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국문과 전공 필수 과목이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수업이기도 했다. 같은 과목이 시와 소설 두 트랙으로 열려서 골라 들을 수 있었는데, 소설 수업은 꽤 인기가 많았다. 나는 치열한 수강신청을 뚫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므로, 널널한 시 수업을 선택했다.

시 수업은 현직 시인인 교수님의 지도 아래 시를 써 나가는 수업이었다. 서로의 시를 무참히 까대는 강평 시간이 이어지고, 늬들 시는 다 별로야 하는 교수님의 쓴소리도 듣는다. 그렇게 몇 편의 시를 쓴 후에는 교수님이 구해온 아직 출간이 되지 않은 시집(작가도 안 알려줌)을 읽고 평론을 써보는 과정이 이어졌다.

나는 내가 시를 못 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못 썼는데 그걸 그때 깨달았다는 뜻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어릴 때도 백일장에서 시를 써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시란 방학 숙제로 써야 할 일기가 60개쯤 밀렸을 때 일기장을 대충 채우기 위해 쓰는 아무 말 대잔치였다. 난 언제나 'tmi' 같은 사람이라서, 함축이란 건 할 줄을 모르며 애매모호한 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시를 잘 잘 쓸 리가 없었다. 당연히 스스로 보기에도 별로여서 가져가기 싫은 시를 억지로 수업에 꾸역꾸역 써 갔고, 까다로운 국문과 학우들과 시인 교수님에게 열심히 까였다. 내 시가 까이는 건 그럴 만 했다. 그런데 내가 보는 눈도 없다는 건 좀 달랐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꾸미는 말이 많아서 오글거리고 별로인 시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내가 보기엔 재밌고 솔직한 시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나는 국문학 복수전공의 꿈을 포기했다. 이후로 수업이 끝나기 30분 전쯤에나 수업에 들어와 교수님 얼굴을 보고 출석체크만 하고 갔다. 교수님은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끝나기 30분 전쯤 수업에 들어갔다. 씨뿔은 받아야 했기에 과제는 꼬박꼬박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있었다. 그날은 아직 미출간된 시를 평론해 과제로 내는 날이었다. 나는 내 평론이 또 엄청 까일 것 같아서 그날따라 수업 가기가 더더욱 싫었는데, 한번만 더 빠지면 F를 받을 위기라 꾸역꾸역 수업에 갔다. 

교수님이 어떤 글을 교실 스크린에 띄워 놓고 극찬하고 있었다. '이번엔 또 어떤 오글거리는 병신 같은 글일까.' 교실 맨뒷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질투에 물든 재수없는 눈길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그게 내 평론이었단 건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깊은 통찰이 눈에 띕니다. 감상을 자기 만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건 이런 것이고~어쩌고 저쩌고,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한 건 너무 독창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기억 안나서 아무렇게나 씀)"

그게 내 글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그 글이 그냥 과제만 내려고 술 마시고 아무 말이나 쓴 글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술을 한 잔 걸치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시라니까 대충 수능 공부할 때 배운대로 맘대로 의미 부여를 마구마구 했고, 논리는 뭐 그럴듯한 말을 찾아내서 갖다 붙였다. "아이는, 잠에서 깬다. 그가 만난 세계는 이전에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세계이다." 막 이런 식으로 있어보이게 단문으로 대충 막 썼다. 그런 글이 저런 칭찬을 받고 있다니...한 학기 동안 교수님의 인정을 받고자 고군분투했기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허무하기도 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쓴 시 여러 편은 단 한 마디의 좋은 평가도 받지 못했는데, 생뚱맞게 막 쓴 이 글이 칭찬을 받다니.

나는 만들기보다 남 까기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II.

남을 평가하는 건 쉽다. 남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도 쉽다. 그냥 이미 있는 것에 그럴싸한 말을 뱉은 뒤, 아무 논리나 갖다 붙이면 된다. 논리는 생각하기 귀찮을 때에는, 그냥 내가 보기엔 그렇다고 하면 된다. 평가자는 그래도 된다. 평가한다는 위치만으로도 권력관계에서 갑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사랑한다. 남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많이 많이 봐주길 원한다. 아무리 별로인 작품이어도 남한테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싶진 않아 한다.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은 언제나 을이 된다. 그래서 창작자는 을이다.

사람들은 갑의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타인의 글을, 영상물을, 말투를, 외모를, 인생을 평가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평가 받는 것은 아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나도 그랬다. 나나 내 작품이 평가받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평론가가 병신 같고, 창작자는 멋있어 보였다. 거지 같은 작품이라도 창작하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 이러쿵 저러쿵 고나리질만 하는 사람보다 좋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창작자로 정체화했다. 평론가로 태어났지만 창작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게 되었다. 평론가형 인간의 자아가 지나치게 튀어나오려하면, 그 부끄러운 부분을 숨겨대느라 고생하기도 한다.


III.

돈 한 푼 안내고 평가하는 평가자들은 매우 재수 없지만, 창작자라면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내 작품은 물론이고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도 초연해야 한다.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그것이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냥 계속해서 만들고, 계속해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무뎌진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아 여기가 아닌가? 하여튼 창작을 포함한 세상 거의 모든 것의 답은 '존버'이다.

사람들은 어떨 때 다른 사람과 대화가 통한다고 느낄까?

나의 경우에는 두 가지 태도를 가진 사람과 대화가 통한다. '과연 그럴까?'와 '그것도 맞아'.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 지금도 친한 친구인 M과 나는 고2 시절 수많은 밤을 전화하며 보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각자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서 씻으면 밤 열두시. 그때부터 내내 수다를 떨다 새벽 서너시에나 자는 게 아주 흔한 일이었다. 다음날 학교에선 꾸벅꾸벅 졸고. 무튼 그때 우리가 엄청 자주 하던 말이 저 두 가지 말이었다.

지나보니 대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저 두가지다. 내가 맞는지 스스로 의심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틀렸을 때는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의견에 대한 반박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성적인 태도는 기본이다. 그러면 어떤 주제로도 재밌게 대화할 수 있다.

운 좋게도 내 친구들 대다수는 대화하는 걸 무척 좋아하고,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충실했으면서도 토론을 엄청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태도로 독일가서도 잘 사는 C가 그렇고, 회사 때려치고 핀란드 가서 잘 사는 Y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가졌으면서도 그걸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K도 그렇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 아빠랑 대화하면서 배운 것처럼, 커서는 친구들과 대화하며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민감한 주제들을 던지고, 이야기하며 의견을 정리해나간다. 그게 너무 재밌어서, 예민한 사회적 논란이 생기면 곧장 기사 주소를 복사해 친구들에게 보내게 된다. 

나는 가끔은 친구들과 대화하며 내 생각을 바꿨고, 가끔은 생각은 안 바꿨지만 새로운 방향을 의식하게 됐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배운 것 중 당장 생각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순수 예술의 존재 이유

- 순수 예술에서 작품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정부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순수 예술가를 지원해줘야 하는 이유

- 취향에 우열이 존재하는가 

- 부모에게 부모의 역할을 강요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 사업에서 '포장'은 얼마나 중요한가

-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부 SNS 마케팅을 사기라고 비판해도 될까

- 외모지상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 미성년자의 화장을 그들의 자유라고 내버려두어야 할까

- 학교 교사가 체벌도 벌점도 없이 아이들을 훈육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 발표 등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을 가진 아이에게, 의견을 드러내도록 요구하는 게 정당한가

- 대입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의 필요성과 현실적 문제점

- 일베하는 남자는 연인으로서 걸러야 하는가

-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과 남미 사람 중 누구와 더 가깝나.

- 한국의 위안부 피해 사실은 과장되었는가


그러고 보니 진짜 많다. 토론 스터디한 줄. 항상 대화 주제를 찾아다니는 듯하다. 회사 후배들이랑도 저런 대화를 해보려고 던져봤는데, 내가 상사고+내가 어디서나 내 주장을 강하게 하는 편이라 후배들이 불편한지 자기 의견을 말 안한다. 그래서 그냥 후배들과는 저런 대화는 안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을 내림. 대화라는 건 권력관계가 끼면 정말 어려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대화가 통하는'에 필요한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네. 관계가 동등해야 한다. 올해는 후배들과 나도 좀 동등해질 수 있길.

그래서 난 오늘도 친구들과 저런 대화를 하고 있다. 나만큼 자기 주장 강하고 주관 강한 애들이 주위에 가득해서 재밌다.  쓰고 보니 자랑글이네.

슬랙(Slack)을 무료 버전으로 계속 쓰려면 용량을 그때그때 비워줘야 하는데 

슬랙은 자기들 유료 버전을 팔기 위해 파일 여러 개를 한번에 지우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발자에게 불가능은 없으니까 

개발자들이 슬랙 파일을 한번에 정리하는 코드를 짜서 인터넷에 다 배포해놨다.


문제는 나같은 코알못은 그 글들을 봐도 어떻게 하는 건지 쉽게 이해가 안 된다는 거... 

다들 기본 지식은 있는 걸 전제로 올려놓으셔서ㅠㅅㅠ

그래서 오늘 직접  따라해봐서 알아낸 기초부터의 방법을 

코알못도 이해할 수 있게 팀원들과 공유하려고 정리했는데

혹시나 찾는 사람이 있을까 블로그에도 올려놓음.



* 슬랙 용량 한번에 정리하는 법


-슬랙은 자신들의 유료버전을 판매하기 위해 파일을 하나씩 수동으로 삭제하도록 하고

여러 파일을 한번에 삭제하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코드를 활용해서 슬랙 파일을 한번에 지울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방법입니다. 보고 따라하시면 됩니다.


1. node.js 다운로드 (자바스크립트 실행하는 프로그램)

https://nodejs.org/en/

홈페이지 들어가서 10.14.2 LTS 다운로드 후 설치


2. Slack legacy token 발급받기

https://api.slack.com/custom-integrations/legacy-tokens

홈페이지 들어가서 중간쯤 내리면

Workspace/User/Token 써있는 칸이 있습니다.

워크스페이스에는 자신의 슬랙 그룹, User에는 자신의 슬랙 아이디가 써있을텐데, 옆에 토큰 밑에 버튼 눌러서 토큰을 발급 받으시면 됩니다.

저도 토큰이 뭔지 확실히 이해는 못했는데 대충 슬랙에서 부여해주는 자신의 고유 계정번호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있어야 파일을 대량으로 지울 수 있습니다.

토큰 생성을 누르면 xoxp로 시작하는 긴 문자열이 생성됩니다. 복사해두세요.


3. 위 작업을 마치면

컴퓨터 좌하단에서 돋보기 모양 클릭하고, node.js를 검색하면 'node.js command prompt' 프로그램이 있을 겁니다.

이걸 실행하면 검은 배경의 작은 창이 뜹니다. 치고 띄우세요.


4. npm install -g slack-delete-files

창에 윗줄 입력(n부터 복사, 띄어쓰기 틀리면 안됨)


5. 제대로 됐다면 혼자 뭐가 돌아가면서 대충 아래와 비슷한 멘트가 뜰겁니다.

C:\Users\username\AppData\Roaming\npm\slack-delete-files -> C:\Users\username\AppData\Roaming\npm\node_modules\slack-delete-files\index.js

+ slack-delete-files@2.1.0

added 78 packages from 21 contributors in 3.686s


6. slack-delete-files

입력


7. 제대로 됐다면 아래 멘트가 뜹니다.

Options:

 --help       Show help                                               [boolean]

 --version    Show version number                                     [boolean]

 --token, -t  Slack token                                   [string] [required]

 --pinned     Include pinned files                   [boolean] [default: false]

 --max        Amount of files to fetch                 [number] [default: 1000]

 --age        Delete only files older than the specified number of days

                                                         [number] [default: 30]


8. slack-delete-files --age=60 --token=아까 2번에서 발급받은 토큰

입력


9. 제대로 됐다면 Deleting 000 file(s)...

라고 뜨면서 슬랙에서 두달 이상 지난 파일들을 다 지워줄 겁니다.

만약 기간을 설정하고 싶다면, 8에 age이후 숫자에 보관할 일수를 60말고 다른 숫자로 바꿔서 입력해주면 됩니다.

예를들어 30이라고 입력하면 30일 전의 파일들이 다 지워집니다.

저는 이런식으로 제가 올린 두달전 파일을 다 지웠는데, 

다른 사람 파일은 안지워져서 각자 지워주셔야 할듯.


10. 다 지워졌다면 창에 npm uninstall -g slack-delete-files

입력하면 활성화됐던 슬랙 삭제 코드가 꺼집니다.

슬랙 파일 지우기 정리 끝.


이 요상한 물품은 무엇인고...
우리나라에 오는 무슬림들 급해서 히잡 못사온 사람들 위한 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
생긴 건 무슨 자살폭탄테러 단체가 쓸 거 같이 생김...
여자 모델 위풍당당한 자세 보소...ㅋㅋㅋ 전사 같음...
양어깨에 내린 총이나 폭탄 들어갈 거 같은 주머니 뭐냐...ㅋㅋㅋㅋㅋㅋㅋ
아래에 회원만 살 수 있단 거랑 안전 확인 받았단 것도 매우 미심쩍다...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의 용도는 무엇인가ㅋㅋㅋ

내가 돌려달라고 몇 번 말해야 겨우 갖다줄 거 같은 그런 애들이랑은 애초에 안 논다

고 하니까 친구가 막 웃었다 뭔 애들인지 알 거 같다면서ㅋㅋㅋ

난 일진이나 노는 애들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살아왔다

재밌다 멋있다의 느낌도 있었는데 너무 막 나가면 피하고픈 그런 느낌도 있었음

난 좀 대책없어 보여도 나름의 선이 확실한 편인데 그 선은 저런 애들이랑 놀던 초중딩 때 형성된 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ㅋㅋㅋ 막 나가는 게 무서워서.

처음 노는 애랑 친해진 건 초딩 때였는데, 초3땐가 친해진 노는 여자애가 내가 뭘 하든 날 따라하고 나에게 심하게 집착했다. 그리고 얘는 늦둥이여서 용돈이 항상 풍족했는데 돈을 너무 헤프게 쓰고 절제라곤 없었는데 나는 그게 왠지 무서웠다. 항상 돈아껴쓰는 게 습관이었어서 그런가. 그래서 거리를 두고 결국은 절교에 이르렀다...뭔가 안좋게 끝났던 거 같은데 나 얘 무서워서 피해다녔던 거 같음. ㅋㅋㅋ 얘는 음 나중에 끝없이 진짜 놀아갖고 중딩땐 소년원 갔음. 경찰서에서 조사받다 창문으로 탈출했단 무용담이 전해졌었다. ㅋㅋㅋㅋㅋㅋ

초6때는 전교에서 제일 노는 막장 남자애한테 모둠 수업하다 창녀소리 들었는데 창녀가 뭔지 몰라갖고 엄마한테 말했더니 엄마가 식겁했던 기억이 나네ㅋㅋㅋ근데 얘는 나중에 우리 담임샘이 개과천선 시켜서 정상인됨ㅋㅋㅋ 고딩땐가 따로 만나서 아웃백도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오히려 얘가 보통 애들보다 더 순수한 면이 있던 것 같다

음 그담에 중3때는 잠시 더 본격적으로 노는 애들이랑 놀았는데. 얘네한테 솔직병을 배우게 돼씀ㅋㅋㅋ얘넨 예를 들면 놀다가 방구냄새가 나도 눈치 안보고 누가 방구꼈냐 대놓고 말했다...걔네보다 선비였던 나는 헐 어떻게 저걸 대놓고 말하지 싶었는데ㅋㅋㅋ 저 이후로 나도 아 누가 방구꼈냐 하는 인간이 됐다ㅎ이거 잘된 건지 지금도 몰겄네

그리고 막 노는 여자애가 우리집 와서 야동 틀어갖고 그때 태어나서 처음 야동이란 걸 보기도 하고ㅋㅋㅋ롯데월드 소풍갔는데 쟤네들이 초딩들 삥뜯는댔는데 말릴 용기 없어서 옆에 서서 지켜봤던 기억도 남. 마음이 너무 불편했던 기억도.

결국 그 삥뜯는 제일 놀던 애가 체육시간에 나랑 애들 지갑에서 돈빼간 거 알아내서 저애가 왕따가 됐지

암튼 노는애들이랑 놀 때는 마음 불편한 순간들이 많았다 난 문방구에서 뭐 훔치고 그런 게 1도 이해가 안갔고 그래서 저런 애들이 그런 무용담 말하는 것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뭐 그외에도 노는 애들의 세계는 진짜 딱 센 애는 센 대접 받고 약한 애는 약한 대접 받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는데 그게 무척이나 보기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와중에도 유독 매력있는 애들+놀면서도 선 지키는 애들과는 친했고 내가 인간적으로 좋아했다. 내 짝은 맨날 학교끝나면 다른 학교 일짱이랑 맞짱뜨러 다니는 쌈짱 남자애였는데 내가 수학숙제 다 베낄 수 있게 보여줄 정도로 좋아했던 애였음. 친하기도 친했고.

그리고 노는 애들 중에도 저런 애들은 눈치도 빨라서 뭔가 지들이 평소엔 돈 꾸고 잘 안갚고 그런 양아치짓을 하더라도 나한텐 안그랬고(난 그런 걸 견딜 수 있는 애가 아니었으므로)... 다른 노능애들이 나한테 그러는 걸 보기라도 하면 야 그러지마 라고 한마디씩 하던 그런 애들이었다

노는 애들 중엔 유독 어른스러운 애들도 많았던 거 같다
쟤네 사이에서 인정받으려면 뭔가 두려움없이 선을 넘을 줄 알거나 그런 척 할 줄 알아야하는데 난 못그런 인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절대 놀 수 없는 인간

지금은 저런 과거를 가진 애들이랑 생활반경이 거의 안겹치는지 주위에 학창시절 모범생이었을 사람들만 드글드글한데(그니까 좋은 대학 나왔겠지 다들)

가끔 저렇게 이미 어릴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잘 놀았겠군 싶은 사람들 만나면 자연스럽게 끌리는듯...

사실 연예인도 막 sm 스타일들 보아나 최강창민 같은 그런 숨막히는 모범생 느낌 애들이 싫고 좀 껄렁껄렁 양아치 같이 놀았을 거 같은 애들이 좋다 그리고 그런애들이 웃김

글고보니 어릴때 진짜 다양한 애들과 놀았군 전교 삼등부터 전교 쌈짱, 전교 얼짱, 타워팰리스 사는 애, 판자집 애, 웃긴 애, 진지충 등등등등등 이게 공립 학교의 좋은 점인가

암튼 저때의 경험 탓인지 성인된 지금도 어떤 사람 만나면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을까 떠올려보곤 할 때가 종종 있다

제일 싫은 타입은 구석에서 책만 읽으면서 사회성 1도 없이 또래가 하는 놀이 하나도 안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을 애들

엊그제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다시는 수능과 가까이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교육담당 기자가 되어 수능 얘기를 매일 마주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래서 아는 거야. (삼수해서 아는 게 아니라!)

수능 성적표에 얽힌 사연이 있다. 내가 바로 성적표 잘못 나왔다고 평가원까지 찾아간 이 구역 미친...년...음 다들 수능 얘기하면 마킹 잘못해서 답안 밀려써서 어쩌고들 하지만 평가원 찾아가서 자기 답지 확인하고 온 사람은 난 아직 나밖에 못봤다ㅋㅎ

아무튼 때는 2009년. 딱 이맘때쯤. 삼수생이었던 난 동네 교육청에서 성적표를 받아 확인하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탄 것까지 생생하다. 점수를 보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시발? 수학이 3점 낮게 나왔다.

그전에, 돌이켜보면 수능날도 수학 때문에 울었다. 재수 때까지 이과생이었기에 문과 수학은 진짜 쉬웠다. 난 애초에 수학 좋아해서 이과간 거였단 말여...ㅋㅋㅋ 아무튼 문과시절엔 시간이 남아돌아서 꼭 수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번씩 풀었다. 근데 하필 수능날. 삼수 수능날. 수학을 순서대로 두번째 풀다가 마지막 주관식 30번 문제 계산이 이상한 걸 발견한 거다. 시험지를 두번째 푸니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대? 근데 이게 계산이 틀린 건 알겠고. 그래서 계산을 하고 또 하다보니 답안지를 낼 시간. 그래서 일단 답을 써서 냈다.

내고 나서 다시 계속 풀면서 확인해보니 답이 틀렸대? 그래서 나는 수학 보고 점심 먹을 시간에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아니, 수리 나형을 96점을 맞다니 이게 말이 돼? 나는 100점을 맞아야 되는데! 나는 서울대에 가야되는데!!! 나는 삼수를 했는데!!!

그래서 수능 시험장에서 나오는데 수학 때문에 눈물이 펑펑 났다. 수학 하나 틀린 걸 이미 아니까. 아 문과 수학이 96점인데 서울대를 갈 수 있나? 가고 싶은 사과대는 못 가겠네. 아 시발. 이제 수능 다신 못 보는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울면서 나오니까 시험장 앞에 엄마가 놀라서 뭐냐고, 밀려썼냐고, 왜그러냐고 붙잡고 물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아빠 차에 탔다. 밥 먹으러 가겠냐는 아빠 말에, 마음 불편하다고 일단 집 가서 가채점부터 해야겠다고 집으로 갔지.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보니 평소보단 망했지만 그래도 여유있게 연고대 갈 성적은 나왔더라고. 수학은 다행히 그거 하나 틀렸고. 나머지도 합쳐서 몇 개 안 틀렸고. 삼수까지 했는데 연고대도 속상하지만. 어차피 비교내신인데 서울대 낮은과 써놓고 논술로 뒤집어야겠다 하고 말았다. 

그렇게 고대 수시도 안가고(연대 수시는 수능 전이라 아예 안썼음. 왜냐면 난 서울대 가야되니깐.) 성적표 나오는 날을 기다렸는데, 수학이 아니 96점이 아니라 93점이 나온 거지. 다행히 1등급이긴 했다만. 아니 수학이...수학이 뭘 더 틀렸다는거야? 답을 내가 수험표 뒤에 다 적어와서 가채점을...!@#$%

수학 3점. 고작 3점이지만 상위권 입시에선 수학 3점이 어마어마하잖아. 그래서 나는 아주 잠시 멍 때리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삼청동에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찾아갔다.


혼자 가긴 두려워서 김우영이라는 중학교 때부터 베프랑 갔다. 걔는 지금 치과의사하고 있는 앤데, 지금이야 바빠서 일년에 한두번 얼굴보기도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심심해서 내가 하자는 건 다 잘 같이 해줬다. 둘다 솔로일 땐 크리스마스에 만나서 영화 연달아 보기도 하고. 암튼 그렇게 30 다 먹은 지금까지도 친한 친군데.

김우영이랑 삼청동에 가서, 나 마킹 잘못된 거 같아서 왔다. 확인하고 싶다. 하니까 신청서를 쓰고 며칠 뒤에 다시 오라고 하대.

그래서 김우영이랑 다시 또 삼청동에 갔는데.

거기서 직원이 내 수리 영역 오엠알 카드를 꺼내주는데.

분명히...내 필적이 맞는데. 내 카드가 맞는데...

아직도 안 잊혀진다. 맨 앞장에서 바로 한장 넘긴 뒷장. 6번. 절대 틀릴 일 없는 그 쉬운 문제. 6번.

보기③의 4가 답이라면, 내가 답을 ④라고 마킹해둔거야...


응...시발...내가...내손이...그랬더라...ㅋ...

근데 나는 원래 답을 적을 때 ③이라고 문제별로 숫자를 한번더 적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게 숫자를 잘못 적을 때가 있단 걸 알아서 삼수하면서는 습관도 다 고쳤거든. 그냥 번호에 체크만 해놓고 마킹할 때 그 번호를 마킹하는 걸로.

그렇게 노력해서 삼수 때는 수십번의 모의고사동안 마킹실수를 단 한 번도 안했는데. 수능날 처음 한거지.

나와서 존나 쳐울었다. 김우영은 겁나 위로를 해주고, 삼청동에서 밥 먹었는데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 팥죽이었나?


아무튼 그래서

나는 

3점이 부족해서

연세대 사과대 추합을 못하고


서강대에 우선합격으로 오게됐다는

슬픈 이야기ㅎ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적표 받았는데 마킹 실수한 거 처음 알게된 수험생들 힘내라...의심되면 평가원은 웬만하면 가봐...물론 컴퓨터는 쉽게 실수하지 않지만...미련은 없애는 게, 좋거든...



1. 소주가 맛있음

물론 언제나는 아닌데 소주 맛있는 날이 있음. 

예전엔 이 쓴 걸 대체 왜 먹나 했는데 이런 날은 아무도 안 시켜도 소주를 마구 들이킴. 

그런 날은 다음 날 숙취도 없음. 


2. 평양냉면이 맛있음

20대 초반에 처음 을밀대에서 평양냉면 먹었을 때 이런 걸 만원 가까이 받고 팔다니 헐 했었음.

처음엔 그냥 고기국물 희석시킨 맛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음. 고기 넣고 한 며칠 있다가 고기 꺼내고 먹는 느낌.

근데 이제는 없어서 못 먹음. 특히 소주랑 환상의 궁합. 술취하다가도 평냉 국물 들이키면 느낌 짱좋음.

근데 을밀대는 저때 기억 때문에 다시 안가봐서 모르겠고 

여의도 정인면옥을 사랑함


3. 술 마시다 새벽 4시여도 택시 탐

예전 같으면 첫차 기다렸겠지만 이젠 그럴 체력 없다

택시비를 세상 제일 아깝다고 생각했었음. 그돈이면 술 더 마시지 하고 첫차 다닐 때까지 술을 더 마셨음. 

근데 지금은 다음날 약속 없이 쉬는 날이어도 못그러겠다 힘들어


4. 술 취하면 곱게 집감 

내 술버릇의 대부분은 택시비 아까워서 집 안가려다가 생긴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술 아무리 퍼마셔도 택시타고 곱게 집감

술 엄청 마셔도 토 절대 안함(이건 뭐지 위장이 튼튼해졌나)

술마시고 집가도 씻고 샤워하고 잠(이건 얼마 안됐다)


난 나이 먹는 거 좋은 거 같애 

적어도 지금 나이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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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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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땐 방학을 앞두고 꼭 생활계획표를 짜라고 했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규칙적인 생활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라

방학 때는 학원 가는 시간 외에 정말 맘대로 살았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그래서 그때는 생활계획표라는 게 정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남들이 짜는대로 생활계획표를 그렸다

뭐 10시에 자고 8시에 일어나서 뭐 아침밥먹고 아침운동하고 어쩌고 하는거...


근데 그걸 집에다 붙여놓으면 엄마가 왜 맨날 너 이대로 안하냐고 혼내는거다

그래서 어느해부터인가 깨달음을 얻고

방학 전에 계획표를 짤 때부터


오후11시-오전11시 취침

오전11시-12시 식사

12시-6시 자유시간

6시-7시 식사

7시-11시 자유시간


뭐 이딴 식으로 내 맘대로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선생님이나 엄마는 계획표가 왜이러냐고 뭐라했는데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하는 거 같다고 함


그러고 진짜 방학되면 저대로(=내맘대로)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진ㅋㅋㅋ


중학교 때는 메이플스토리에 빠져서

아침에 일어나서 그 차림으로 바로 컴퓨터 켜고 10시간씩 메이플하고 자고 

그렇게 한 한달살고



할튼

계획이라는 건 참 쓸모가 없어

왜냐면 난 어차피 그대로 안할거기 때문이지

계획이라는 게 자기기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 계획을 웬만하면 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또 강박이 있어갖고

한 번 세운 계획은 막 지켜야할거같은 강박이 심하고 그걸 못지키면 자책하게 되고 그래서

계획 안 세우는 것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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