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될 때가 있다.
오늘은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종이를 돌리며 집주소를 적으라고 하셨는데 강남 참 많더라. 압구정동, 대치동...몇몇 아닌 사람들은 분당, 과천...대한민국에서 강남구 거주 비율이 그렇게 높은 집단이 몇 군데나 있을까. 니들이 그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는 루이비똥 가방은 가짜가 아니었구나.

나도 모르게 집주소 적으면서 위축되는 나를 보면서 한심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난 왜 자꾸 가난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일까.
얼마 전엔 무슨 설문조사를 하는데 가계 수입을 체크하는 게 있어서 0~200만원에 체크하고 있었다. 사실이다. 저마저도 안팔리는 집 대출이자로 꼬박꼬박 200씩 나가니 우리집은 은행 대출로 생활비를 대고 있다.
근데 옆에서 설문조사를 작성하던 친구가 우리집 수입 체크한 부분에 잘못 체크한 거 아니냐는 거다. 별로 친하진 않고... 거기서 뭐라 해야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버렸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저 수입이 말이되냐고, 집 수입이 저러면 너 등록금은 어떻게 내고 학교 다니냐고 하더라. 그 물음에 나는 더 벙쪘다. (속으로) 대출 몰라 대출? 너는 학자금 대출 한 번 안받고 대학 다닌단 말야?

오늘은 학교 게시판에 "돈 없는데 왜그렇게 굳이 대학을 다니려해요? 공부하고 싶으면 독학이나 청강하면 되잖아요. 솔직히 취업할 졸업장따고싶어서 대학다닌다고 해요." 글 중에 이런 말을 발견했다. 경제 논리를 들이밀며 반값 등록금 안된다는 글이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그 사람의 경제 논리에 태클을 걸어 자기도 엉터리인 글이라며 끝맺음되어 있었다. 근데 난 사람들이 아무도 태클걸지 않은 저부분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 공부하고 싶어 대학에 왔는데, 가난한 내가 사천만원짜리 대학교육 탐내는 건 사치인가보다. 스티브 잡스처럼 자퇴하고 청강하면서 가난한 자로서의 성의를 보이며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 서강대의 저 부잣집 자제분은 나에게 돈과 공부 중 우선순위가 뭔지도 모르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공부만 열심히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는 어쩌면 저런 사람들 입장에선 상상이 안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등록금을 학자금 대출로 충당해온 현실이 상상이 안되는 것처럼. 듣고 싶은 과목이 있어도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야 해서 들을 수 없는 처지는 어떤 처지일지 저 사람들은 상상이 안될 지도 모른다. 
나도 어릴 때 내가 이렇게 힘든 대학생이 될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



도박하고, 사기당하고, 알콜 중독에 어쩌고 하는 부모라면 원망이라도 해보겠지만 일생을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며 부모의 본분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가난을 탓할까. 무능력해서 고생시켜 미안하다며 날 붙잡고 우는 그 부모님 앞에서 누구에게 가난을 탓할 수 있을까.


여전히 상황은 변한 게 없고, 나는 시험기간에도 어김없이 아르바이트를 가야한다. 수업은 한 두 번 빠질 수 있지만 전날 시험공부로 밤을 샜더라도 아르바이트는 가야한다. 그나마 조건 좋은 이 아르바이트를 짤릴 수는 없으니까.


교수님은 여름에 돈을 벌기보다 책을 읽으라고 하셨지만, 나는 책을 읽기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총학생회를 정치적이라고, 학내의 어떤 문제보다 등록금 문제에만 치중한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난 그사람들한테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나한테는 총학생회를 욕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도서관 예절 운동, 교수님에게 스승의날 선물... 뭐 이런 것들보다 당장 반값 등록금이 훨씬 절실하니까. 현실적으로 실현이 안되더라도 주장을 해주는 자체가 고마우니까. 난 그런 집회에 나갈 시간도 용기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대신 얘기를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이십대의 청춘은 쓰다. 십대의 고민과 방황은 이십대의 먹고 살 걱정 앞에서 마냥 행복했던 추억이 된다.  





오규원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지금 젖으면 다시는 젖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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