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재일 교포이자 북한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정대세가 SBS의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방송은 보지 못하고 기사로 그 소식을 보고 있는데 댓글들이 무섭다. “정대세 빨갱이 아닌가요. 인공기보고 눈물 흘리던 인간이 어떻게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나오나요.” 뭐 대충 이런 댓글들. 그나마 순화시켜서 이 정도다. 한국에서의 인기를 확인하고 싶어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재일교포 축구선수에게는 욕설과 저주가 난무한다. 그가 북한의 국가 대표 선수이기 때문이다.
장면 둘. 대학에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에 부모님에게 살면서 가장 감명 깊게 보신 책 한 권씩 추천해 달라 했다. 곧 대학에 가는 내가 꼭 보았으면 하는 한 권의 책은 무엇이냐고. 고민하시던 아버지는 최인훈의 ‘광장’을 추천해주셨다. 왜 하필 ‘광장’이었을까. 대학에 오고 나서야 어렴풋이나마 아버지의 뜻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경계도시’는 국정원이 다큐멘터리 감독을 협박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 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인 송두율을 옹호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는 여차하면 당신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좋게 말하지만 결국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다큐멘터리에서 비슷한 장면을 봤다면 굉장히 분노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 장면에서는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먹먹해졌을 뿐이다. 나중에 송두율 교수의 말을 듣고 내가 화가 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들도 결국 불쌍한 냉전의 피해자들이죠.”
‘경계도시’는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의 초청을 받아 34년 간 돌아오지 못했던 고향 한국에 방문하고자 하는 송두율 교수 부부의 우여곡절을 다뤘다. 결국 그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다. ‘경계도시’에서는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의 회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송두율 교수의 감사 서신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 편지 내용을 들으며 앉아있던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의 담담한 표정도. ‘경계도시’는 무척 슬펐다. ‘광장’에서 이명준의 자살을 마주할 때 같은 슬픔이었다. 하지만 ‘경계도시’를 통해 송두율 교수의 지식인으로서의 신념을 잘 알 수 있었다. ‘준법 서약서’ 한 장이면 문제없이 갈 수 있는 고국인데 왜 그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것도 포기하면서까지 ‘준법 서약서’ 그깟 종이 한 장을 쓰지 않는지 설명이 나온다.
‘경계도시2’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계도시2’는 ‘경계도시’ 3년 후,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고국 방문을 마음먹고, 한국에 귀국해 간첩 시비를 받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고 결국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며 독일로 돌아가는 일련의 상황들을 다루었다. 분명히 다큐멘터리인데 웬만한 극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누군가 대본을 쓴 것처럼 다큐멘터리를 극적으로 만드는 장면은 송두율 교수가 북한에 가기 전에 본인이 김철수라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에 대해 번복하는 부분이다. 한국에 입국하기 전, 입국해서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송두율 교수는 자신이 김일성 장의위원회 위원으로 등록되어 있던 김철수라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검찰 조사에서 바로 말이 바뀐다. ‘김철수’가 본인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때쯤에는 이미 송두율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의 김철수로서 북한 서열 23위인지 실제 간첩행위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송두율 교수가 ‘김철수’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 보다 그가 북한에서 ‘김철수’라는 가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숨겨왔다는 것이 사건의 중심이 되고 만 것이다. “당신이 김철수라면서요?”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송두율 교수는 “제가 김철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지만, 그렇게 대답하기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이 때 상황은 이미 그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가 아닌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점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왜 들킬 거짓말을 했을까. 당당했다면 미리 밝히고 들어왔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1, 2편 내내 꼿꼿한 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그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아쉬웠다. 물론 나는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송두율 교수가 간첩행위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나는 그는 정말 남북한을 잇고자 하는 경계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경계도시’를 통해 본 송두율 교수의 지식인으로서의 신념은 그랬다. 하지만 아직도 그를 간첩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송두율 교수가 북한에 가기 전 자신이 ‘김철수’라는 가명을 쓰게 될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마치 사실무근인 것처럼 그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었기에 그 사실을 밝히고 나서의 후폭풍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저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물 만난 듯 송두율 교수를 간첩이라고 비난한다. 여론도 이 때를 기점으로 변한다. 그 전까지 송두율 교수에 대한 여론이 괜찮았던 것에 반해 이 때를 기점으로 송두율 교수와 송두율 교수의 입국을 좋게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그가 정말 간첩인가?”하는 의문에 빠지면서 그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진다.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호텔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송두율 교수와 진보 인사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는 박호성 교수, 연세대 김호기 교수 등 익숙한 얼굴이 여럿 보인다. 장면 속의 한 진보 인사는 술을 마셔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홀로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한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훈계랄지 원망이랄지 하는 이야기다. 송두율 교수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 박호성 교수가 그만하라며 그의 등을 툭툭 두들기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술이 취해보이는 그를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송두율 교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어지는 포장마차 장면에서는 송두율 교수의 변호를 맡은 김형태 변호사도 송두율 교수를 추궁한다. 보수 인사인 박홍 서강대 전 총장까지도 송두율 교수를 만나 한마디 한다. 신문사는 사설로 송두율 교수가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즉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훈계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들 송두율 교수를 한국 사회의 틀에 맞추려 한다. 호텔방 술자리에서 진보 인사가 “우리는 여기서 30년을 넘게 버텨왔습니다. 힘들게 버텨오고 쌓아온 사람들이 있다구요.”라고 외치는 것은 그러한 폭력의 절정이다. 송두율 교수 개인의 신념보다 진영의 논리를 우선시하고 강요한다. 송두율 교수를 세상물정 모르고 고생도 안하고 고고하게 살아온 외부인으로 취급한다. 한국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조차 경계인이고자 하는 송두율 교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국민에게 선처를 빌라고 한다. 이쯤되니 송두율 교수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37년 동안이나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 무색해지고 만다. 그가 왜 선처를 구해야 했을까. 한국 국민들의 편이 아닌 게 미안하니까?
송두율 교수는 왜 한국에 입국을 시도하게 되었을까. 그는 그다지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돌아왔을까. 자신의 입국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를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시대가 바뀌었고 한국 사회도 바뀌었을 거라고 기대했기에 들어왔을 것이다. 송두율 교수가 입국을 시도했던 2003년은 노무현 정권 초기였다. 정권이 힘을 갖는 초기였고, 김대중 정부에 이어 민주진영이 정권을 재창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다. 남북정상도 만났겠다. 한국 사회가 그 자신 정도의 경계인은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입국하고 나서 한국 사회는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호텔방의 대화를 보며 나는 그의 책임도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한국 사회 자체의 문제가 더 컸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정대세와 이명준과 송두율을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경계인들이다.
이명준은 중립국을 외치며 배를 타고 가다가 자살한다. 소설이 발표된 해는 1960년이었다.
송두율은 경계인으로서 남과 북을 잇는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신념을 가진 채 한국 사회에 돌아온다. 그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신념을 한국 사회에 의해 짓밟히고, 독일로 돌아간다. 광장이 발표된 지 43년이 지난 2003년의 일이다.
송두율 교수 사건도 어느덧 9년이 지났다. 재일 교포 3세로 태어나 남한과 북한 어느 사회에도 속하지 않고 일본 사회에서 살아온 정대세는 남한 국적을 가진 북한 대표팀의 선수이다. (참고: http://sports.news.nate.com/view/20100617n03575 ) 그는 남한과 북한 어느 나라에도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진짜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북한 대표팀을 선택했다.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행해진 선택인지는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2012년이다.
이명준에서 송두율 그리고 정대세에 이르기까지, 경계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어쩌면 조금씩이나마 나아져왔는지 모르겠다. 송두율 교수는 법적으로나마 무죄를 선고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경계는 견고하다. 한국 사회는 아직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경계를 부정하는 사람들 혹은 경계에 서 있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꽤나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조차도, 북한에 대해서는 완고한 경우가 많다. 진보 인사 몇이 종북 논란에 휩싸이고 ‘통일의 요정’ 임수경이 탈북자를 변절자로 칭했다며 난리가 났다. 보수 성향의 패널이 공중파 토론 프로그램에서 “김정일 개새끼 해봐.” 한다. 요새 분위기가 이렇다. 그 사람들 말마따나 군대에 안가 안보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인지는 몰라도 나는 북한에 대한 이 엄청난 알레르기 반응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 “반미 좀 하면 어때?” 한마디 했다가 철퇴를 맞은 지 십 년쯤 지났나. “친북 좀 하면 어때?” 일련의 종북 논란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친미, 친일, 친중적인 사람들이 모두 한국의 군사 정보를 그 나라에 빼돌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북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가. 주적인 북한에 이득이 될 만한 간첩 행위를 하는 것이 불법인 것은 당연하고,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처벌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의 ‘종북’논란은 구체적 행위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논란이 아니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다. 아니 아직도 한국 정부는 그렇게 자신이 없나.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적화 통일이라도 일어날까봐? 살인을 생각만 하는 건 죄가 아닌데, 김정일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죄가 된다. 김정일 김일성 찬양 좀 하면 어떤가. 양쪽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에 서 있겠다는 사람은 그러도록 내버려 두면 좀 안되나.
(북한 트위터 계정의 글을 리트윗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수사를 받던 박정근씨를 돕기 위한 두리반 바자회에서)
나는 회색의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는 또래 집단에서 무리가 갈리고 싸움이 날 때면 이 편도 저 편도 들지 않고 있다가 친구들에게 욕을 먹곤 했다. 한 무리에 속하고서도 다른 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기가 난감했던 것이다. 학창시절에 내가 가장 자주하는 말은 “과연 그럴까?”와 “그것도 맞아.” 였다. 검은 사람들에게는 하얗다고 욕먹고, 하얀 사람들에게는 거멓다고 욕먹는 것이 회색의 숙명이다. 아직 자기 철학을 갖지 못해 회색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굳건한 철학을 가진 검은 색이나 흰색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때도 있다. 나도 회색을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검고 싶지도 희고 싶지도 않다.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소속을 밝히라고 말하는 사회에게 나는 대답하고 싶다. “저는 유채색인데요.”
2012년 1학기 박호성 교수님의 민족주의론 수업을 듣다가 쓰게된 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 웨스 앤더슨, 스타일의 교과서 (0) | 2013.02.14 |
---|---|
현실적인 것은 무엇일까 (0) | 2013.02.01 |
겨울방학 결산 - 1. 영화 (2) | 2012.02.29 |
슈퍼 사이즈 미 Super size me (2) | 2012.01.28 |
테이킹 우드스탁 taking woodstock (0) | 2012.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