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이 연일 난리다.
당연히 결론은 모르겠다. 혼자 실족사한 건지, 살인이든 뭐든 친구가 연관돼 있는지.
나도 한창 술 마시고 꽐라로 살았던 적이 많아서, 술 마시고 실수로 죽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고
친구랑 격하게 장난이나 몸싸움하다가 빠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 언론에 공개된 정황과 증거로는 어떤 게 답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대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20대 초반에
내 친구의 친구가 자취하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멀쩡하게 술 마시다가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서 집 문을 열고 복도 너머로 뛰어내려 자살했단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걸 눈앞에서 같이 술먹던 친구가 다 봤지만 자살한 사람이 너무 빨리 뛰쳐나가서 확 뛰어내려버려서 도저히 말릴 수 없었고, 그게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했다.
아무튼 20대 초중반은 인간이 아직 많이 불안정한 시기고,
그 시기에 술이 합쳐진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고든, 자살이든, 살인이든.

문제는 이런 상황에 사망한 학생의 아버지가 언론을 통해 "100% 타살", "아들 친구라고 착각했던 A씨" 등 발언을 통해
뚜렷한 근거도 없이 함께 있던 친구를 살인자로 확신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는 데 있다.
그 마음이 이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아니면 어쩌려고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전의 여러 사건이 겹쳐 보였다.

얼마 전에 이하늘이 자기 동생이 죽고 나서
한동안 김창렬이 동생을 죽였다며 엄청 원망을 할 때, 공감이 안 됐다.
동생이 십수 년간 자신이 속한 그룹의 곡을 써줬는데 저작권을 받지도 못했고,
다른 멤버들에게 고마움을 치하받지도 못했다면,
그건 본인과 다른 멤버들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큰 걸까?
제주도 땅을 사자고 한 것도 본인, 옛날부터 꾸준히 의리 없는 김창렬에게 동업 제안을 한 것도 본인,
돈 없는 정재용을 자기 돈으로 지분 챙겨주며 끌어들인 것도 본인, 거기에 자기 동생을 끌어들인 것도 본인.
모두 자기 선택에서 비롯된 건데
(물론 자기도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는 했다만,)
상황 다 뜯어봐도 김창렬은 평소대로 지가 하던 양아치 짓 했을 뿐인데
그 양아치 짓마다 대처 한번 제대로 안해놓고
갑자기 김창렬이 동생을 죽였다니,
평생 살아온대로 똑같이 양아치처럼 행동했을 뿐인 김창렬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물론 그렇다고 이하늘 동생의 죽음이 이하늘 탓이라는 것도 아니다.
이하늘에겐 가혹할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하늘 동생은 그냥 운이 나빠서 죽은 거다. 누가 죽인 게 아니고.

노무현 자살 사건도 비슷한 것 같음.
노무현은 유서에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했는데 그 말은 아무도 안 지켜줘.
유언마저 무시당한 불운한 전직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죽기 전에 한창 '굿바이 노무현'하며 노무현 손절하던 언론과 정치인들
노무현 죽고 나니 앞다투어 나와서 원망할 상대부터 찾음.
까놓고 말해서 노무현이 이명박 때문에 죽었냐?
이명박이 없는 죄 조작해서 만들어 낼까봐?
진짜 없던 죄 조작해서 만들던 군사독재 정권에도 겁없이 싸우던 사람이
이미 민주주의 시스템 다 구축된 나라에서 죄가 없으면 뭐가 두려워서 죽어.
부인이 뇌물 받은 게 사실인 거 알게되고
평생 가져온 자기 자부심 자존심 다 무너져서 삶에 환멸 느껴 죽은 거지.
그러니까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한거고.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정말 힘들다.
친했던 친구가 죽었을 때, 나랑 만난지 꽤 오래돼서 나랑은 별 관련이 없단 걸 머리론 잘 아는데도
한동안 죄책감에 괴로웠었다.
근데 그 죄책감을 잘 다스려야 한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슬픔이 너무 커서 슬픔 대신 죄책감에 집중하게 되고
그 죄책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나머지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자신의 죄책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비이성적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덜려고 한다는 거다.

더 나아가면 경찰, 검찰이 다 수사하고 법정에서 결과가 다 나온 후에도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하지.
어떤 김광석 팬들이 아직도 김광석을 부인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세월호 유가족들이 문재인 정권 4년차인 지금도
세월호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진상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죄책감이 가장 큰 사람들은 보통 유족인 경우가 많으니
보통 유족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저런 말을 하는데
사람들은 그게 비이성적 행동이라는 게 보이면서도,
지금 가장 힘들 사람들이 유족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성적으로 지적하기가 힘들다.

아무튼 다들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니 참 안타까우면서도
그 슬픔이 정말 어쩌면 무고한 다른 사람을 해치는 칼이 될 수도 있단 걸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