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한 번 다녀와서 어지간히 사골국 끓여먹듯 울궈먹죠...? 근데 쓰려던 얘기 지난 번에 다 못 써서 오늘 마무리해야겠음. 이거 쓴다고 해놓고 안쓰려니까 마음이 불편해서 다른 글을 못 쓰겠음.

202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코로나 탓에 몇 년만에 가는 음악 페스티벌이었고, 처음 여름에 가는 음악 페스티벌이었고, 처음 차 타고 가는 음악 페스티벌이었는데 여러모로 참 좋았다. 이유가 여러가지였다.
 

1. 매일 개선된 운영

 
주최 측이 운영을 잘했다. 첫날부터 완벽한 건 아니었는데, 매일 피드백이 바로 바로 잘 이뤄졌다.
 
첫날인 금요일은 서브 스테이지(인천공항 스테이지) 앞 그늘 있는 곳 아래가 돗자리를 깔 수 있는 공간이었고, 나도 거기 돗자리를 깔아뒀었다. 근데 장기하 타임에 무대 앞에 공연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 들면서 그늘막 밑 돗자리들 있는 곳에도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막 앞으로 오는 사람들한테 돗자리가 밟히고, 앉아있던 사람들이랑 무대 앞으로 몰리는 사람들이랑 정신없이 엉켜서 '이러다 큰일 나겠는데?' 싶은 순간이었다. 나는 남친한테 빨리 돗자리 접고 뒤로 가자고 해서 돗자리 접고 빠졌었는데, 사람들이 막 몰려들고 우리 돗자리 밟고 난리났을때, 순간적으로 '내일도 이렇게 통제 안되면 사고 일어나는 거 아닌가?' 싶은 공포를 느꼈었음.
 
그래서 다음날에는 돗자리를 안 들고 그냥 작은 간이 방석만 챙겨갔는데, 다음날은 곧장 주최측의 변화가 있었다. 무대 앞에 몰리는 사람들이 그늘막 밑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려고, 뮤지션이 나오는 타이밍에 스태프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서 그 그늘막 공간을 지켰다. 그런데 노력은 가상했지만(?) 사람들은 인간 띠도 무시했고...ㅎㅎㅎ
 
마지막인 일요일에는 그 그늘막 공간에는 아예 처음부터 돗자리 못 깔게 하고 관리하더군. 덕분에 사고 안 나고 잘 마무리되었다. 굳!
 
매일 매일 이렇게 바로바로 변화가 있는 걸 보니까 주최측이 상황을 알고 있고 통제하고 있단 게 느껴져서 관리가 잘 된다는 느낌이 들었음.
 
운영 기간 중에 개선된 건 이것 뿐이 아니었다.
 
2023 펜타포트 스폰서가 KB여서, 원래 내부에서 음식이나 음료 사먹으려면 국민카드, KB 페이, 인천 이음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고 했음. 공지를 늦게 해서 공지 보고 인천 이음카드 신청했는데 락페 기간까지 안와서; KB 페이밖에 없는데 안에서 인터넷 안 터지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갔었다. (안에 사람 너무 많아서 인터넷 잘 안 터져서 강제 디지털 디톡스됨ㅎ) 다행히 결제할 때 KB 페이가 돼서 그걸로 이것 저것 사먹긴 했는데, 이걸로 불편 겪는 사람들이 많아서 항의가 많았던지 둘째날부터는 모든 카드사 결제가 다 풀렸다. 그래서 나도 편하게 주사용 카드 썼음. ㅎㅎ
 
물도 첫날은 차가운 물을 안 팔더니 둘째날부턴 팔고, KB 부스에서 막 공짜 물도 나눠주고ㅎㅎㅎ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진 못했어도 행사 중간 중간 바로 바로 수정이 이루어져서 3일 다 간 사람으로선 금요일보다 토요일이, 토요일보다 일요일이 더 잘 운영되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엄청 많이 만들어놔서 여자 화장실도 별로 안 기다려도 돼서 편했고, 화장실 청소 인력이 엄청난지 화장실도 꽤 깨끗하게 유지돼서 좋았다. 
 
작년에는 짐 검사 게이트/팔찌 차주는 부스도 한 곳 뿐이라 대기 줄이 어마어마했다던데, 올해는 작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짐 검사 게이트도 많고 팔찌 부스도 많아서 둘 다 거의 안 기다리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음식 주문도 미리 어플로 하고, 시간 맞춰 가서 줄 안 서고 픽업할 수 있어서 정말 편했음. 이건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현장판매(만 50세 이상만 현장 구매 가능하게 한다든지~)만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듯. 올해 후지락 페스티벌 후기 보니 음식 하나 사먹을래도 1시간 줄 서는 게 기본이라던데...그런 상황을 겪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한여름 땡볕에 줄 서는 거 싫어요...ㅎㅎㅎ
 
락앤락에만 넣으면 음식 안 잡는 것도 좋았음~~! 음식 잘 싸가서 잘 먹음ㅋㅋㅋㅋㅋ
 
전체적으로 운영이 잘돼서 땡볕에 3일 연속 출근을 했는데도 각오와 달리 힘들지 않게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펜타포트 운영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감사의 말씀을~~!
 

비주얼에 비해 맛좋은 닭가슴살 샐러드 파스타 / 펜타포트에서 파는 피자 품절됐길래 코스트코에서 사서 락앤락에 싸간 피자의 사탑

 

2. 날씨운 그리고 주차운


펜타포트 둘째날 비오는 건 국룰이라던데...사흘 내내 비도 안오고 날이 참 맑았다. 아직 엉덩이에 물 닿으면 안되는 엉덩이 환자라 엉덩이 젖을까봐 걱정하면서 갔는데ㅋㅋㅋ(박진영 방수바지 같은 바지 사서 입고 갈까 진지하게 고민해봄ㅠㅠ) 비도 안오고 무대에서 뿌리는 물도 상체만 젖을 정도라 다행이었다. 그리고 저녁엔 나름 선선해져서 4~5시부터는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일단 날씨 운 좋았고.
 
또 주차 운이 좋았다. 처음에 펜타포트 네비에 찍고 가다가 발견한 무료 주차장에 3일 연속 자리가 있어서 운 좋게 차 바로 바로 댐. 그 주차장이랑 펜타포트 장소는 도보 5분이었고ㅋㅋㅋ 주차장에서 펜타포트 장소 가는 사이에는 사람 없는 깨끗한 화장실까지 있어서 거기도 잘 이용함. ㅎㅎㅎ 쉬운 주차 덕분에 펜타포트 출퇴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매번 주차장까지 오가는 셔틀 기다리는 사람들 줄 보면서 경악하면서 차타고 바로 퇴근...ㅋㅋㅋ 20대 때 친구들이랑 음악페스티벌 놀러다닐 땐 차가 없어서 너덜너덜한 몸으로 배낭을 매고 지하철 장거리 여행 다녔는데...차로 출퇴근하니까 넘 편해서 3일 출퇴근도 거뜬했음...!
 
김치말이 국수 사흘 연속 주운 것도ㅋㅋㅋㅋㅋㅋ운이 좋았다...미리 예매도 안했는데 사흘 다 어플로 주워서 매일 맛있게 잘먹음...! 뭐 앞에 상가에서 파는 묵사발이 김말국 상위 호환이라느니 어쩌니들 하던데...밖에 나갈 기력이 없는 나와 같은 저질 체력이라면...펜타에서는 김말국을 추천합니다...!
 

펜타포트 비공식 소울푸드 김말국. 네이버 블로그에 김말국 먹으라고 써준 분 감사해요. 첫날 더워 죽을 뻔했다가 김말국 먹고 살아남.

 

3. Music makes one.
 

사실 이 얘기 블로그에 써놓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이 글 씀. 서로 이름도 직업도 그 무엇도 모르는 사람들과,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음악에 맞춰 다같이 춤을 추고 따라 부르면서 감동을 느꼈다. 오랜만에 마음 속에서부터 올라온 뭉클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코로나 전에는 종종 느꼈던 감정이라는 게 문득 떠올랐다.
 
요즘은 사람들이 서로를 혐오해서 문제인데, 그건 사실 우리의 생활 중 온라인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저 나와 함께 음악을 즐기고 춤을 추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인터넷에서는 서로 혐오하고 욕하고 미워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슬프기도 했다.
 
오래된 인터넷 명언인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라는 말도 떠올랐다.  코로나19가 사람과 사람을 분리하고, 사람들을 고립시키면서 우리에게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단 걸 많이 잊게 만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면전에 대고는 할 수 없을 극단적인 말들로 서로를 혐오하고, 그 혐오가 인터넷 밖까지 튀어나와 칼부림이 되고, 묻지마 범죄가 된 것은 아닐까? 코로나를 거치면서 나도 많은 사람들을 혐오하게 되고, 고립되고, 거칠어진 면이 있는데 펜타포트에서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느껴지는 낯선 긍정적인 감정 덕분에 내 안에 독이 쌓여있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펜타포트 같은 일회성 이벤트로 쉽게 비워지진 않을테지만, 자주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다 보면 차츰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펜타포트에서 음악 페스티벌이 왜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지, 음악이 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지 마음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이디오테잎 무대 앞에서 함께 뛰면서 소리 지르던 것, 다같이 새소년 '파도' 떼창했던 것, 진저루트 보컬 카메론 류의 개그에 매순간 함께 웃던 것은 잊지 못할 거야. 세상은 모니터 밖에 있고, 사람들도 모니터 너머에 있고, 사람들과 서로 혐오하거나 키보드 배틀을 뜨는 것보다 훨씬 즐겁게 순간을 나눌 수 있다.
 
펜타포트에서 보낸 2023년 여름을 앞으로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무대에서 물 뿌려줘서 무지개 뜸...!
놀란 라쿤 표정과 함께 국뽕 유튜브 썸네일 형식으로 글랜스톤베리보다 난리난 펜타포트 어쩌고 써있던 깃발ㅋㅋㅋ 넘 귀여웠음.
첫날 밤에 갑자기 인천시장 등장해서 뭐야ㅡㅡ 했는데 인사만 짧게 하고 드론쇼 해줘서 재밌게 봄ㅋㅋㅋㅋㅋ
스트록스
중간에 펜타포트에서 칼부림 예고 있어서 경찰특공대 깔리고 금속 탐지기 생기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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