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요상한 물품은 무엇인고...
우리나라에 오는 무슬림들 급해서 히잡 못사온 사람들 위한 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
생긴 건 무슨 자살폭탄테러 단체가 쓸 거 같이 생김...
여자 모델 위풍당당한 자세 보소...ㅋㅋㅋ 전사 같음...
양어깨에 내린 총이나 폭탄 들어갈 거 같은 주머니 뭐냐...ㅋㅋㅋㅋㅋㅋㅋ
아래에 회원만 살 수 있단 거랑 안전 확인 받았단 것도 매우 미심쩍다...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의 용도는 무엇인가ㅋㅋㅋ

내가 돌려달라고 몇 번 말해야 겨우 갖다줄 거 같은 그런 애들이랑은 애초에 안 논다

고 하니까 친구가 막 웃었다 뭔 애들인지 알 거 같다면서ㅋㅋㅋ

난 일진이나 노는 애들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살아왔다

재밌다 멋있다의 느낌도 있었는데 너무 막 나가면 피하고픈 그런 느낌도 있었음

난 좀 대책없어 보여도 나름의 선이 확실한 편인데 그 선은 저런 애들이랑 놀던 초중딩 때 형성된 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ㅋㅋㅋ 막 나가는 게 무서워서.

처음 노는 애랑 친해진 건 초딩 때였는데, 초3땐가 친해진 노는 여자애가 내가 뭘 하든 날 따라하고 나에게 심하게 집착했다. 그리고 얘는 늦둥이여서 용돈이 항상 풍족했는데 돈을 너무 헤프게 쓰고 절제라곤 없었는데 나는 그게 왠지 무서웠다. 항상 돈아껴쓰는 게 습관이었어서 그런가. 그래서 거리를 두고 결국은 절교에 이르렀다...뭔가 안좋게 끝났던 거 같은데 나 얘 무서워서 피해다녔던 거 같음. ㅋㅋㅋ 얘는 음 나중에 끝없이 진짜 놀아갖고 중딩땐 소년원 갔음. 경찰서에서 조사받다 창문으로 탈출했단 무용담이 전해졌었다. ㅋㅋㅋㅋㅋㅋ

초6때는 전교에서 제일 노는 막장 남자애한테 모둠 수업하다 창녀소리 들었는데 창녀가 뭔지 몰라갖고 엄마한테 말했더니 엄마가 식겁했던 기억이 나네ㅋㅋㅋ근데 얘는 나중에 우리 담임샘이 개과천선 시켜서 정상인됨ㅋㅋㅋ 고딩땐가 따로 만나서 아웃백도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오히려 얘가 보통 애들보다 더 순수한 면이 있던 것 같다

음 그담에 중3때는 잠시 더 본격적으로 노는 애들이랑 놀았는데. 얘네한테 솔직병을 배우게 돼씀ㅋㅋㅋ얘넨 예를 들면 놀다가 방구냄새가 나도 눈치 안보고 누가 방구꼈냐 대놓고 말했다...걔네보다 선비였던 나는 헐 어떻게 저걸 대놓고 말하지 싶었는데ㅋㅋㅋ 저 이후로 나도 아 누가 방구꼈냐 하는 인간이 됐다ㅎ이거 잘된 건지 지금도 몰겄네

그리고 막 노는 여자애가 우리집 와서 야동 틀어갖고 그때 태어나서 처음 야동이란 걸 보기도 하고ㅋㅋㅋ롯데월드 소풍갔는데 쟤네들이 초딩들 삥뜯는댔는데 말릴 용기 없어서 옆에 서서 지켜봤던 기억도 남. 마음이 너무 불편했던 기억도.

결국 그 삥뜯는 제일 놀던 애가 체육시간에 나랑 애들 지갑에서 돈빼간 거 알아내서 저애가 왕따가 됐지

암튼 노는애들이랑 놀 때는 마음 불편한 순간들이 많았다 난 문방구에서 뭐 훔치고 그런 게 1도 이해가 안갔고 그래서 저런 애들이 그런 무용담 말하는 것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뭐 그외에도 노는 애들의 세계는 진짜 딱 센 애는 센 대접 받고 약한 애는 약한 대접 받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는데 그게 무척이나 보기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와중에도 유독 매력있는 애들+놀면서도 선 지키는 애들과는 친했고 내가 인간적으로 좋아했다. 내 짝은 맨날 학교끝나면 다른 학교 일짱이랑 맞짱뜨러 다니는 쌈짱 남자애였는데 내가 수학숙제 다 베낄 수 있게 보여줄 정도로 좋아했던 애였음. 친하기도 친했고.

그리고 노는 애들 중에도 저런 애들은 눈치도 빨라서 뭔가 지들이 평소엔 돈 꾸고 잘 안갚고 그런 양아치짓을 하더라도 나한텐 안그랬고(난 그런 걸 견딜 수 있는 애가 아니었으므로)... 다른 노능애들이 나한테 그러는 걸 보기라도 하면 야 그러지마 라고 한마디씩 하던 그런 애들이었다

노는 애들 중엔 유독 어른스러운 애들도 많았던 거 같다
쟤네 사이에서 인정받으려면 뭔가 두려움없이 선을 넘을 줄 알거나 그런 척 할 줄 알아야하는데 난 못그런 인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절대 놀 수 없는 인간

지금은 저런 과거를 가진 애들이랑 생활반경이 거의 안겹치는지 주위에 학창시절 모범생이었을 사람들만 드글드글한데(그니까 좋은 대학 나왔겠지 다들)

가끔 저렇게 이미 어릴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잘 놀았겠군 싶은 사람들 만나면 자연스럽게 끌리는듯...

사실 연예인도 막 sm 스타일들 보아나 최강창민 같은 그런 숨막히는 모범생 느낌 애들이 싫고 좀 껄렁껄렁 양아치 같이 놀았을 거 같은 애들이 좋다 그리고 그런애들이 웃김

글고보니 어릴때 진짜 다양한 애들과 놀았군 전교 삼등부터 전교 쌈짱, 전교 얼짱, 타워팰리스 사는 애, 판자집 애, 웃긴 애, 진지충 등등등등등 이게 공립 학교의 좋은 점인가

암튼 저때의 경험 탓인지 성인된 지금도 어떤 사람 만나면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을까 떠올려보곤 할 때가 종종 있다

제일 싫은 타입은 구석에서 책만 읽으면서 사회성 1도 없이 또래가 하는 놀이 하나도 안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을 애들

엊그제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다시는 수능과 가까이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교육담당 기자가 되어 수능 얘기를 매일 마주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래서 아는 거야. (삼수해서 아는 게 아니라!)

수능 성적표에 얽힌 사연이 있다. 내가 바로 성적표 잘못 나왔다고 평가원까지 찾아간 이 구역 미친...년...음 다들 수능 얘기하면 마킹 잘못해서 답안 밀려써서 어쩌고들 하지만 평가원 찾아가서 자기 답지 확인하고 온 사람은 난 아직 나밖에 못봤다ㅋㅎ

아무튼 때는 2009년. 딱 이맘때쯤. 삼수생이었던 난 동네 교육청에서 성적표를 받아 확인하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탄 것까지 생생하다. 점수를 보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시발? 수학이 3점 낮게 나왔다.

그전에, 돌이켜보면 수능날도 수학 때문에 울었다. 재수 때까지 이과생이었기에 문과 수학은 진짜 쉬웠다. 난 애초에 수학 좋아해서 이과간 거였단 말여...ㅋㅋㅋ 아무튼 문과시절엔 시간이 남아돌아서 꼭 수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번씩 풀었다. 근데 하필 수능날. 삼수 수능날. 수학을 순서대로 두번째 풀다가 마지막 주관식 30번 문제 계산이 이상한 걸 발견한 거다. 시험지를 두번째 푸니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대? 근데 이게 계산이 틀린 건 알겠고. 그래서 계산을 하고 또 하다보니 답안지를 낼 시간. 그래서 일단 답을 써서 냈다.

내고 나서 다시 계속 풀면서 확인해보니 답이 틀렸대? 그래서 나는 수학 보고 점심 먹을 시간에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아니, 수리 나형을 96점을 맞다니 이게 말이 돼? 나는 100점을 맞아야 되는데! 나는 서울대에 가야되는데!!! 나는 삼수를 했는데!!!

그래서 수능 시험장에서 나오는데 수학 때문에 눈물이 펑펑 났다. 수학 하나 틀린 걸 이미 아니까. 아 문과 수학이 96점인데 서울대를 갈 수 있나? 가고 싶은 사과대는 못 가겠네. 아 시발. 이제 수능 다신 못 보는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울면서 나오니까 시험장 앞에 엄마가 놀라서 뭐냐고, 밀려썼냐고, 왜그러냐고 붙잡고 물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아빠 차에 탔다. 밥 먹으러 가겠냐는 아빠 말에, 마음 불편하다고 일단 집 가서 가채점부터 해야겠다고 집으로 갔지.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보니 평소보단 망했지만 그래도 여유있게 연고대 갈 성적은 나왔더라고. 수학은 다행히 그거 하나 틀렸고. 나머지도 합쳐서 몇 개 안 틀렸고. 삼수까지 했는데 연고대도 속상하지만. 어차피 비교내신인데 서울대 낮은과 써놓고 논술로 뒤집어야겠다 하고 말았다. 

그렇게 고대 수시도 안가고(연대 수시는 수능 전이라 아예 안썼음. 왜냐면 난 서울대 가야되니깐.) 성적표 나오는 날을 기다렸는데, 수학이 아니 96점이 아니라 93점이 나온 거지. 다행히 1등급이긴 했다만. 아니 수학이...수학이 뭘 더 틀렸다는거야? 답을 내가 수험표 뒤에 다 적어와서 가채점을...!@#$%

수학 3점. 고작 3점이지만 상위권 입시에선 수학 3점이 어마어마하잖아. 그래서 나는 아주 잠시 멍 때리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삼청동에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찾아갔다.


혼자 가긴 두려워서 김우영이라는 중학교 때부터 베프랑 갔다. 걔는 지금 치과의사하고 있는 앤데, 지금이야 바빠서 일년에 한두번 얼굴보기도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심심해서 내가 하자는 건 다 잘 같이 해줬다. 둘다 솔로일 땐 크리스마스에 만나서 영화 연달아 보기도 하고. 암튼 그렇게 30 다 먹은 지금까지도 친한 친군데.

김우영이랑 삼청동에 가서, 나 마킹 잘못된 거 같아서 왔다. 확인하고 싶다. 하니까 신청서를 쓰고 며칠 뒤에 다시 오라고 하대.

그래서 김우영이랑 다시 또 삼청동에 갔는데.

거기서 직원이 내 수리 영역 오엠알 카드를 꺼내주는데.

분명히...내 필적이 맞는데. 내 카드가 맞는데...

아직도 안 잊혀진다. 맨 앞장에서 바로 한장 넘긴 뒷장. 6번. 절대 틀릴 일 없는 그 쉬운 문제. 6번.

보기③의 4가 답이라면, 내가 답을 ④라고 마킹해둔거야...


응...시발...내가...내손이...그랬더라...ㅋ...

근데 나는 원래 답을 적을 때 ③이라고 문제별로 숫자를 한번더 적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게 숫자를 잘못 적을 때가 있단 걸 알아서 삼수하면서는 습관도 다 고쳤거든. 그냥 번호에 체크만 해놓고 마킹할 때 그 번호를 마킹하는 걸로.

그렇게 노력해서 삼수 때는 수십번의 모의고사동안 마킹실수를 단 한 번도 안했는데. 수능날 처음 한거지.

나와서 존나 쳐울었다. 김우영은 겁나 위로를 해주고, 삼청동에서 밥 먹었는데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 팥죽이었나?


아무튼 그래서

나는 

3점이 부족해서

연세대 사과대 추합을 못하고


서강대에 우선합격으로 오게됐다는

슬픈 이야기ㅎ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적표 받았는데 마킹 실수한 거 처음 알게된 수험생들 힘내라...의심되면 평가원은 웬만하면 가봐...물론 컴퓨터는 쉽게 실수하지 않지만...미련은 없애는 게, 좋거든...



1. 소주가 맛있음

물론 언제나는 아닌데 소주 맛있는 날이 있음. 

예전엔 이 쓴 걸 대체 왜 먹나 했는데 이런 날은 아무도 안 시켜도 소주를 마구 들이킴. 

그런 날은 다음 날 숙취도 없음. 


2. 평양냉면이 맛있음

20대 초반에 처음 을밀대에서 평양냉면 먹었을 때 이런 걸 만원 가까이 받고 팔다니 헐 했었음.

처음엔 그냥 고기국물 희석시킨 맛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음. 고기 넣고 한 며칠 있다가 고기 꺼내고 먹는 느낌.

근데 이제는 없어서 못 먹음. 특히 소주랑 환상의 궁합. 술취하다가도 평냉 국물 들이키면 느낌 짱좋음.

근데 을밀대는 저때 기억 때문에 다시 안가봐서 모르겠고 

여의도 정인면옥을 사랑함


3. 술 마시다 새벽 4시여도 택시 탐

예전 같으면 첫차 기다렸겠지만 이젠 그럴 체력 없다

택시비를 세상 제일 아깝다고 생각했었음. 그돈이면 술 더 마시지 하고 첫차 다닐 때까지 술을 더 마셨음. 

근데 지금은 다음날 약속 없이 쉬는 날이어도 못그러겠다 힘들어


4. 술 취하면 곱게 집감 

내 술버릇의 대부분은 택시비 아까워서 집 안가려다가 생긴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술 아무리 퍼마셔도 택시타고 곱게 집감

술 엄청 마셔도 토 절대 안함(이건 뭐지 위장이 튼튼해졌나)

술마시고 집가도 씻고 샤워하고 잠(이건 얼마 안됐다)


난 나이 먹는 거 좋은 거 같애 

적어도 지금 나이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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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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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땐 방학을 앞두고 꼭 생활계획표를 짜라고 했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규칙적인 생활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라

방학 때는 학원 가는 시간 외에 정말 맘대로 살았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그래서 그때는 생활계획표라는 게 정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남들이 짜는대로 생활계획표를 그렸다

뭐 10시에 자고 8시에 일어나서 뭐 아침밥먹고 아침운동하고 어쩌고 하는거...


근데 그걸 집에다 붙여놓으면 엄마가 왜 맨날 너 이대로 안하냐고 혼내는거다

그래서 어느해부터인가 깨달음을 얻고

방학 전에 계획표를 짤 때부터


오후11시-오전11시 취침

오전11시-12시 식사

12시-6시 자유시간

6시-7시 식사

7시-11시 자유시간


뭐 이딴 식으로 내 맘대로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선생님이나 엄마는 계획표가 왜이러냐고 뭐라했는데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하는 거 같다고 함


그러고 진짜 방학되면 저대로(=내맘대로)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진ㅋㅋㅋ


중학교 때는 메이플스토리에 빠져서

아침에 일어나서 그 차림으로 바로 컴퓨터 켜고 10시간씩 메이플하고 자고 

그렇게 한 한달살고



할튼

계획이라는 건 참 쓸모가 없어

왜냐면 난 어차피 그대로 안할거기 때문이지

계획이라는 게 자기기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 계획을 웬만하면 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또 강박이 있어갖고

한 번 세운 계획은 막 지켜야할거같은 강박이 심하고 그걸 못지키면 자책하게 되고 그래서

계획 안 세우는 것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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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의 일반인 여성보다는 조금 더 하드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 평범하지 못한 유머 감각은 팬이 있는가하면, 안티도 있었다. 내 유머 코드를 설명한다면 미국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정도의 수위인데, 유우머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린 한국에서는 종종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고 입시를 할 때 학원 영어 선생은 나를 무척 싫어했다. 그녀는 나의 개그를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내 여러 개그 중에서도 디스 개그를 광적으로 싫어했다. 정작 디스를 당하는 당사자들이 더 즐겁게 웃는 디스조차 그녀는 진절머리를 치며 싫어했고, 나와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나에게 훈계질을 하곤 했다. 나는 아주 가끔씩 분위기를 봐서 그런 그녀의 오버스러움을 조롱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웃고, 다들 웃는 분위기에서 차마 정색할 수 없는 그녀는 애써 화를 참으며 억지 웃음을 짓다가, 가끔은 폭발하여 정색하고 화를 냈다.


그녀를 조롱하는 데 개그의 형식을 사용했듯,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비꼬며 같이 있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도 내 특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 대부분의 디스 개그는 애정이 바탕이 된, 악의 0%의  초딩식 마인드에서 비롯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심리 말이다. 다행히 어린 시절 정신이 건강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런 내 유머를 받아줄 여유가 있었고, 주위엔 내 개그에 함께 낄낄댈 수 있는 친구들로 가득했다. 나는 디스하는 것을 좋아하듯, 디스 당하는 것도 좋아했다. 친구들이 다같이 연합하여 나를 갈굴 때는 내가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며 상황을 즐겼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의 디스 개그에 맞디스로 반격하곤 했다.


하지만 영어 선생만은 내 개그를 너무너무너무 싫어했다. 나는 당시 학원 오빠들과 절친하였는데, 오빠들과 나는 서로를 디스하며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오빠 오늘 그 패션 뭐에요? 할머니가 주신 옷이에요?" "너 그 바지 아빠 팬티 주워 입은 거냐?" 하는 식으로 인사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사실 오빠들과 나는 아주 호의적인 관계였고, 그 중 한 명과는 썸도 탔으며, 이후로도 14년을 넘게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영어 선생은, 그런 내가 오빠들에게 예의가 없다며 또 나를 혼내고 훈계질하곤 했다. 아니 우린 서로를 갈구며 놀고 있는 것뿐인데 왜 그쪽이 불편한 거에욧!


그때부터였다. 어떤 사람을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머가 오고 가는 현장에 꼭 정색하며 분위기를 망쳐놓는, 시쳇말로 '진지충'들. 한마디로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수도없이 관찰해온 결과(싫으니까 집요하게 관찰함), 그들의 몇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지충들의 특징~

1. 80% 이상 여자 : 중고딩 남자 사이에서 진지충으로 유머 감각 없이 굴다가는 이미 답답한 새끼 취급 받으며 도태 당하게 되어있음. 아주 소수의 원래 착하거나 올바른 이미지의 남자애들(cf.박보검)만 이 디스 개그전에서 논외 취급 받으며 고고하게 살 수 있음.

2. 90%의 확률로 정신이 건강하지 않음 : 누군가 자신을 놀리거나,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을 곧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유리멘탈. 자신을 향한 놀림은 무조건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호의와 애정에서 비롯한 놀림과, 악의에서 비롯한 갈굼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를 구분 못할 거면 그냥 다들 내가 좋아서 놀리나 보다 생각하면 자기 정신 건강에도 더 이로울텐데. 자신을 향한 놀림은 무조건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않고 피해의식이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3. 지능 낮음 : 원래 서양 연구 결과 보면 사르카즘(비꼬기 개그, 농담) 잘하는 애들이 머리 좋고, 유머 감각과 지능은 비례한다고 나옴.

4. 장난이나 농담이 통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답답한 가정 분위기 : 진지충 부모 아래 진지충 자식 자란다.


나는 자라면서 최대한 진지충을 피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하지만 걱정 없던 어린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는 인생만큼 사람들의 여유도 사라져갔다.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를 디스하며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은 줄어들었다.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서로의 고쟁이 패션을 디스하며 깔깔거리는 친구 관계를 꿈꿨지만, '우리 이제 그럴 나이 아니'라는 말에 숨겨진 친구들의 피곤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아가 나 스스로도 힘든 시간을 겪으며 진지충들의 예민한 유리멘탈을 한시적으로나마 겪어보게 되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의도치 않게 다치게 할까 웬만해선 디스개그를 자제하게 됐다. 정말 친한 소수의 친구들과만 디스 개그가 남아 있는데, 멘탈의 튼튼함이 상위 10%는 되는 좋은 친구들이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서로를 갈구며 놀 수 있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매우 행복하다. 


대신 나이든 나의 메인 개그는 '자기 디스 개그'가 됐다. 나의 모든 아픔을 개그로 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20대 초반에 잠수 이별을 두 번이나 당했는데,  친구들과 카톡을 하다가 잠시 카톡이 끊기면 "왜그래...? 잠수야...? 너까지 나한테 왜이래...?"하면서 계속해서 카톡을 보내는 집착녀 코스프레를 하곤 했고, 잠수 이별을 겪으며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지켜봤던 친구들은 이 대목에서 어김없이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 외에도 최종 면접 탈락, 부모님 사업 망한 것, 11년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등 나는 커다란 아픔일수록 개그로 승화하며 치유했다. 11년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같은 것은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하드코어하기 때문에(눈치없이 했다간 그 자리가 숙연해짐), 사람을 가려했다. 이런 개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들은 다른 어떤 개그보다도 이런 개그를 좋아하며 함께 깔깔거렸고, 나는 그 과정에서 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 

역시 유머는 만병통치약이었던 것이다. 껄껄껄.


뭘 위해 이 글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하고 싶은 말은, 모두에게 유머 감각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 나라의 개그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너무 많은 금기가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대머리를 보고 웃으면 안 된다고, 달리기하다 친구가 아무리 웃기게 넘어져도 웃지 말아야 한다고, 그 외에 여러가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질만한 상황에서 웃음을 참아야 한다고 지나치게 강요 받으며 살아왔다. 할아버지가 대머리길래 빛나리라고 놀리다가 진지하게 혼났고, 친구가 웃기게 넘어져서 크게 웃었다가 당사자한테 뒤에서 눈치 없다고 욕 먹은 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을 두려워말자! 컴플렉스가 없는 인간은 스스로가 희화화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컴플렉스가 있는 인간도 참고 자신의 컴플렉스를 희화화하다보면 컴플렉스가 점차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을 웃긴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찬 행위인가. 빛나리라고 대머리를 놀리는 손녀에겐 "허허허 욘석! 할아버지 레이저 빔 맛 좀 볼테냐?"하며 손녀를 향해 대머리 광선을 쏘자. 넘어져서 아프지만 친구들이 웃으면 무릎을 털고 더 과도하게 절뚝거리며 친구들을 향한 몰카를...왜.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냐고? 그...그...웃으면 수명이 는다구!


하여튼 시절이 하수상해서인지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냥 함께 웃어 넘길 수 있을 만한 것에도 진지한 잣대가 끼어드는 모습이 짜증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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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만듦 폴더 업뎃이냐
아빠한테 스크림 고 scream go 게임을 시켜봄
트위터에 어떤 분이 아빠 시켜서 올린 동영상 너무 웃기길래ㅋㅋㅋ
따라해봤는데 우리 아빠도 만만치 않게 웃기다ㅋㅋㅋㅋㅋ
아빠가 좀 더 길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빨리 죽어버려씀ㅠㅋㅋㅋ 아쉽ㅠㅋㅋㅋ


나무위키에서 뭐하나 검색해서 읽는 게 취미인데(주로 사건/사고 항목을 즐겨 읽음)

보다 보면 중간에 꽂히고 꽂히고 들어가서 막 별 이상한 지식을 다 쌓게 된다


오늘만해도 

인터넷에 트위터 관련된 글 보고 트위터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트위터'를 검색함

-> 리트윗 기능에 대해 읽다가 박정근의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사건'이 리트윗을 무조건 호의의 표현으로 오해해서 나온 웃긴 일이란 설명을 봤음.

-> 몇 년전에 박정근 돕는 두리반 바자회 갔던 게 생각나서 '박정근' 클릭

-> 박정근 사건 1심 공판에서 밤섬해적단의 권용만이 증인으로 나섰다는데 밤섬해적단이 왜 나섰는지 궁금해져서 '밤섬해적단' 클릭

-> 이름만 알고 어떤 밴든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위키에 발췌되어 쓰여진 노래 가사들 읽으니 웃김. 

밤섬해적단 '백범살인일지'라는 노래 가사 보는데 어디선가 들어보기만 하고 뭔지 잘 모르는 사건이라 찾아보게 됨.

-> 김구에게 젊을 때 죄없는 일본인 민간인을 살해한 '쓰치다 살인 사건'이라는 흑역사가 있단 걸 알게됨.

-> 나무 위키 묘사가 맞는지 궁금해서 구글에 '쓰치다 사건'을 검색했더니 김구는 좌익들에게 백색 테러하던 흑역사가 있다는 엠팍 글 발견

-> 김구의 좌익 상대 테러 '백의'에 대해 알게 됨. 

김구가 이승만, 김일성과 달리 같은 독립운동가를 상대로 보복하고 싸우지 않아서 이만큼의 존경을 받게된 것인데, 실은 그들과 같았다는 요지의 글을 읽게됨.

-> 김구의 또다른 흑역사 '김립 피살 사건'에 대해 알게 됨. 

김구가 소련이 준 독립 운동 자금을 임시정부가 아닌 상하이 공산당이 쓰려고 했단 이유로 김립에게 공금 유용 혐의를 씌워 피살한 사건이었음. 

소련은 자금을 임정이 아니라 상하이 공산당에게 준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함. 하지만 아직도 김립은 불명예스럽게 죽어 독립유공자 인정도 받지 못한다나.

-> 다시 박정근 페이지로 돌아옴. 권용만이 왜 증인을 해줬는지 권용만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서 클릭.

-> 권용만 항목을 읽는데 2000년대 초반 3cf라고 꽤 유명했던 만화 커뮤니티 주인장이었다함.

-> 3cf가 뭔지 처음 들어봐서 클릭. 삼류만화 올리는 사이트였는데 웹툰 작가 주호민이 활동했다고. 이말년도 여러번 가입신청했는데 폐쇄적인 사이트라 가입 못한듯.

권용만은 3cf라는 커뮤니티를 무려 고3때 운영했다함. 

-> 3cf의 레귤러 멤버 항목을 읽다 '팔보채'라는 사람을 발견. 한 여자 회원이 사이트 주인인 보노(권용만)과 팔보채 둘 모두와 교제했다나.  

-> 팔보채는 3cf의 부운영자였던 '닥터 고딕', '고두익'의 또다른 이름이었다고 함.

-> 고두익은 디씨인사이드의 네임드였고, 주호민 '신과 함께'에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함. 

-> 카메오 단어 링크가 활성화돼 있길래, '신과 함께'에 고두익이 등장한 컷인 줄 알고 클릭.

-> 그냥 '카메오' 항목이었음. 그 항목을 통해 카메오가 '보석을 조각한 장신구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됨.

-> 다시 고두익으로 돌아옴. 그의 유명 작품 중엔 김성모 만화로 만든 플래시, '왱알앵알'이 있다고 함.

-> '왱알앵알'이 뭔지 몰라서 눌러봄.


그래서 지금 왱알앵알 감상 중...

나 지금 뭐한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