이 나쁘다가도 할배의 피해자란 공감대가 있어서 사이가 좋을 때도 있고 그렇게 늙다보면 친구처럼 돼서 할배가 먼저 죽었는데도 본처랑 첩이랑 둘이 형님 아우하며 평생 같이 살기도 하고...

책 읽다보니 자신들의 삶이 막 평등하고 문명화된 척 하는데...그 기저에 깔린 감정들은 그 옛날의 남편, 본처, 첩 관계랑 별로 다르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성별만 반전됐을뿐.

그냥 자신의 이기심을 폴리아모리, 다자연애라는 뭐라도 되는 듯한 단어 뒤에 합리화한 느낌.

그치만 책 한 권 읽고 한 사례 본 게 다니까 이때까진 어디선가 잘 돌아가는 폴리아모리가 있을 수도 있지 싶었다.

그러다 지난달에 독일에서 유학하는 Y에게도 폴리아모리 얘기를 들었다. 거긴 폴리아모리인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여러 사례를 들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처음 폴리아모리를 제안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폴리아모리끼리 만난 사례는 못 들어봄.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열위에 있는 파트너를 대상으로, 관계 유지를 무기로, 상호 동의를 명분으로, 당당하게 행하는 폭력.

그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폴리아모리다.

폴리아모리는 인간의 본능을 충족하는 척하지만 거스르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저렇게 발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인간이 사는 환경에서는 폴리아모리들이 주장하는대로 서로 100% 동등한 관계에서 상호존중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대놓고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

모든 연인은 100% 동등할 수가 없고 그걸 추구하면 오히려 망하게 되는데(게이커플도 반반더치는 안함) 폴리아모리는 자꾸 연인이 완전히 동등하다니까...그 가정부터 말이 안됨.

마치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론 그럴듯해보였지만 현실에선 패망한 거랑 비슷하다. 인간이 평등하게 생산하고 평등하게 분배해서 살면 다같이 행복할 줄 알았지만 현실에선 평등하게 생산<<이것부터 허상이었던 게 다 밝혀졌잖아. 현실 공산주의의 결론이 수령님만 다 가지는 것이었듯이, 현실 폴리아모리의 결론도 관계에서 우위인 사람만 노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폴리아모리가 본래의 취지대로 굴러가려면...폴리아모리들끼리 폐쇄적으로 마을 이루어 살면서 그 안에서만 사유재산 없이 집단 노동을 하고, 공동 재산을 가지면서 서로 사랑하고 그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니 애 내 애 없이 우리 모두의 아이인 공동육아를 해야할 거다. (근데 그러다가 왠지 치정살인 혹은 집단 정신병 엔딩날듯.)

그도 아니라면 세 동성애자 또는 세 양성애자가 서로 서로를 딱 똑같은 크기의 마음으로 사랑한다거나...?

하여튼 저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해자 없는 폴리아모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함.

결론은...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서도 만나던 애인한테 폴리아모리하자고 설득하는 사람보단 걍 몰래 바람피는 사람이 차라리 낫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죄책감이나, 죄책감이 없다면 속이는 귀찮음이라도 감수하는 게 그.나.마 책임감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함.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고 좋은 것만 취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남친한테 폴리아모리 얘기했더니 남친이 한 말로 마무리하겠음.

"똥을 카레라고 부른다고 먹을 수 있는 게 되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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