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소녀는 어떻게 애국심 없는 ‘국민’이 되었나 


 나는 애국심이 없다. 물론 날 때부터 없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의 나는 국가의 충실한 국민이었다.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을 많이 봤는데, 매일 텔레비전의 하루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운 것은 물론이고, 태극기 그리는 법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깨쳤다. 그리곤 태극기 그릴 줄 모르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초등학교 땐 반장이니 부반장이니 하는 것도 가끔 했었는데, 매주 토요일 학급조회가 시작될 때 친구들 앞에서 가슴에 손을 올리고 국가에 대한 경례를 외워서 말할 때면, 마음 속에서 알 수 없는 애국심이 샘솟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한 적도 있다.) 김동성이 오노한테 금메달을 뺏길 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울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친구들과 붉은 악마 티를 맞춰 입고 목청 높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뭐 이때까지는 나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나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랑 언니의 돌반지는 모두 IMF시절 금모으기 운동에 징집되어 집에는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지금 생각해보니, 흑역사다.


 내 애국심이 사라진 것은 정치적 의식이 싹트면서부터였다. 중학교 때 많이 읽었던 시사 주간지나 여러 사회과학, 근현대사 서적들이 내 정치적 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에 역할을 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 주민들에게 행한 폭력에 대한 충격적인 기록, 자국민을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이념이 없는 사람마저 반대 진영으로 몰아 학살한 국가 권력, 정권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희생시켰던 그 모든 역사들. 우리나라는 일본에 치이고, 중국에 치이는 당하기만 하는 무결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내 신념을 깨버리는 모든 진실들. 충격이었고, 나의 애국심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때 ‘국가’가 싫어졌다. 국가 혹은 국가 유지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온 그 잔혹한 폭력에는 국가에 애국심을 가져온 나 또한 일정 부분 책임을 가진 것만 같았다. 국가가 싫어지자 내 애국심이 내 것이 아니라 국가 유지를 위해 교육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국가 유지를 위한 일정 정도의 애국심을 가지고 사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나는 그것조차 거부하고 싶어졌다.



 애국심 없는 국민으로 살기 


 지금도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 조금은 삐딱하게 살고 있다. 조금이라도 국가주의의 냄새가 나는 것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에 종종 가는데,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가 시작하기 전마다 하는 국가 의례가 너무 싫어 그것이 끝날 때쯤 야구장에 입장한다. 어쩌다 야구장에 일찍 입장했을 때엔, 국가에 대한 경례를 한다고 모두들 일어설 때 일어서지도 않고, 애국가를 따라 부르지도 않는다. 최대한 불량하게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소심한 저항인 셈이다. 왜 내 돈 내고 내가 야구 보는 데 국가에 경례를 해야 하지. 야구장에서 국가 의례를 할 때면, 야구라는 스포츠가 전두환 정권 시절 3S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생각나 속이 부글거린다. 그래서 아직까지 야구장에서 국가 대항 경기가 아닌 자국 프로팀끼리의 경기에서도 국가 의례를 하나 싶기도 하고. 그 시절 언젠가는 길 가다가도 국기 게양하는 하루 두 번은 모두 멈춰 서서 국가 의례를 했다고도 하고,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마다 국가 의례를 했다고도 하는데, 그것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왜 야구장에서만 국가 의례가 남아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뭐, 일선 학교들에서는 요새도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마다 전교생이 국가 의례를 하려나? 아무튼, 국가의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기를 바라서 강요하는 국가에 대한 경례는, 아무리 내용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다.


 한국인이면 김연아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해야한다는 식의 생각들도 거부감이 든다. 나는 김연아를 싫어하진 않지만,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서명운동을 하고, 하루 종일 그 얘기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삐딱한 생각이 든다. 물론 김연아의 팬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단순한 김연아에 대한 팬심이 아니라 김연아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찌저찌 해야한다는 식으로 김연아가 국가주의와 연결될 땐, 짜증이 난다. 물론 요새는 김연아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은행 광고가 누리꾼들에게 뭇매를 맞은 것만 보더라도 그런 식의 접근이 촌스럽다는 생각이 대세가 된 것 같아 다행이지만, 평소 한국이 얻었던 홈 어드밴티지나, 한국이 수혜를 입은 편파판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던 언론과 사람들이 김연아의 일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은 분명 기이하다.


 국가가 남성에게 지우는 군복무의 의무도 달갑지 않다. 나는 징병제가 싫다. 국가 권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곳은 군이다. 군대에 가는 또래 남성들이 안타까우면서도, 군대 안 가는 여자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군대 얘기를 들어보면 군은 합리성이라고는 없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군 내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웬만하면 기각된다. 군은 외부의 적과 맞서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일까, 국민을 억압하기 위한 조직일까 가끔 헷갈린다. 군은 안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군인에게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안보를 위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한다. 여자들은 징병제에 해당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징병제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한의사 함익병의 “여자는 군복무를 하지 않으니, 국가에 대한 권리를 3/4만 가져야 한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일부 남성 심지어 여성에게도 “국가로부터 징집되지 않는 여자는 부당한 차별도 감수해야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징병제로 인해 남성이 직접적으로 겪는 고통과는 다를 테지만, 여성 또한 징병제의 부당한 희생자가 될 소지가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국가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가. 헌법을 근거로 댄다면 할 말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헌법을 만들 때, 심지어 마지막으로 개헌할 때도, 투표권이 없었다. 아니 이 세상에 없었다. 나는 국가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왜 국가를 따라야 하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면 나도 혼란스러워진다.  

 

나의 모순을 극복한다는 것 

 

 그냥 한 마디로, 나는 국가가 싫다. 애국심이 없다. 아니 의식적으로 애국심을 갖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국심 없는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지만,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사회적 삶을 한 순간에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아직 한국은 애국심이 만연한 국가다. 내가 야구장의 관중석에서 국가 의례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지만, 야구 선수가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경기 전에 국가 의례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인터넷이 뒤집어질 일이다. 


 애국심 없는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때때로 나 스스로에게도 모순된 감정을 갖게 한다. 애국심 없는 국민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아무리 애국심이 없어도 나는 국민이니까. 국가라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나는 국가장학재단과 국가 장학금의 힘으로 학교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재단과 장학금에 아예 ‘국가’라는 이름이 들어가는데, 그런 주제에 애국심을 가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도 될까. 가끔은 그런 생각에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내가 생각해온 바가 있다면, 거창한 이름의 국가 권력에는 언제나 날을 세우고 있되,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자는 것이 것이다. 방학에 봤던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말했잖은가. 국가는 국민이라고. 국가는 정부가 아니다. 국가는 대통령이 아니다. 국가는 경찰이 아니고, 판사가 아니다. 국가는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모두다. 사회는 한반도 이남의 작은 영역일 수도, 전 지구촌 아니 우주에 속한 모두일 수도 있다. 내가 학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국가장학재단이지만, 그 재원을 마련해 준 것은 이 사회에 속한 다른 구성원들 모두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내가 가진 모순은 조금 줄어든다. 


 ‘국가 권력에 날을 세운다’는 것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써 기능하기도 한다. 국가 뿐 아니라 자동으로 모든 집단에 대해 날을 세우게 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 정당화 되듯, 모든 집단은 그 존재 자체로 집단 외부에 폭력을 가할 소지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는 파벌 문제, 학연 지연 혈연 문제 등이 그 사례이다. 집단에 일정 정도의 애정과 소속감을 가지는 것은 개인에게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애정과 소속감이 외부의 사람이나 집단을 배척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지하고 살기위해 나는 ‘우리’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 학교’대신 ‘서강대학교’, ‘우리 나라’ 대신 ‘한국’이라고 쓰는 식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과 시도가 쌓여 나갈 때 조금 더 개인이 존중받고 차별 받지 않으며 합리적인,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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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의 이해 2014년도 1학기 과제 -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제출글

당시 강정인 교수님한테 염세적이고 무기력하다는 안좋은 평을 받았던 글이긴 한데

세월호 2주기를 맞아서 이 글이 생각나서. 이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