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야구의 얼굴, '스마일맨' 송구홍
[야구의 추억, 예순한 번째] 트윈스 최고의 허슬플레이어

김은식 기자
2007-08-21 22:20



유독 상대팀 선수와 팬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선수들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제일 먼저 90년대 초반 LG 트윈스의 3루를 지켰던 송구홍을 떠올린다.


그 시절 내가 응원했던 팀은 돌핀스였다. 그리고 돌핀스 팬들에게 있어서 트윈스는 참 미운 존재였다. 라이벌이어서가 아니다. 라이벌이라면 최소한 상대를 적수로 인정하고 그에게 한 번 이기는 것을 기꺼이 가치 있는 일로 생각하는 관계를 말한다. 그렇지만 트윈스에 있어서 돌핀스의 도전은 항상 코웃음 나는 일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항상 '내가 아무리 망가진들 너한테 지랴'는 듯 건들거리며 자근자근 짓밟아오곤 했다.


그래서 어느 해건 트윈스에게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익숙한 것은 당연했지만, 89년과 94년, '돌풍'이라 일컬어졌던 딱 두 번의 시즌에조차 상대전적에서 트윈스를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이 돌핀스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주먹 불끈 쥐고 찾은 잠실구장에, 어차피 베어스나 타이거즈와의 경기도 아닌 터에 굳이 관심도 없다는 듯 한산한 홈 관중석을 보며 이를 갈던 것이 돌핀스 팬이었다.


그런데 하필 송구홍이라는 선수가 그곳에서 내내 웃고 있었다. 타석에서든, 누상에서든, 혹은 글러브를 잡은 그라운드 위에서든 그는 웃었다. 뽀얀 모래바람 속으로 칼끝 같은 긴장이 교차하는 승부의 그라운드에서, 그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웃어댔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에게 '스마일맨'이라는, 식상한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웃음에 소름이 끼쳤다. 아까운 가운데 밋밋한 직구를 그대로 보내버린 순간, 방망이를 든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이고는 또다시 재미있어 견딜 수 없다는 듯 투수를 응시하며 흘려대는 웃음. 심지어는 한 번 더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가운데 직구에 삼진을 먹고 돌아 나가는 순간에조차 '별 꼴을 다 당한다'는 듯 싱글거리는 얼굴. 마치 앞발로 먹잇감의 목을 눌러놓고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침을 흘리는 맹수 같던 그 살벌한 웃음.


슬라이딩을 즐기는 남자


그는 아주 인상적인 슬라이딩을 하는 선수였다. 진루를 할 때면, 도착지의 대여섯 걸음 앞에서부터 비행기의 랜딩기어처럼 단단하게 땅과 닿은 배를 경쾌하게 마찰시키면서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마치 비행을 하듯 진로를 가늠하다가, 혹시 먼저 도착한 공을 쥐고 앞에 버텨서는 야수의 글러브가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피해나가며 빠른 손짓으로 베이스를 움켜쥐곤 하던 감각적인 슬라이딩.


그는 그런 슬라이딩을 즐기는 듯했다. 그래서 종종 그냥 서서 들어가도 충분할 상황에조차 굳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강행하곤 했다. 비어있는 베이스를 향해 자욱한 먼지를 날리며 요란하게 진입해서 다시 그 악동 같은 웃음을 흘리며 두 손을 치켜든 뒤로 굴러들던 맥 빠진 송구. 그러면 트윈스를 응원하는 친구들은 '여유 있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며 열광했지만, 나는 구름만 조금 끼어도 비옷에 장화까지 챙겨 신으며 법석을 떠는 성가신 꼬마 녀석을 보는 듯이 못마땅했다.


93년, 해태와의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한 장면은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을 가장 결정적으로 지배한다. 한 점 승부처에서 역전타를 날린 송구홍은 외야에서 날아든 무모한 홈 송구가 포수 뒤쪽으로 빠지자 눈을 부라리며 한껏 벌린 입술 사이로는 이를 악문 턱이 당겨져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득달같이 홈으로 내달렸고, 역시 언제나처럼 대여섯 발을 남기고부터 그라운드 위를 스치듯 날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쯤 짓물러있던 흙바닥에 허리띠 버클이라도 걸렸던지, 한 팔 정도가 모자란 곳에 멈춰버리고 마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슬라이딩이 필요하지 않았을 상황이었기에 그제껏 공은 날아들지 않고 있었고, 그제야 엉덩이를 조금 들어 올린 채 포복을 하듯 두어 번 허우적거린 송구홍은 홈베이스를 찍고 또다시 만화 속에나 나올 듯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환호했다. 요즘 같았으면 '몸 개그' 시리즈로 인터넷에서 유명세 깨나 탔을 법한 장면이었다.


그는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보기에 얄밉도록 자신감이 넘쳤고, 또 요란스럽게 끓어올랐다. 도무지 구김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그는 야구장에 묘한 흥분을 불러오는 에너지원이었고, 또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몸짓에 주목하게 하는 존재였다.


신바람 야구의 얼굴


데뷔 2년차였던 92년, 송구홍은 3할대의 타격에 딱 스무 개씩 맞춘 홈런과 도루로 역대 4번째 '20-20'을 달성하며 한대화의 3루수 부문 7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을 저지했다. 그는 그 해 빛나는 선수 중의 하나였고, 또 가장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선수였다.


더구나 팀의 상징이었던 김재박과 이광은 그리고 백인천 감독의 황태자 윤덕규를 내보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7위로 곤두박질쳤던 그 해의 트윈스에서 오로지 팬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뿐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93년에도 타격 3위에 오르며, 여전히 어려웠던 팀을 4강에 올려놓은 그는 그대로 트윈스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94년. 그의 운명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해, 어차피 방위병으로 복무하느라 정상적인 선수생활이 어려웠던 그는 허리 부상까지 겹치며 시즌 내내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는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팀의 타선과 내야진의 핵인 그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아마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들 했던 그 해, 팀은 거짓말처럼 우승을 차지해버린다.


94년 트윈스의 우승은, 시즌 전까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호재들의 극적인 상승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우선 데뷔 첫 해 9승 9패로 가능성만 엿보였던 이상훈이 18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성장해준 것을 비롯해 김태원과 정삼흠이 오랜만에 함께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며 15승 이상을 올리는 등 선발진이 안정되었고, 마무리 김용수가 63이닝만 던지고도 30세이브를 올릴 수 있을 만큼 차명석, 차동철 콤비의 허리가 단단하게 가동되었다. 그리고 '한 물 간' 것으로 평가되던 이적생 한대화가 '해결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며 '우승 청부사' 노릇을 확실히 해낸 것도 기대 밖의 호재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정작 팬들을 열광시켰던 것은, 바로 지난 2년간 송구홍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핵심적인 근거였던 3할 타격, 20-20, 골든글러브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하나씩 달성해보이며 신인왕 타이틀 경쟁을 벌였던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신인트리오 등장이었다.


94년의 송구홍만큼 극적으로 팬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스타플레이어도 없을 것이다. 그 해, 트윈스의 야구는 그대로 '신바람'이었고, 지난 두 해 동안 바닥을 기는 팀에서 오로지 외로이 몸을 날리는 투혼과 웃음으로 그 단어를 상징했던 송구홍의 존재는 그리워할 틈조차 없었다. 꽤 많은 트윈스의 팬들조차 트윈스 내야진에 송구홍이 사라진 사실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던 세월이었다.


송구홍이 자리를 비운 한 해 사이에 모든 것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유지현으로부터 시작해 김재현, 서용빈, 한대화로 이어지는 상위타선에는 빈틈이 없었고, 역시 서용빈으로부터 박종호, 유지현을 거쳐 한대화로 이어지는 내야진 역시 완벽했다. 공수 어느 면에서든 송구홍의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허리부상과 운동부족으로 두 해 전보다 한걸음 물러나있던 송구홍에게는, 버거운 상황이었다.


결정적 실책, 무거워진 웃음


그가 돌아온 95년, 한대화가 지명타자로 주로 나서기 시작했지만 3루수 자리에는 이종열이라는 뛰어난 신인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송구홍은 후배와 3루수 자리를 나누며 때로는 유격수 유지현의 뒤를 받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해 그는 시즌 경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7경기에서 간신히 2할6푼의 성적을 올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 번 꺾이기 시작한 신바람이 다시 불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나왔던 결정적인 실책은 그의 선수생활에 또 다른 변곡점이었다.


전년도 우승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던 트윈스는 95년에도 역시 최강의 전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더구나 그 전력의 핵들이 데뷔 2, 3년차의 싱싱한 젊은 선수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에서 타이거즈의 시대였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중후반은 트윈스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다.


그 95년, 막판 베어스의 '뚝심'에 일격을 당하며 1무승부 차이로 2위로 밀린 트윈스는 간단한 통과의례처럼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를 치러낸 뒤 한국시리즈에서 베어스에 설욕하리라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김상진과의 역사적인 에이스 맞대결에서 3전 3승을 기록하며 20승에 오른 이상훈의 기세를 생각한다면, 그 순간까지도 그 해 역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트윈스였음은 분명해보였다.


그러나 플레이오프가 시작되자마자 승부의 물길은 엉뚱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1차전에서는 '20승 투수' 이상훈이 시즌 내내 단 한 개의 홈런도 없었던 2할대 초반의 롯데 타자 강성우에게 2회에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맥을 풀어놓았다. 그날만큼은 '크레이지 모드'였던 강성우는 포수 수비에서도 결정적인 블로킹 세 개를 기록하는 동시에 다시 10회초 2타점 결승 적시타를 터뜨리며 거의 혼자 힘으로 승리를 챙겨냈다.


따라서 노장 정삼흠, 한대화, 노찬엽, 김영직의 수훈으로 2차전을 따내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한 트윈스에게 3차전은 굉장히 중요한 한 판이었다. 특히 한국시리즈 직행을 노리고 시즌 막판까지 다소 무리한 운영을 했던 트윈스로서는 먼저 2승을 따내 우위를 점하는 것이 투수를 비롯한 선수운용 면에서 반드시 필요했다. 여기에다 1차전 패배가 단지 우연일 뿐이었다는 점을 스스로 확인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10월 6일. 경기는 부산 사직으로 옮겨졌고, 3-3으로 팽팽하던 7회초에 터진 김재현의 홈런과 서용빈, 한대화의 연속 2루타로 신바람에 불을 댕기며 석 점을 달아난 트윈스는 부산 팬들의 열기를 등에 업고 곧장 치고 올라온 자이언츠의 7회말 1사 만루 상황만 넘기면 한국시리즈와 우승으로 향하는 길이 보일만한 고개까지 이르고 있었다. 타자는 마해영, 투수는 김용수였다.


2-3 풀카운트. 데뷔 첫 해 김민호를 밀어내고 4번을 꿰찬 마해영의 기세가 거칠었지만, 이런 날카로운 상황은 김용수의 전장이었다. 마해영은 긴장했고, 김용수는 침착했다. 김용수의 결정구는 몸 쪽 유인구였고, 생각지 못한 코스에 허겁지겁 휘두른 배트에 맞은 공은 3루 베이스 바로 곁에 서있던 송구홍 쪽으로 날아갔다. 송구홍이 바로 오른발을 뻗어 베이스를 찍고 1루로 던져 빠르지 않은 타자를 잡는다면 자이언츠의 만루는 그대로 잔루로 전락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불타오른 의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조금씩 밀려나던 시간의 조바심 때문이었는지 송구홍은 공을 곧장 홈으로 던졌고, 긴장으로 굳은 어깨에서 뿌려진 공은 지레 기대를 버린 채 꼿꼿이 서서 홈으로 들어서던 3루 주자 김민재의 등을 맞히고 말았다. 공은 결국 엉뚱한 곳으로 한참을 흘러갔고, 그 사이 3루에 도착해있던 전준호마저 홈을 밟으며 경기의 흐름은 결정적으로 자이언츠에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결국 7명의 투수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던 트윈스는 9회말 김응국의 3루타와 김선일의 끝내기 안타를 맞고 주저앉았고, 이후 4차전과 6차전을 다시 내준 끝에 정말 아깝게도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놓치고 말았다. 최강의 젊은 라인업을 가지고도 90년대 내내 더 이상의 우승신화를 써내려가지 못한 트윈스의 역사 역시 그 순간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면, 조금 지나친 상상일까.


그 이듬해에도 송구홍은 웃으며 그라운드에 나섰다. 그러나 더 이상 그의 웃는 얼굴을 놓고 시비를 거는 이도, 또 핏대를 세우며 환호하는 이도 없었다. 그는 그저 한 때 잘 나갔던, 그리고 꽤나 열심히 뛰는 한 명의 선수였고 그 이상은 아니었다.


98년, 그는 이종범이 일본으로 진출하며 얇아진 내야를 보충해야 했던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2할9푼에 가까운 타율로 재기하는 듯도 했다. 그러나 넘치는 의욕이 무리가 되었는지 재발한 허리부상 때문에 막판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99년, 선수장사로 연명하며 '가치 있는 선수'와 맞바꾸어진 '무늬만 선수'들로 선수명단의 칸을 채워가던 마지막 순간의 쌍방울 레이더스로 폐기처분되듯 던져지는 순간, 그의 선수생명은 사실상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듬해인 2000년, 그는 친정팀 트윈스로 돌아왔다. 물론, 팀이 그의 재기가능성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해 고작 11경기에 교체 투입되어 단 4개의 안타만을 기록했던 그에게 은퇴를 준비할 시간을 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라운드가 아닌 더그아웃에서나마, 그는 웃고 소리 지르고 박수치는 '산소발생기'로서 팀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존재였고, 그 에너지를 인정받은 그는 코치로서 팀과 함께할 기회를 다시 부여받았다.


너는,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항상 최고 인기 팀 자리를 다투는 트윈스라는 팀은, 그러나 나처럼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팀은 아니었다. 구김살 없고 당당한, 그래서 지켜보면 시원시원한 팀. 그래서 서용빈의 세련된 옷차림과 김재현의 미사일 같은 홈런포의 궤적, 그리고 송구홍의 거침없는 웃음으로 기억되는 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신바람의 시절을 지나 몇 해째 '중흥'과 '회복'을 부르짖는 침체기에 돌아보면 또 다른 것이 떠오르곤 한다. 무리한 훈련으로 항상 부르터있던 서용빈의 손바닥, 유지현의 머리와 김재현의 무릎을 괴롭혔던 통증과 도전, 그리고 95년 가을 이후 묵직해져있던 송구홍의 웃음. 그들을 키워왔던 속살의 성장통과 드라마와 감동이 꼴찌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부상과 이른 퇴장은 프로선수의 직무유기다. 오직 몸으로써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임무로 하는 운동선수에게, 너무 일찍 닳아버린 몸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 혹은 그보다 더욱 난감한 막막함이나 무료함 앞에 서서 '허슬 플레이어의 몸짓'을 떠올린다.


그들은 안도현 시인의 시 구절처럼 '너는…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는 질문을 온몸으로 던져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