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히 일어나서 
돈까스를 튀겨서 
내가 사랑하는 케이지비레몬과 함께 아점을 먹었다
한 지 41시간 된 밥이긴 하지만 한 그릇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반찬 다 만들었는데 밥통에 밥이 없으면 눈물나
어제 도착한 선거공보를 읽으면서 밥을 먹었는데
녹색당 홍보지가 감각적이었다 본받아라 진보신당 내가 갈등하잖아
 
오디오에는 그저께 산 서울서울서울 컴필레이션 씨디를 엄청 큰 소리로 틀어놓았고 
돈까스를 튀기면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처음 샀을 땐 아오 얘네 노래 대충만들었네 내 이만천원! 하면서 욕했는데 듣다보니 그냥저냥 들을 만 하다   
기름을 아끼지 않고 마구 부어댔더니 완전 바삭한 돈까스가 만들어져서 정말 맛있었는데 하도 많이 튀긴 덕에 금이와 곤지도 포식했다  

임장현은 새벽 한시 사십구분에 밴드가 해체됐다고 싸이 쪽지만 한통 띡 보내놨다 얜 또 뭔가 C의 말대로 잘생긴 이향익에 대한 임장현의 열등감이 밴드의 분열을 만들었을까 하고 고민하다 검색해보니 이향익이 교통사고로 못일어나고 있다네 미안해 오해해서...빨리 낳아요 새로운 음악을 낳아요 

7시 반쯤에 S랑 C가 우리집에 와서 셋이 낚시를 가기로 했는데 S가 학교에 차갖고 갔다면서 지 학교 끝나자마자 우리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럼 한 여섯시쯤 온다는 소린데 얼마 안남았다 
우리집에서 밥먹고 낚시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집에 밥이 없어서 내가 이제 해야하고 애들 오기 전까지 씻기도 해야한다는 것

하면 되지 그게 왜 문제냐 싶은 건
오늘까지 기획기사가 마감이라는 사실
그리고 난 방금 아이템을 바꿨고(원래 아이템도 하나도 취재 안한 터라 아쉬울 게 없음), 취재 안하고 가상의 에이씨 비씨를 만들어서 기사써야할 판이라는 거다 
근데 세 시간째 기사는 한 자도 안쓰고 낮술이나 마시며 현실도피하다가 카톡 그룹채팅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교수님을 욕하고 있다 
우리도 이 사태를 초래한 건 교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게으름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간지 기자라 너무 여유가 없으신 건 아닌가요 교수님 기획기사라매요 일주일이 뭡니까...
주간지 출신 이윤삼 교수님을 본받아요  

친구새끼란 놈이 "야 너 동정을 구하고 있지만 사실 괜찮지?" 라는 뻘소리를 해대서 그런가
괜찮은 것도 같다 사실 모르겠다 

낮술 먹고 제정신 아니라 그런 것 같기도하고.

이 와중에 아빠를 찾는 빚쟁이 아저씨들이 집에 급습
아빠없다고 없다고 없다고요!!!!!!!!!!!!!!!!!!!!!!!!!!!!!!!!!!!!!!!!!!!!으어 뭔가 소설같은 하루네 
아빠는 우리은행에게 난 kt에게 쫓기고 있다 핸드폰 요금 미납해서 매일 정지해버리겠다고 협박문자가 오고있어... 

다 모르겠고 
예수님이 부활해서 쉬는데 너는 대체 언제 부활할 셈인가요.
그것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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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지 못하는 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보다도 할 건지 말 건지가 더 중요한   
그런 것들이 살다보면 가끔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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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너무 많다
쉴 틈이 없어
과제 과제 과제 발제준비 조모임 과제 과제 동아리 과제

이러다 말라 죽는 거 아니겠지
이미 감기 걸리고 피부 뒤집어졌다(스트레스 때문인듯)
피부과랑 가정의학과 가봐야되는데 갈 시간도 없다
이와중에 일복터져서 알바랑 과외 스카웃 전화 왔다 개강하고 나선 구한 적도 없는데
그렇게 일자리 애타게 찾을 때는 없더니ㅠㅠㅠ그래도 돈 버는 것도 중요하니까 안할 수 없다   

힘들어서 괜히 가까운 사람한테 응석만 부리게 되네  
기사는 오늘 밤 12시까진데 언제 다쓰지

헤르미온느의 시계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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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좀 행복한 것 같다
걱정도 많고 불안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슬프거나 우울해서 우는 일이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행복해서 웬만한 화나 짜증도 참을 수 있고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동아리 오빠들도 동생들도 다 좋고
가끔 만나는 오랜 친구들은 반갑고

10이 행복의 끝이라면 7.5쯤 될까
학기가 끝날 때까지 지금만큼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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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지막이 일어나 빌려놓은 만화책을 보면서 어제 사온 군고구마를 까먹었다. 보다가 슬슬 점심을 먹고 개 두마리를 끌고 동네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산책하는 도중에 만난 아줌마 아저씨가 그분들 개에게 물을 주다가 곤지가 뭔지 궁금해서 다가가니까 곤지에게도 물을 주셨는데 곤지가 으르렁거려서 민망했다. 그리고 집와서 개들 목욕시키고 티비를 좀 보다가 밤엔 친구랑 차 몰고 낚시 갔다. 아직 서툴지만 그래도 운전은 재미있다. 밤낚시하는데 야광찌가 없어서 슬펐다. 야광찌 사야지. 낚시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패딩을 입고가서 견딜만은 했다. 캔맥주를 마시면서 찌를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남자들의 취미와 물. 두 가지 모두 내가 어릴 때부터 집착하는 것들인데 낚시는 그 둘이 합쳐져 있다. 


2
자다가 오후에 정신과 의사한테 전화가 와서 잠이 깼고, 병원에 가서 뇌MRI를 찍었다. 원래 80만원짜리라는데 난 실험목적이니까 돈받고 찍었다. 생각보다 별 거 없었는데 내 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 나는 자기애가 강한지 나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게 좋다. 뇌 MRI 결과를 듣고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 뇌에 암덩어리가 생겼다거나 그런 사람들. 큰 병원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 특유의 무거운 공기는 나를 차분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씩 내가 과해질 때는 큰 병원에 가서 로비나 매점 앞에 멍하니 앉아있다 온다.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안 아픈 게 어디야. 정말. 맞는 말.



쓰고 있던 소설은 더는 못쓰겠고 다음 주까지 쓰겠노라 장담했던 노래 가사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블로그를 볼 작곡가 C님. 미안해. 어떻게든 할게.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글쓰려고 캔맥주 따서 얼음 잔뜩 넣어서 마시는 중이다. 안주는 찾아봐도 없길래 딸기랑 먹고 있다. 방 불 다 꺼놓고 빗소리 들리는 사이트에서 빗소리 틀어놓고 블로그 글쓰고 있다. 지금 써야 할 글은 이런 게 아닌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할 것도 '해야할 것'이 되면 왜 이렇게 하기가 싫은걸까. 게으름 피우다가 젊음이 소멸될 것이다. 쓰던 소설을 더 못 쓰겠는 건 쓰다가 내자신이 봐도 재미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재밌지만 보편적인 이야기. 하지만 재밌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쓰는 건 정말 어렵다. 설정이 보편적이지 않거나 등장인물이 보편적이지 않아야만 이야기가 힘을 갖는다. 내가 아직 글을 못써서 그런 거겠지. 어렵다. 글로 벌어먹을 거 아닌데 대충 써야지 싶다가도 글 안쓰면 힘들어져서 또 쓰고.



개강했다. 가는 내내 버스와 지하철이 제때제때 와서 신이 났다. 게다가 지하철은 방금 지나갔는지 자리도 텅텅 비어있었다. 행복한 한 학기를 알려주는 복선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첫 날 들어간 수업은 정원 열 명짜리 수업이었다. 남녀성비 7:3을 기대했다.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남녀성비는 1:9 였다. 여대에 온 줄 알았다. 애초에 신방과에서 남초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어. 허나 교수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어쩐지 운세가 좋더라니...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흑흑.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제작 수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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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나는 아무 음악이나 틀어놓고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성격을 추측해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특히 그 가수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 그 놀이는 더 재미있었다. 친구랑도 우리집에서 뒹굴거리면서 그러고 논 적이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둘의 추측이 비슷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겉모습보다도 목소리가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 겉모습은 꾸미기가 쉽지만 목소리는 그러기가 어려우니까. 그런 의미에서 타고난 목소리가 좋고 나쁜 것보다 목소리로 느껴지는 성격이 좋은 목소리가 더 좋다. 물론 그 추측은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 요즘은 사람들을 만날 때 같이 맛있는 걸 먹으려고 만나는 것 같다. 만나기 전에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약속을 잡는다. 상대가 그러거나 내가 그러거나. 우연이라기엔 웃기다. 무슨 영화 보러가자고 공연 보러가자고 술 먹자고 만나는 경우는 하나도 없고 먹으러 가자고 만나다니...농담삼아 목표했던 엥겔계수 100 달성을 정말 이룰 기세다. 이번 주는 떡볶이, 인도카레부페(카레는 싫지만 난이좋앙), 케이크 만남이 예정되어있다. 


- 빠담빠담을 보는데 이 드라마의 주제는 '세상에 기적은 존재한다.'일까?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남녀 주인공은 거듭되는 우연으로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우연 없이 사랑은 시작될 수도 없는 것처럼. 서울에서 만났던 남자 서울에서 또 마주치고, 살던 통영으로 갔더니 통영에서 만나고, 원래 알던 사람이 그 남자랑 아는 사이고. 빠담빠담에서 한지민 정우성처럼 현실에서도 계속 우연히 마주치면 없던 사랑도 생겨나고 말겠다. 근데 빠담빠담의 정우성은 정말 연기를 잘하는 것 같다. 정우성인데 저렇게 멋있지 않고 찐따같고 모자라보일 수가 있는지. 보면서 설레는 순간이 한 순간도 없는 남자주인공은 또 간만인듯.


- 이상한 한 주 였다. 지난 한 주간 친구 세 명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다. 강남역이나 홍대입구 앞에서 친구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는 여러 번 있었는데 이번 주에 우연히 마주친 세 명은 각각 누군가를 마주치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특이한 곳들 이었다. 나는 다니면서 사람들을 거의 안보고 다니는 편이라 세 번 다 내가 발견당하는 입장이었는데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주말 내내 집에만 붙어있었더니 몸이 가렵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약 먹을 시간이 왔나보다. 내게 콜린성 두드러기를 선사한 내 친구야...너 덕에 난 이렇게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단다. 젠장 정말 이 두드러기는 이 나이에 갑자기 왜 생긴걸까. 대학병원도 원인을 모르는 원인 불상의 두드러기. 난 아직도 그 애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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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 중학교 때인가 활동하던 인터넷 사이트에 경품이 걸려있는 줄도 모르고 릴레이 소설을 썼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퀵보드가 배달된 적이 있다. 그 때 이후로 글에 대한 대가를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큰 돈은 아니지만, 잠 안오는 새벽에 어떠한 구상도 없이 손이 가는 대로 두 시간만에 쓴 소설 치고는 과분한 대가다. 

받은 돈으로는 먹고 싶었던 꼬리찜이나 사먹을까 하다가 그것도 좋지만 뭔가 처음으로 글을 써 번 돈이니 더 의미있게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우선 돈이 없어 볼까말까 고민하던 한국어능력시험을 접수했다. 남은 돈으로는 시험 공부할 책을 사기로 했다. 동네 헌책방에 갔는데 원하는 책이 없었다. 일요일에 홍대 두리반 바자회에 가는 길에 홍대 헌책방들에 들러보아야 겠다. 그리고도 남는 돈은...역시 꼬리찜을 사먹을까?  

방학이 되고 나서 한 달동안 대책 없이 놀았다. 처음엔 아침 6시쯤 잠들어 오후 2시쯤 일어나는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점점 취침시간이 늦어져 결국엔 아침 10시 취침, 오후 7시 기상의 기이한 생활패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동안 컴퓨터하고 기타치고 글쓰고 무위도식 하다보니 이제 내 몸도 그런 생활에 지겨움을 느꼈나보다. 갑자기 패턴이 바뀌어 저녁 9시 10시면 졸리고 새벽5시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어제는 일이 있어 새벽 두 시에나 잠들었는데 아침 8시 반이 되니 눈이 떠졌다. 그래서 씻고 밥차려 먹고 도서관에 왔다. 놀고 놀다 지겨워서 공부를 하니 공부도 재미있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어야 할 텐데.  

글으로 먹고 살 깜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기자는 절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기자에게 글 잘 쓰는 것보다 다른 자질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글을 잘쓰는 것보다도 사회의 약자를 생각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곧은 신념이 아닐까 싶다. 너무 교과서적인 얘기일까. 어쨌든 기자라는 직업도 참 매력이 있다. 크리에이터라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이 맘 때면 들려와야 할 친구들의 취업소식이 하나도 안들려서 다들 취업이 힘들긴 힘들구나 했는데 오늘 초등임용고시 발표일이었다. 대학에 제 때 간 친구 몇몇의 합격소식이 들려왔다.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많아졌다. 나도 열심히 해서 내년 연말에는 웃고 있을테다. 목표 없이 무위도식 하는 것이 자유인이 아니고 바라는 것을 향해 치열하게 사는 것이 자유인의 참모습일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텐데 치열하게 사는 것이 버거웠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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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삶의 원동력이라면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일까 아니면 그저 불행일 뿐일까.


아빠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길어지는 게으름을 이겨내려 노력한다.  
지나보니 머리가 크고 나서는 아빠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그 원망이 삶의 원동력이었고,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었다. 이것은 아빠와 엄마로부터 학습된 결과이기도 하다.


아빠는 명문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 명문대 졸업장은 한 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언제나 엄마의 가족들이나 인맥의 테두리 안에서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엄마 덕에 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원인에 대해 아빠가 대학 시절에 데모를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계신다. 나도 머리가 크기 전까지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아빠가 하는 일이나 집의 가난함 같은 것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난 집의 상황이 아빠가 그 시절에 양심을 지킨 대가라고 생각해서 자랑스러웠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시면서도 퇴근하면 인문학 책을 읽고 모든 일에 척척박사인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는 돈보다 명예에 약하다.  


아빠에 대한 신화가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빠는 행동하지 않았다. 행동해야 할 때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모든 일을 마지못해 했다. 엄마에게 떠밀려서 겨우겨우.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아빠가 데모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빠는 그마저도 고민하다가 중간쯤에서 했다.  


그걸 알고나서부터는 아빠처럼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언제나 내 기준이었다. 아빠처럼 되는 게 두려웠다. 


이과를 선택했던 것은 아빠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대학 잘 가봤자 연고댄데 연고대 문과 나와서 뭐해. 이게 내가 고등학교 때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에 가면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근데 아빠가 대학 원서를 쓸 때 1지망으로 신문방송학과를 썼던 걸 알게 됐다. 아빠처럼 되면 어떡하지. 그러면 안되지. 의대에 가야지. 의대에 못가더라도 엄마 말대로 공대가 훨씬 취직이 잘되니 공대에 가서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다. 


재수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학력고사를 평소보다 훨씬 망쳤는데도 재수를 안했다. 할머니가 반대해서라지만 큰 아들 재수 못시킬 만큼 가난한 집도 아니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꽤 사셨다. 아빠는 재수를 하고싶었다지만 밀어붙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재수를 했다. 아빠가 평생 그걸로 얼마나 후회했는지를 봐왔기에 가족들은 내 재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삼수는 내가 정했다. 안하면 아빠처럼 후회만 남길 것 같아서. 삼수해서 대학에 와서 순응되면서 반수는 할까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내가 과외한 돈으로 사반수도 했다. 굳이 안했어도 되는 마음상태였는데, 이것도 결국은 아빠처럼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삼수해서 다니고 있던 대학은 아빠가 나온 대학과 라이벌이었다. 아빠처럼 될까 하는 두려움은 극에 달해있었다. 그래서 했다. 서울대 가서 아빠랑 나는 다르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대학을 고를 때도 그랬다.
비슷한 두 대학 사이에서 고민할 때, 아빠는 당신이 나온 학교말고 지금 내가 다니는 그 학교를 쓰라고 추천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빠랑 같은 대학을 가는 건 싫었다. 알 수 없는 그 어떤 평행이론이 있을까 두려웠다.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지금도 아빠처럼 되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게으름에 순응된 몸을 억지로 억지로 일으킨다.
나는 정말 몹쓸 불효녀다.


인생에 있어 사람들이 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거나, 그렇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행복을 찾는 것. 일과 가정. 그 두 가지의 행복이 모두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중 한가지에서 행복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아빠는 가정에서 어느 정도의 행복을 얻으며 사셨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아빠는 일에서의 행복이 더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안타까운거고 아빠처럼 살지 말아야지 싶은 것이다. 아빠는 일에서 얻지 못한 행복을 취미생활에서 얻으며 살아 오셨다. 그리고 지난 인생에 대해 아빠도 후회가 많다. 왜 도전하지 않았을까, 왜 결단하지 못했을까 하면서. 그리곤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씀하시지. "아빠처럼 되지 말라고. 뭐든 열심히하고 도전하라고"
그 얘기를 들으면 "지금이라도 아빠도 도전하라니까? 아빠 뭐하고 싶은데. 영화찍고 싶으면 찍어. 60살에 첫영화를 찍은 할아버지도 있어." 하고 대답하지만. 역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행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건 슬픈 일이다. 


나는 아빠를 정말 사랑한다. 물론 단지 내 아빠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여느 딸이 아빠에게 갖는 애정 이상으로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지금도 어딜 가면 팔불출처럼 아빠 자랑을 하고 다닌다. 지금도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아빠지만,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빠는 더욱 좋은 아빠였다. 한결 같았다. 남다른 아빠였고 아빠의 딸인 건 어딜가나 자부심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아빠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고 부러워한다. 우리집에 놀러와 아빠를 만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아빠랑 얘기하는 게 좋고 재밌고 아빠랑 영화보러 야구보러 전시회보러 다니는 게 좋다. 말그대로 친구 같은 아빠다. 게다가 아빠의 인격도 난 존경하는 면이 있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아빠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내 생활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라는 게 슬프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빠인데. 이것은 불행 중 다행일까 그저 불행일까. 내가 불행한지 좀 덜 그런지조차 모르다니 나는 바보 천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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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전 전에 쓰던 핸드폰을 충전해서 켜봤다. 며칠 전부터 계속 언제 한 번 켜봐야지 생각했는데 드디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나와 고3, 재수, 삼수를 함께한 의미가 깊은 핸드폰이다. 열 네 살쯤 핸드폰을 처음쓰기 시작해서 여러 대의 핸드폰을 썼는데, 대부분 핸드폰의 종말이 고장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 핸드폰은 멀쩡해서 다시 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지금 핸드폰 이전까지는 같은 회사의 핸드폰을 두 번 써본 적이 없네. 싸이언, 에버, 스카이, 모토로라, 삼성, 그리고 지금도 삼성 폰을 쓰고 있는데, 고장이 안났던 핸드폰은 오늘 켜 본 모토로라 크레이저 뿐인 것 같다. 사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3년으로 되게 길어보이는 시간이지만 재수 때에는 핸드폰을 정지했었기 때문에 실제로 핸드폰을 사용한 기간은 고3때와 삼수 때 두 해 남짓이었다. 왠지 수험생활 때는 마치 물건이 먼저 닳나 내 수험생활이 먼저 끝나냐 오기라도 부리듯 필통도 그렇고 같은 걸 바꾸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했었는데 핸드폰도 그 중 하나였다.

 

핸드폰을 켜니 잊고 있던 과거가 살아돌아왔다. 아쉽게도 문자함은 등록을 한 뒤에야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문자함이 제일 궁금한데 정말 아쉬웠다. 개통하지 않는 이상 볼 방법은 없는 걸까? 게다가 이제 kt가 2G서비스를 종료한다니 이제 이 문자함을 볼 방법은 영영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거 아닌 것도 영영 끝일 거라고 생각하면 되게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나한테 있어서 이 핸드폰의 문자함은 별 거니까, 괜시리 착잡해졌다.


핸드폰을 켜니 연애 같지 않은 연애 혹은 연애 같지만 연애가 아닌 것의 흔적이 쌓여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식이다. 누군가와 나눴던 감정을 잘 정리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그런 날들의 기억. 잊고 있었던 기억도 있고 마음 속에 아련히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도 있었다. 기억들이 추억으로 변해가는 시간들은 견디기 힘들다. 이제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기에 핸드폰을 바꾸고 3년만에야 이 핸드폰을 켜 볼 용기가 났다. 그런데 켜보니 시간은 박제되어있고 사진은 그대로고 마음은 아련해졌다. 그래도 이젠 추억이 된 게 맞는 거겠지.




그 사람이 그립진 않은데 그 시간들이 정말 그립다. 그런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감정의 찌꺼기를 모아모아 꿀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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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주관적인 것을 마치 객관적인 것인 냥 말하는 것이 싫다. 근데 나자신도 자주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걸 알고 있다. 

-지나친 상대주의의 늪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계치에 이르렀다. 한계치인가 임계점인가. 무튼.

-마 마 거리는게 싫다. 사투리 마 말고 이석원이 쓰는 그 문어체의 마. 이석원이 잘쓰고 그 애도 잘썼던 말인데 이석원 일기 보다가 밴 거 티나서 찌질해 보였었다. 아. 난 아직도 이석원이나 걔나 똑같이 애증인가. 몇 년 전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짜증이 확 나네. 근데 더 이상 보고싶다는 생각이 안든다는 게 긍정적 변화다. 둘 다. 
  
-돈 벌려고 글 좀 써서 냈는데 돈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뱃돈은 생각보다 훨씬 초라했다. 초라. 초급 라틴어.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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