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I는 처음엔 그냥 친한 선배였다. 키도 작고 못생겨서 외모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처음 봤을 때 뭔가 남자처럼 느껴졌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처음엔 다른 선배를 좋아했는데, 그 주제로 연애상담을 하다 I와 친해졌다. I랑 그 선배는 친하지도 않았는데.

고1 크리스마스에 I를 만나 같이 술을 마셨다. I가 어디냐고 연락이 왔는데 마침 I가 지하철을 타고 지나던 곳과 내가 있던 곳이 아주 가까웠다. I를 만나 민증검사를 하지 않는 허름한 고깃집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고2 주제에 소주가 익숙해보였던, 그래서 어른스러워보였던 I는 소주를 마시며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열세살 이후로 본 적이 없다나. 그 얘기를 들은 순간 I가 안돼보였고 그래서 좋아졌던 것 같다. I에겐 틱장애도 있었다. I는 자기 입으로 자기가 틱장애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도 안돼보인 하나의 포인트였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나서 내가 원래 좋아했던 선배를 불렀다. 꽤 먼 거리임에도 선배가 왔고, 셋이 술을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I가 취해서 길에 토를 했다. I와 선배는 집 방향이 같아서 선배는 I를 데려다주기 위해 온 셈이 됐다. 나는 알아서 집에 갔다. I와 선배가 지하철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날 이후 그 선배와는 끝이었다.

그 때는 좋아하면 잘해주는 것만이 능사라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I에게 무척 잘해줬다. 생일도, 수능 100일도 챙겨주고. I도 나한테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싶었는지 어쨌는지 잘 받아줬다. 나는 I의 친구들과 친해져서 같이 놀고, 학교 앞에 있던 I네 집도 놀러가고, 같이 닭꼬치도, 아이스크림도 먹으러 다녔다. I가 사라지면 I의 친구들이 나에게 전화해서 I를 찾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고3이었던 I가 상황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그걸 I의 수능이 끝난 후에야 깨닫게 돼서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킴스클럽 지하에서 같이 돈까스를 먹으면서 넌 나쁜 새끼라고 돌려 말하곤, I가 떠난 후에 혼자 펑펑 울었다. 

I의 수능이 끝나고, 내가 예비 고3으로 학교에 밤 12시까지 남아 공부를 하던 날, I는 할 말이 있다며 잠깐 학교 앞으로 나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근데 마침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와서 나는 나가지 못했고, 그 이후로 I와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은 없다. 10년이 지난 아직도 그 때 내가 나갔더라면 I가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긴 하다.

졸업하고도 다른 사람들과 다같이 만난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 때마다 I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대하고, 난 그 모습이 꼴뵈기 싫어 모임에 안나가게 됐다. 어린 날의 그 기억이 꽤나 상처였던 것 같다. 다른 자리에서 I는 나를 일컬어 '추억의 이름'이라고 했다나. 그에겐 내가 어떤 추억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망한 연애의 첫 페이지로 기억되어 있다.


2.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게 된 L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선배였다. L이 인턴을 하던 회사에서 주최한 행사에 내가 (언니에게 끌려서) 가게 됐고, 거기서 나와 함께 갔던 언니가 인터뷰를 하게 됐다. L덕에 공짜표를 얻어 행사를 보고 있던 친구는 스크린에 잡힌 (언니 옆) 내 모습을 보고 나에게 연락을 했다.

이런 이유로 친구 덕에 L이 나의 존재를 알게 됐고, 나와 친해지고 싶다며 L은 친구에게 술자리를 주선하라 했다. 친한 선배 한 명 없이 아싸로 지내고 있던 나에게도 괜찮은 제안이라서, 친구와 L과 나는 셋이 함께 족발을 먹게 됐다.

L과는 대화가 잘 통했다. 기자를 준비하던 L은 왕년의 정치 덕후였던 내가, 옛날 정치 얘기까지 다 아는 걸 신기해 했다. 어릴 때 작곡가가 꿈이었던 나는 L이 취미로 작곡한 그럴듯한 노래들이 신기했다. 마침 친구가 교환학생을 가서, L과 내가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는 날들이 길어졌다. 나와 L은 메신저로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둘이 만나 술을 마셨다.

L은 어머니가 병에 걸려 지방의 병원에 누워 계신다 했다. 막장 양아치였던 남동생도 있었다. 아버지와 L이 돈을 벌어야 했다. L은 돈을 벌기 위해 나이트클럽에서까지 일했던 얘기를 해줬다. 나한테만 하는 얘기라 했다. 너무 담담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또, L이 좋아졌다.

L은 내가 뭔가 성과를 내는 걸 좋아했다. 나만큼 자랑스러워 했다. 내 작품을 가장 대단하게 생각했던 것도 아마 L이었던 것 같다. 내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L은 내가 따로 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턴하던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영화제에 왔다. GV에서도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도 L의 작품을 좋아했다. L이 만든 팟캐스트도 열심히 듣고, L에게도 열심히 피드백을 해주고. 우리는 좋은 동지였던 것 같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서로를 응원하기만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L과 모텔에 가게 됐는데, 당시 경험이 없던 나는 L과 잘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이 여러 번 반복되자, L과는 사이가 멀어졌다. L은 어느 날 SNS에서 나를 차단했다. 친구를 끊은 것도 아니고 자기 게시물만 못 보게.


3.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으면 한 사람이 생각난다. K다. 싸이월드 배경음악 검색으로 음악을 찾아 듣던 때가 있었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 나왔던 생각의 여름의 말이라는 노래를 찾아 들으려다 떴던 미니홈피가 K의 미니홈피였다.

K의 음악취향은 나와 비슷했다. 장르도 시대도 산발적이지만 대부분 겹쳤다. 그래서 K의 미니홈피를 열심히 구경했다. 사진은 없었지만 그가 쓴 글은 있었다. K는 글을 잘 썼다. 나와 생각도 비슷했다. 나처럼 밴드에서 베이스도 쳤다. 여러가지가 겹쳐서 신기했다. 그리고 K는 꽤나 힘든 환경에 놓인 사람이었다. 다이어리를 보니 온갖 알바는 기본이고 나도 안하는 생동성 알바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난 또 얼굴도 모르는 K에게 마음이 갔다. 

K의 미니홈피 주소는 전화번호였다. 몇 날 며칠 K의 미니홈피를 구경하던 나는 K에게 문자 한 통을 남겼다. 그래서 일촌을 맺었고, K와는 2년동안 간헐적으로 방명록만 주고 받았다. 내 미니홈피엔 내 사진들이 있었기에 K는 내 얼굴을 알았지만, 난 그의 얼굴을 모른 채로.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K는 나에게 만나자고 했고, 그래서 홍대 입구역 9번 출구에서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도, 키도 별로였지만 그 때 난 누가 나왔더라도 그에게 반했을 것이다. K와 나는 그 날 서로의 존재를 안지 2년만에 말을 놨다. 막창을 먹고, K가 아는 이자카야에 갔고, 24시 카페에 가서까지 밤새 이야기를 했다. 그냥 같이 얘기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그땐 그랬다.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K는 자신의 불행을 애정을 사는 데 이용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K가 다른 사람과는 달랐던 것 같다. 조급한 내 탓에 그 관계도 금방 끝이 났지만.

K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가장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알게된 것은 관계가 끝난 후였다.


그들의 불행을 덮어주고 싶었던 영웅 심리였는지, 그들의 생존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학을 다니면서 좋은 인상이든 나쁜 인상이든 나에게 인상이 남은, 내가 만난 교수님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검색 유입 키워드에 강정인 교수가 있길래 생각나서.

내가 좋아하는 강정인 교수님부터.


강정인 교수님 (정치외교학과)


학교에 친구가 별로 없는 나는 수강 신청 전에 교수 이름을 구글링 해보곤 했다.

사과대 교수라면 정치적 성향을 주로 찾아봤다.  

나랑 도무지 맞지 않는 꼴통 교수의 수업이라면 처음부터 피하는 게 좋을테니. 

검색 결과 강정인 교수는 나와 같은 좌빨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꼴통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송두율 교수의 이론을 반박한 학자라기에 생각이 궁금해지기도 해서 수업을 들었다.


'정외과 극악 난이도 수업'이라는 수강평에 걸맞게 교수님의 첫인상은 퍽 깐깐해 보였다. 

눈빛은 예리했고, 말투는 까칠했다.

말을 술술하는 사기꾼 같은 달변가와는 거리가 멀었고, 천천히, 쉬이 알아볼 수 없는 필기를 하며 수업을 했다.

사실 교수님의 이론 설명 시간은 별 재미가 없었다. 거의 항상 졸거나 딴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토론 수업 시간과 과제 피드백은 무척 좋았다.

나는 토론을 좋아하는 편이라 토론 시간에 의견을 잘 말하곤 했는데

교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내 의견에 예리한 질문을 던지곤 하셨다. 

"그거 진짜 그러냐? 이러이러한 허점이 있지 않나?"

나는 교수님의 예리한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고서도 관련 정보를 뒤져보곤 했다.

'아까 이렇게 대답했어야 하는데!' 하면서.


교수님과 나는 정치적 성향이 달랐다. 

교수님의 정치적 성향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나랑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학부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감성적인 사회주의자였는데, 교수님은 내 생각이 부족할 때면 적절한 질문을 던졌다.

"약자라고 다 도와야 하냐? 왜?" 

"왜 1인 1표여야 하냐? 정치학자인 나랑 정치적 지식 없는 사람이 왜 똑같이 한 표를 가져야 하지?"

"대의 민주주의가 최선이야? 왜? 엘리트 민주주의가 더 나을 거 같지 않냐?"

논리보다는 믿음에 가까워서, "그냥, 당연히,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는 내 생각에 

교수님은 근거를 요구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근거를 고민하곤 했다.


토론 끝에 교수님이 내 의견에 설득된 적도 있다.

어떤 문제로 토론 수업 중에 나와 교수님이 일대일 토론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나는 생각이 정리된 문제여서 끝까지 토론을 이어나갔고, 교수님은 다른 학생이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반론했다. 

그 끝에 결국 반론할 수 없어진 교수님이 학생들 앞에서 "듣고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인정하셨는데 

토론의 내용보다 교수님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 앞에서 학생과 대등하게 토론을 하고, 학생의 의견에 설득됐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교수가 몇이나 될까.

대학에 다니며 권위를 잃기 싫어 끝까지 억지 주장을 펼치다 오히려 권위를 잃는 교수를 많이 봤는데

강정인 교수님은 그 자신이 저명한 정치학자이면서도, 당신도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회과학자적 태도를 지닌

몇 안되는 교수였다.

그래서 교수님과 정치적 성향이 다르든 말든 별 상관이 없었다. 

교수님의 수업시간에 나는 눈치보지 않고 교수님의 주장을 비판하고, 내 의견을 주장할 수 있었다.


어떤 수업 시간엔 교실에 들어오자 마자 내 과제의 한 문장을 읽으시고는

"이거 누가 썼나?" 하시기에 손을 들었더니 

"남자가 쓴 글인 줄 알았는데, 여자가 '술잔을 기울이며'라는 말도 쓰나?" 라며 사소한 꼰대 의식을 보여주신 적도 있었다. 

그 수업시간엔 마침 양성 평등 관련 토론이 이어졌다.

여성 동지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커지고, 쪼그라드는 남성 동지들을 바라보며 교수님은 균형추를 맞추기 위해

"근데 남자는 아직도 가부장적 요구가 만연한데, 여자는 여자니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그런 거 요새는 별로 없지 않나?" 

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웃으며 "교수님도 아까 여자는 술잔 기울이면 안된다고..." 라고 대답하니

교수님도 학생들도 다 엄청 웃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당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나에게 사과하셨다.


수업 종강을 앞두곤 다같이 고깃집에 회식을 하러 갔는데 그 회식도 무척 재밌었다. 

교수님은 사생활에서는 젠틀하다거나 철저하다거나 하신 분은 아니고

오히려 꼰대 같은 면도 적잖게 있고, 학생들 앞에서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분이셨다.

돼지고기를 먹으며 교수님과는 말 한마디 섞지 않고 구석에 있던 내가

총대를 매고 "교수님 차돌박이 사주세요!!!" 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다같이 웃었고

교수님은 통크게 차돌박이를 사주시기도 했다. 그리곤 뒤끝있게- 나를 차돌이라고 부르곤 하셨다.


과제와 시험은 공정했고, 피드백은 성의있었다. 

교수님은 종강 후 겨울방학에도 연구실에 찾아가면 글이든 시험이든, 궁금한 모든 것에 피드백을 해주는 몇 안되는 분이었다.

교수님의 학자적 면모가 좋아 나는 교수님의 수업을 한 번 더 들었다.


졸업 후 학교 앞 편의점 파라솔에서 밤에 맥주를 마시다

역시 파라솔에서 맥주를 마시러 오신 교수님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교수님은 나를 불러다 맥주와 안주를 더 사주셨다. 아직 취업 못했다니 예와 같은 까칠한 태도로 짓궂게 놀리시며.


여하튼 내가 본 강정인 교수님은 가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실 때도 있고, 꼰대 같은 면모도 있으시지만 

대화가 통하는 합리적인 선생님이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을 비판한 대표적인 학자이면서도, 

인간의 양심, 표현, 학문의 자유를 위해 저자의 행위와 텍스트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송두율 교수를 변호한 것에서도 드러나지만. 

(쓰고 보니 나도 강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학교에서 만난 어떤 교수보다도 교수의 본분(연구와 강의)에 충실하시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치우침을 드러내지도 않고, 정치학자의 모습에 가장 부합하는 분.

정치하려고, 유명인이 되려고 교수라는 직함을 이용하는 어떤 장돌뱅이들과는 격이 다른 분.

  


팟캐스트 한참 유행할 때

인기 좀 있다는 팟캐들은 듣다보면 구성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보통 남자 3명정도(가끔 구색맞추기용 벙어리 여자 한 명이 껴있는 경우도 있긴 함.)가 진행하는 팟캐가 많은데, 그런 팟캐들은 존나 어디 교과서라도 보고 멤버를 짠 것처럼 멤버 구성이 비슷비슷했다.



우선 까칠하면서 썅욕도 필터링 없이 섞어 말하고, 성질도 지멋대로 잘내는 리더격의 남자1이 꼭 있다.

나꼼수로 치면 김어준이고, 내가 그런 팟캐들에 알러지가 있어서 많이 안들어봐서 이름까진 기억이 안나는데 씨네타운 나인틴, 이이제이 이런 데에도 한 명씩 꼭 있었다. 걍 인기있는 팟캐엔 거의 꼭 껴있다고 보면됨. 



말 막하고 이쁜 여자한테도 굴하지 않고 막대하고(아니면 지나치게 여자라고 벌벌 떨고 띄워주거나. 어느 쪽이든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생각 안한다는 건 같음.) 가끔은 썅욕도 거르지 않고 하는 남자놈1,

그리고 걔보다 상식적이어보이고 말도 어느정도 정상인처럼 하는 남자놈2가 있다. 남자놈2의 역할은 남자놈1이 과한 거 같을 때 남자놈2를 자제시키는 포지션이다.

그리고 좀 말없고 남자1이 말시킬 때만 말하는 남자3이 있고. (주로 자료조사 해옴. 준비봇 역할인듯.)



대충 이런 식의 구도인데 까칠한 리더격 남자놈1은 어디서나 팬도 존나 많고 안티도 있고 그런듯했다.

팟캐를 듣다보니 저런 까칠한 남자놈들이 야부리 터는 게 논리적으로도 허점이 많고 편견도 존나 많고 개구리게 들려서 거의 안듣게 됐는데, 여자들도 존나 저런 놈들을 빨더라. 마초성이 느껴져서 그런가? 강해보여서 그런가?



아직 저렇게 해서 인기있는 여자는 본 적 없음. 블로거들 중엔 좀 있는 것도 같은데 블로그는 특성상 성별이 잘 안 느껴지니까 그런 것도 있는듯.

무튼 요새 블로그들 보다보니 인기 블로그 중에 저런 식으로 글싸는 남자들이 많은 걸 또 보게 된다.

돌연변이 연구소 소장이나 오늘 처음 본 장오제 등. 



저런 놈들 말 듣다보면 막 지가 확신 갖고 말하니까 그럴듯하게 들리고 매력도 느껴지고 계속 블로그 보게되고

왜 인기있는지는 확실히 알겠는데 좀 보다보면 거부감이 존나게 밀려와서 블로그를 끄게 된다.



자기 주관 강한 건 좋은데 그만큼 편견도 강하고 아집도 강해보여서 거부감이 느껴진다. 

종교 교주 같은 인간들인데 난 어릴 때부터 그런 인간들이 너무 싫었다. 본능적인듯.





직접적으로 관련있는진 모르겠지만 저런 놈들이 언제부터 싫었지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의 특이취향이랑 연결되는 것 같다.



학창시절에 잘 보면 여자애들은 보통 제일 잘생긴 애, 몸매 좋은 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잘 나가는 애'를 본능적으로 좋아한다.

쉽게 말하자면 실제 능력과는 무관하게 무리 사이에서 무시 안 당하고 리더십 있는 애들이 인기가 많다. 

아무리 잘생기고 뭐 그래도 남자 사이에서 쭈구리면 여자애들한테도 보통 무시 당한다.  



근데 난 그 시절부터 그런 남자애들 별로 관심 없었다. 친구로만 지냈지. 

쭈구리처럼 구석에서 공부만 하고 너무 착해서 남자애들한테 호구 취급 받아도 키크고 잘생긴 애 좋아했음. 

보통 그런 애들은 잘생겨도 리더십 없고 존재감 없이 묻혀서 다른 여자애들은 잘생긴 줄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10년 지난 지금 보면 내가 그 때 꼽은 걔네가 역시나 존나 잘생겼고 그 때 걔네한테 관심 1도 없던 일진 출신 여자애들이 이제와서 존나 친한 척중ㅋㅋㅋ


암튼 난 까칠하고 존나 지좆대로인 남자새끼들이 싫다. 거부감이 막막 느껴짐.

난 까칠해! 난 강해! 난 내 좆대로야! 내가 싫음 꺼져! 내가 왕이야!

이런 새끼들 존나 싫음. 모든 사람을 지 발 밑에 둔 것처럼 구는 남자새끼들. 

저런 새끼들 다른 여자들도 싫어해서 인기 없이 좆됐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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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견제가 필요하지 않거나 자기 견제보다 타인의 윤리를 견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환경 안에서 그것은 기능하지 않는다.'


뭔 개소리냐. 진짜...
일단 문법적으로만 봐도 비문이다.
자기 견제보다 타인의 윤리를 견제하는 데?
자기 견제를 견제한다는 거야?...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견제하는 데'라고 했어야지. '자기보다 타인을 견제하는 데'라고 쓰든가.

한 문장 안에 '자기 견제'라는 말을 지시하려고 '그것은'이라는 지시어를 넣은 것도 부자연스럽다. 전형적인 번역투.
'기능하다'라는 단어의 부적절한 사용도 거슬린다. 이역시 works의 번역투다.



내용적으로는,
'자기 견제'는 '문화'가 아니라면서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허지웅의 정의를 따라도 수치라는 문화가 자기를 견제하는 문화일 수도 있잖아. 허지웅이 인용한 원문에서 수치를 문화라고 표현한 이유는 '집단'적으로 드러나는 '수치'를 이야기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왜 이에 대한 이유는 말하지 않고 수치는 문화가 아니라 자기 견제라고 하는걸까?
허지웅 말대로 문화와 자기 견제는 정말 상호배타적인 분류인가?

그리고, 자기보다 남의 윤리를 견제하는 데 시간을 더 쏟는 양상을 '환경'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 자신의 선택에 의한 행위인데? 그게 왜 환경이야?


예전부터 느꼈지만 허지웅은 진짜 글을 못쓴다. 있어보이는 단어로 범벅해 놓으면 글을 잘 쓰는 걸로 착각하는 부류. 말도 안되는 비문과 부자연스러운 번역투를 남발하는 데 그게 고급언어처럼 보인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한국 학술 번역서 중에 병신 같은 비문으로 가득찬 책이 한 두 권이던가.

한국어능력시험 보면 당장 3급도 간당할 국어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꼬박꼬박 글쟁이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온다. 자기도 속으로는 자기가 글 못쓰는 걸 아니까 이게 뭔 말이냐는 네티즌의 한마디에 저렇게 발끈하는 걸까?


허지웅의 글을 사랑하는 허지웅의 추종자들에게는, 다음 기사를 보여주고 싶다.



​“’있어 보이는’ 말 무조건 좋아하면 지적 수준 낮은사람”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1204601035&rftime=20150630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명언’ 중에는 교훈이나 의미를 찾기 힘든 것들도 있다. 그런데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처럼 ‘대단해 보이지만 가치 없는’ 문장을 쉽게 구분하지 못하고 높이 평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끈다.

캐나다 워털루대학교 박사과정 연구원 고든 페니쿡은 '심오해 보이는 헛소리(pseudo-profound bullshit)에 대한 식별능력과 수용현상에 관하여'라는 다소 우스운 제목의 논문을 통해 “지능이 낮고 사색을 적게 하는 사람일수록 이지적인 것처럼 보이는 ‘헛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명언’ 중에는 교훈이나 의미를 찾기 힘든 것들도 있다. 그런데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처럼 ‘대단해 보이지만 가치 없는’ 문장을 쉽게 구분하지 못하고 높이 평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끈다.

캐나다 워털루대학교 박사과정 연구원 고든 페니쿡은 '심오해 보이는 헛소리(pseudo-profound bullshit)에 대한 식별능력과 수용현상에 관하여'라는 다소 우스운 제목의 논문을 통해 “지능이 낮고 사색을 적게 하는 사람일수록 이지적인 것처럼 보이는 ‘헛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300여 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먼저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지능력이나 사고방식을 스스로 평가하는 설문지에 응답하도록 했다.

그 뒤 연구팀은 ‘똑똑해 보이지만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찾기 힘든’ 문장을 임의로 생성해주는 웹사이트(sebpearce.com/bullshit/)를 이용해 여러 가지 ‘헛소리’ 문장을 만들었다.

연구팀이 생성한 ‘헛소리’의 예시로는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비할 데 없는 추상적 아름다움을 변형시킨다'(Hidden meaning transforms unparalleled abstract beauty) 등의 문장이 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런 문장들은 겉보기에는 어떤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흔히 쓰이는 낱말들을 무작위로 선택해 문법구조에 맞게 배치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 후 연구팀은 이러한 ‘헛소리 문장’들의 ‘심오함’을 5점 만점 척도로 각자 평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최초 설문에서 자신에 대해 ‘사색을 적게 하고, 인지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린 참가자들일수록 무작위 문장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뒤에 연구팀은 ‘헛소리 문장’들 사이에 실제 유명 작가의 트위터 글을 섞어서 제시한 뒤, 동일한 절차를 반복했다. 이 실험에서도 인지력이 낮은 인물들일수록 두 유형의 문장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비슷한 점수를 매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팀은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헛소리’에 많이 노출되고 있다”면서 “우리 연구는 헛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첫 단계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진짜 명기사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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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를 재미로 해보면 (http://www.16personalities.com/ko)

ESTP나 ISTP가 나오는 편이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E와 I (외향성/내향성) 는 바뀌는 것 같다.

오늘 몇 달만에 다시 해봤는데 다른 게 나올까 궁금했는데 여전히 ESTP-A가 나왔다.




성격유형 : ESTP-A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헬렌 켈러

주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ESTP유형의 사람은 여러 사람이 모인 행사에서 이 자리 저 자리 휙휙 옮겨 다니는 무리 중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직설적이면서도 친근한 농담으로 주변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이들은 주변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관객 중 무대에 올라올 사람을 호명하는 경우, 이들은 제일 먼저 자발적으로 손을 들거나 쑥스러워하는 친구를 대신하여 망설임 없이 무대에 올라서기도 합니다.

국제사회 이슈나 이와 관련한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과 관련한 담화는 이들의 관심을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합니다. ESTP 유형의 사람은 넘치는 에너지와 어느 정도의 지식으로 대화에 무리 없이 참여하기는 하나, 이들이 더 역점을 두는 것은 앉아서 말로만 하는 논의가 아닌 직접 나가 몸으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행동이 먼저 앞서기도 하는 이들은 이로 인해 가끔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턱 괴고 앉아 지켜만 보고 있느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 뒤라면 직접 나가 몸으로 부딪힘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N혼동하지 말아야 할 단어, '행동'과 '움직임'

ESTP 유형 사람은 다른 성격 유형과 비교하여 위험을 수반하는 행동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마치 폭풍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과도 같습니다. 달든 쓰든 인생이 주는 다양한 삶의 맛과 열정으로 인생을 즐기기는 하지만, 이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전율이 아닌 그들의 이성적인 사고관에 짜릿한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불기둥이 소용돌이치는듯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이들은 사실이나 현실에 근거하여 이성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성향으로 ESTP 유형 사람은 학교와 같은 엄격한 규율이나 질서를 요구하는 조직 내에서 종종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들이 덜떨어져서라기보다는 딱딱하고 엄격한 가르침 방식이 그들이 선호하는 체험을 통한 배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이들로 하여금 지루하게만 보일지 모르는 이 과정 역시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깨닫게 하기까지는 이들의 많은 내적 성숙함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는 또 한편으로 이들에게 더 넓고 흥미로운 세계를 향한 기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달린 또 다른 도전 과제는 이들은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 정한 도덕적 잣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규칙은 깨라고 있는 법!' 아마도 일선 고등학교 교사나 기업 내 관리자는 이러한 이들의 성향을 묘사하는 말에 공감을 표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이 문제를 야기하는 행동을 줄이고 그들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며, 지루해하는 일을 잘 참고 묵묵히 해낸다면 이들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점입니다.

신중함과 배려로 다른 이의 말 경청하기

다른 성격 유형과 비교하여 가장 예리하면서 여과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ESTP 유형 사람은 타인의 작은 변화조차도 정확히 집어냅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작은 표정 변화나 평소 입고 다니는 옷 스타일 혹은 습관에의 변화 등 다른 성격 유형의 사람은 사소한 것 하나만 집어내도 다행으로 여길 만한 작은 변화조차도 이들은 그 뒤에 숨은 의미나 생각을 곧잘 포착해냅니다. 일단 무언가 이전과 다름을 감지하면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많이 고려하지 않은 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들의 결정이나 비밀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ESTP 유형 사람의 즉각적이며 예리한 관찰력과 행동력은 종종 대기업, 특히 급박한 상황에서는 더욱 요구되는 자질이기도 합니다.

다만 자칫 잘못하면 상황에 너무 몰두하여 예민한 사람의 감정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거나 원치 않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본인 자신의 건강이나 안전을 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구의 대략 4%인 이들은 적당히 도전적이며 경쟁적인 사회를 이루기에 딱 알맞은 비율입니다. 사회 정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는 내에서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열정과 활력이 넘치는 ESTP형 사람은 방해 요소가 생기면 이성적 사고로 중무장합니다. 충만한 영감과 설득력, 그리고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팀을 이끄는 타고난 리더형인 이들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세계로 다른 이들을 인도함으로써 그들이 가는 곳곳 인생의 즐거움과 흥미로움을 더합니다. 다만 이러한 이들의 장점을 보다 효율적이며 가치 있는 성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ESTP형에 속하는 유명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잭 니콜슨
 
에디 머피
 
마돈나
 
브루스 윌리스
 
마이클 J. 폭스
 
제임스 뷰캐넌


0. 구구절절 공감가는 대목들. 보라색으로 표시한 내용은 각별히 공감가는 내용. 사람 많을 때 무대에 올라가는 것 즐기는 것 빼고는 (올라가서 다 웃기지 못할까봐 두려움) 대체적으로 굉장히 공감이 간다.


1. 직설적이고 친근한 농담으로 주변 사람 웃기는 이들 : 어릴 때부터 장난, 농담 매니아였다. 중학교 때부터 언제나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싫다'는 말이었다. 언제나 악의 없이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는데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발끈하는 사람들과는 정말 맞지 않는다.


2. 위험을 수반하는 행동 & 엄격한 규율이나 질서 가진 조직 적응 어려움 : 스릴 넘치고, 위험성 있는 행동하는 것을 즐긴다. 폭풍을 몰고 다니는 사람 공감. 고등학교 때 선생님 중 지금도 나와 친한 선생님은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이라고 표현하셨다. 가기 싫은 최악의 곳은 군대였다. 효율적이지 못한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정말 싫어한다. 억지로 따르게 하려고 하면 반항도 엄청하는 성격이다. 대학교나 회사의 쓸 데 없는 군기 얘기를 들으면 내가 다 화나고 못견디겠다.


3.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 정한 도덕적 잣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함 : 이건 진짜 유레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떠올리는 책 구절이 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 중 'SPEED'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건 신호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야. 자신들의 눈과 머리로 올바르다고 판단하면 빨간 신호라도 그냥 건너. 너는 어떡할 거야?"

이건 내 좌우명 비슷한 말이기도 한데, 내 사고와 행동을 판단하는 주체는 사회나 타인이 아닌 나라는 것이다. 이건 내가 가장 많이 속으로 되새김질하고 사는 말이다.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산다.


4. 예리하면서 여과 없이 사물을 관찰 / 그 뒤의 숨은 의미나 생각을 곧잘 포착한다 / 상대의 기분과 상관없이 이것저것 물으려 한다 : 나는 타인에 대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정적 분리가 굉장히 잘되고, 오지랖도 거의 없는 편인데 사람들을 관찰하고 궁금해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내 특성이 다 써있네... 상대의 기분과 상관없이 이것저것 물으려 하는 것까지도 같다.


5. 도전적이며 경쟁적인 사회 : 그래... 내 본성이다. 나도 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승부욕.


-방해요소가 생기면 이성적 사고로 중무장 : 자기 합리화 & 논쟁에서 논리 만들어 내서 이기기 달인.



ISTP도 가끔 나오는데, ISTP는 아래와 같다. 


성격유형 : ISTP

“만능 재주꾼”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무언가 다른 삶 말이지요. 매일 같은 곳을 가고, 같은 사람을 만나고, 매번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 흥미로운 도전을 원했습니다.”

해리슨 포드

냉철한 이성주의적 성향과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ISTP형 사람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면서 주변 세상을 탐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을 만드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들은 하나가 완성되면 또 다른 과제로 옮겨 다니는 등 실생활에 유용하면서도 자질구레한 것들을 취미 삼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 새로운 기술을 하나하나 터득해 나갑니다. 종종 기술자나 엔지니어이기도 한 이들에게 있어 손발을 걷어붙이고 작업에 뛰어들어 직접 분해하고 조립할 때보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또 없을 것입니다. 매번 전보다 조금씩 향상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ISTP형 사람은 창조와 문제 해결을 위한 이해, 그리고 실행 착오와 실질적인 경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탐색합니다. 다른 이들이 그들의 과제에 흥미를 보이는 것을 좋아하며, 간혹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작업 중인 과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단, 그들만의 원리원칙이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 한해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ISTP형 사람이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베푸는 호의에 열린 마음으로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을 잘 도우며 그들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 이들은 특히나 그들이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한 성향의 이들이 인구의 고작 5%만이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더욱이 여성의 경우는 더욱 흔치 않은데, 대개 이 성향의 여성은 사회가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어릴 적 말괄량이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기꺼이 다름을 지향하다

기술자적인 성향을 내포하고 있는 이들이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꽤 복잡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사생활을 중요시 여기며, 침착하면서도 금세 즉흥적인 성향으로 돌변하기도 하며, 호기심이 많으면서도 정규 교육을 받는 데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로 인해 주변 가까운 친구나 아끼는 사람들조차 이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ISTP형 사람은 한동안 꾸준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충동의 에너지를 서서히 쌓아두고 있다가 어느 순간 예고 없이 터뜨리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관심사를 돌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휘몰아치는 변화가 한 번씩 있을 때조차 이들은 먼 미래 계획을 위한 재정비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닌 새로 찾은 관심사가 실행 가능할는지 그 여부에만 온통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실질적으로 현실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면서도 마음 한가운데에는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를 대접하라'와 같은 공정함이라는 사고방식이 깊이 박혀있는데, 이는 이들만의 성격적 고유 특성을 잘 설명해 줍니다. 남이 먼저 발을 밟기 전 발부터 먼저 빼고 보는 이들은 너무 지나치리만치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싫어하며, 그 때문에 종종 필요 이상으로 멀리 가기도 합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이 받은 만큼 똑같이 되돌려주는 것이 공정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ISTP형 사람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천성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이들의 성격으로 하여금 다른 이들 역시 그들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하에 행동이 먼저 앞선다는 점입니다. 신중치 못한 농담을 먼저 꺼내는 이들을 보면 영락없이 이 유형의 사람입니다. 또한, 타인의 일에 지나치리만치 간섭하여 여기저기 시끄럽게 휘둘리다가 다른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생기면 재빨리 계획을 변경하기도 합니다.

남과 다름의 즐거움

ISTP형 사람은 다른 성격 유형의 사람들이 사회에서 수용 가능한 질서나 행위와 같은 비교적 확고하게 구분된 그들 나름의 선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가벼운 농담 따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그들 역시 그러한 농담을 던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말입니다. 소란스러운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는 같이 어울리는 부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감정이 많이 상해 있는 상태에서 선을 넘어가는 경우 이는 훗날 뒷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 있어 애를 먹는 이들은 그 이유를 자신의 감정이나 동기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의 천성과 공정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관계 형성 시 타인을 향한 정서적 공감이 아닌 행동으로 탐색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어 간혹 원치 않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간의 보이지 않는 선이나 규칙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은 인간관계 시 자유롭게 그 경계를 넘나들다가 때로 필요하면 선을 넘어 다른 색으로 물들이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창의적이며 유머를 겸비한 동시에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ISTP형 사람의 실용적인 접근 방식이 이들의 예측 불허한성격이나 스타일을 이해하는 좋은 사람들과 합쳐져 일하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이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 몇 년이고 이것저것 유용한 장난감 거리를 만드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인의 우러름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ISTP형에 속하는 유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라 요보비치
 
프랭크 자파
 
재커리 테일러
 
톰 크루즈
 
'번 노티스'에 나오는 '마이클 웨스턴'
 
'24'에 나오는 '잭 바우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나오는 '인디아나 존스'
 
다이하드 시리즈에 나오는 '존 맥클레인'
 
'맥가이버'에 나오는 '앵거스 맥가이버'


0. 이게 어째 ESTP보다 더 보라색이 많네. 


1. 전 흥미로운 도전을 원했습니다 : 어릴 때부터 하던 말, '루틴(routine)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최악의 직업은 공무원, 교사라고 생각했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2. 타인이 내가 작업중인 과제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자유나 원리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 구구절절 맞음. 난 뭔가 프로젝트를 할 때 누군가 관심 가져주면 좋아하고 함께 하자고 제안도 잘 하는 편. 하지만 내 자유와 원리원칙을 침해하면 안된다. 물론 그 원리원칙은 내 기준이기 때문에 사회적 기준과는 많이 다를 수 있음.


3. 타인을 잘 도우며 그들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는 걸 즐기는 이들 : 나도 취업 못했으면서 내 최종간 자소서, 후기를 대체 몇 명한테 공유해줬었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웬만하면 도와주고, 내 경험을 물으면 대답도 엄청 잘해주는 성격이다.


4. 여성의 경우 사회가 일반적으로 원하는 여성상이 아니며, 말괄량이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 응...이 블로그에도 내가 여잔줄 몰랐다는 방명록과 댓글이 넘쳤었음. 나는 내가 사회에서 보통 생각하는 여성상이라고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말괄량이였지...


5. 친절하지만 사생활 중시, 침착하지만 즉흥적 :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카톡 칼답장의 대명사인데, 전화를 내가 원치 않는 시간에 받는 건 엄청 싫어해서 전화는 잘 안받는다. 내 시간이 방해받는 게 싫어서. 침착하지만 즉흥적인 것도 맞음.


6. 공정함!!!!!!! : 상대가 나한테 대한 대로 대함. 나한테 잘못하면 어떻게든 똑같이 되갚고, 나한테 잘하면 어떻게든 은혜를 갚는다. 그래서 친구들한테 적이 되면 무섭다는 소리도 듣는다. 당하고 가만히 있는 일은 없음. 그대신 나한테 잘하면 절대 까먹지 않고 언제든 은혜를 갚는다. 이건 진짜 중요한 내 특성 중에 하나다. 별로 안 좋아하는 상대라도 나한테 잘해주면 그만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대한다. 


7. 신중치 못한 농담 : 네...어릴 때부터 이걸로 트러블 많아서 지금은 진짜 많이 사회화됐는데. 이것때매 트러블 생겨서 어린 시절부터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싫어하였다...


8. 타인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여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다른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생기면 재빨리 계획을 변경한다 : 이건 휘둘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휘둘려지는 건데... 상대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상대에게 간섭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생긴 '사건'에 대한 흥미로 내가 원해서 상대에게 휘둘려지다가, 다른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생기면 바로 옮겨가는 것이다.


9.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이나 규칙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호소 : 난 중고등학교 때 또래 집단의 미묘한 신경전을 못견디고 언제나 드러내놓고 말하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풀자는 애였다. 그러면 보통 여자애들은 "아니? 그런 거 없는데?" 하면서 부정하거나 진짜 마음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말해줬는데, 후자의 애들과만 친하게 지냈다. 전자의 애들은 엄청 싫어했다. 안 보이는 거 못지킨다고...근데 이것도 사회화 돼서 많이 나아짐.


10. 창의적 & 유머 겸비 &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언가 만들어 냄 : 이건 내 성격의 장점이네. 셋 다 공감.








 

 

언젠가부터 블로그 유입 키워드가 '자살'로 도배되고 있다

아마도 나랑 같은 입장일, '친구가 자살했다'는 키워드도 많이 보이고  (네이버 상단에 올라간 모양이다) 

시기가 시기이고 내가 사반수를 했기 때문에 삼수 자살, 수능 자살 같은 키워드도 많다(사반수한 저는 잘 살아남아있습니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강박적으로 대면하려는 속성이 있다

상처를 받으면 없던 일처럼 굴거나, 회피하거나, 잊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상처를 계속 건드려서 덧나고 덧나게 만들고, 심지어 농담의 소재로까지 사용해서

언젠가 상처를 봐도 무감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경우도 있긴 했지만, 최소한 그럴 때는 나 자신에게라도 솔직해지려 했다

일기에 쓰든, 블로그에 쓰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든



친구가 자살했다는, 이번 일도 난 똑같이 대했다 

친한 친구들과 일대일로 만난 자리에선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더하고

그렇게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될수록 괜찮아지는 것 같다



다들 너무도 의외로, Y를 빨리 잊고 있다

물론 그 '다들'엔 나 또한 포함된다

그 애가 죽은 그 주엔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서 당황스러웠다 

잘 지내다가도, 그 애의 죽음엔 내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는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오곤 했다

깊이는 각자 다르겠지만 아마도 같은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친구들은 아무도 섣불리 이 얘기를 다시 꺼내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 그리고 Y 모두와 가장 친했던 H와만 이 얘기를 다시 나눴다

다른 친구들과는 그 날 이후로 연락도 한 번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다들 어째야할지 모르겠는 건지, 잘 극복하고들 있는건지... 서로를 마주하는 게 상처를 되새김질하는 일이 될까봐 두려운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Y의 SNS는 여전히 휑하고 Y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못 잊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음, H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짜 같았다 



이성적으로 Y를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그 애의 죽음을 납득하고 싶은 것이다

그 애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마지막엔 그런 말을 남겼을까

나는 그 애가 남기고 간 단서들을 자꾸만 짜맞추게 된다

맞는지 아닌지 결국 확인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내 방식대로라도 그 애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웹툰 닥터 프로스트 시즌3을 보게됐다 

시즌 1, 2는 못봤는데 3은 무료이길래 그냥 생각없이 보고 있었다

보면서 문득 자꾸만 Y 생각이 났다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자인데, 자신에게 상담을 했었던 첫 내담자가 자살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일련의 이야기를 아주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관점에서 읽고 있으려니 Y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웹툰을 읽다 생각하게 된 것은 Y가 '경계성 인격장애'였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경계성 인격장애가 무엇인지 찾아보면서 Y의 생전 모습이 너무도 많이 겹쳤다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 충동성, 반복적 자살행동 혹은 자해행동, 만성적 공허함, 부적절하게 화를 내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함, 우울증상 등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며 10%의 자살률을 보인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증상을 많이 보고 겪었으면서도, 나는 Y가 그냥 자존감이 낮고, 그래서 이상하게 어이없는 순간에 화를 낸다고만 생각했었다



나는 그 애를 어떻게 대했어야 했을까

그냥 피곤하다고 내버려뒀다 화를 내도 왜 화내냐고 관심 한 번 보인 적 없다

나와 같은 친구들의 무관심에 Y도 점점 더 절망해갔겠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학창시절을 거치며 여러 곳에서 배우게 되기 때문에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무례를 범하게 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나를 비롯해서 사회가 너무 무지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정신적 장애를 가졌어도 그 장애를 알아보지조차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프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혹은 알아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라 너무도 서툴게 대한다 

정신적 면역력이 약한 당사자는 그 과정에서 더한 상처를 받게 되고, 점점 더 절망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사촌오빠와 술을 마시는데 내가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촌오빠가 먼저 자신의 친구가 몇 달 전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것도 그렇고 내 블로그만 봐도 '친구가 자살했다'는 글이 꾸준한 유입 키워드인 걸 보면, 자살률이 엄청난 나라답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그들의 친구들이 괴로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모나더라도 이상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의미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죄책감을 겪지 않을테니까

사람을 싫어하지 말아야지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지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나 자신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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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주 황당하고 어이없고 갑작스럽고 비현실적인 그런 일이 벌어진지.




-  


Y의 부고를 들은 그 시점, 나는 친구와 찜질방에 있었다. 맥반석 계란과 식혜를 잔뜩 먹고, '함께 뒹굴거리는 행복이 이런 건가 보다' 하면서. 평소보다 더 평화로웠다. 친구와 나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소금방에서 몸에 소금을 묻히며 뒹굴다가, 산림욕방에 누워서 뒹굴뒹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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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마음에 걸리는 글을 본 바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Y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었다. "너 사랑하는데 밉다. 실감이 안난다. 이따가 갈게."라는 글. Y의 죽음을 암시하는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설마- 그럴리 없을거라 생각했다. 다른 댓글도 없었고, 설마, 말도 안되지 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긴 했는지,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글을 본 얘기를 꺼내긴 했다. 친구와 Y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친구에게도 그 글을 보여주니 심상치 않다고 했다. 불안했지만,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아니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는지도. 



-


야속하게도,


산림욕방에서 부고를 들었다. 카톡 메세지로. 부고를 들은 건 우연에 가까웠다. Y와 아는 사이인 줄도 몰랐던- 나와는 대학에 와서 밴드를 같이했던- 다른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너 Y 알지? 페이스북 함께 아는 친구에 니가 있길래. 걔 죽었대. 자살했대." 


친구와 Y는 별로 친하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 사이에 부고가 돌고 있다고. 자기는 오늘 못 가본다며. 너무 아무렇지 않은 연락이었다. 이런 연락이, 이렇게 오는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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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해졌다. 


넋이 나갔다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지.  


그냥 현실감이 없었다. 어떡하지.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지금, 뭘 어째야 하지. 눈물은 전혀 안났다. 실감이 안났으니까. 이건 Y의 연극일까? 장난인가? 장난이라면 장난이 심하잖아. 몰래 카메란가? 꿈일까. 혹은 다른 그 무엇일까. 나는 현실 외의 모든 다른 선택지를 떠올렸다. 어쨌든 내가 지금 해야할 일은 Y 그리고 나와 함께 친했던 친구들에게 Y의 소식을 알리는 거였다. 혼자 감당하고 있기에는 버겁고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냥 빨리 그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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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Y와 가장 친했고, 나와도 가장 친한 H에게 전화를 했다. H는 전화를 받지 않아서, 카톡 메시지를 남겼다. 보자마자 전화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수업중이라고. 나는 그냥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 야. Y가 죽었대. H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뭐?" 그 다음 말은 이거였다. "아시발." H는 사인조차 묻지 않았다. H가 묻지도 않은 Y의 사인을 내가 말했을때, H는 말했다. "뻔하지." 나는, 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인을 듣고 놀라진 않았었다. 하지만 H는 나보다 Y에 대해 더 잘 알았으니, 그애에겐 뻔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M언니는 전화를 받고 내가 말하자마자 울었고, A는 넋이 나가 말을 횡설수설했으며, C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연락을 할만큼 하다 어느 순간 나는 Y의 소식을 반복적으로 전하기가 버거워져서, 나머지 연락은 H가 해주기로 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조의금도 챙겨야 했다. 목욕탕 가는 동네 백수 차림이었던 데다가, 돈이 한 푼도 없었으니까.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눈물은 안났다. 그냥 Y는 왜 그랬을까. 왜 난 몰랐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까만 블라우스에 까만 바지, 까만 코트와 까만 구두. 온통 검정색의 옷을 챙겨입고. 렌즈를 빼고 안경을 썼다. 가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렌즈를 낀 채로 울어도 되는지를 몰라서. 그리고 베를린에 가려고 모아둔 현금 중 10만원을 꺼냈다. 그 순간에도 백수라는 내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건지. 5만원과 10만원 사이에서 고민이 됐다. 가면서 생각해봐야지 하면서 10만원을 꺼냈다. 순간, 그런 내가 싫어졌다. 친구가 죽었는데,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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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Y가 살던 동네 병원에 차려져 있었는데, 집에서는 너무 멀었다.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낯선 동네에서 병원을 찾아가며 난 이 동네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Y의 동네에 온 적이 없었다. Y는 우리집에서 자고 간 적도 있는데. 나와 아이들은 만날 때도 Y네 집에선 먼 시내에서만 주로 만났다. 거기가 Y 외의 모든 애들에게 가까운 곳이었으니까. Y는 매일 혼자 이 먼 길을 돌아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로웠을까.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장례식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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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그냥 맞으며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Y의 이름은 상황판에 나타나 있지 않았다. 몇 호실인지 알면서도, 이름이 없어서 조금 헤매다가, 빈소에 앉아있는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하고 들어섰다.


내가 들어가니 아마도 Y의 가족 그리고 친척들일 분들이 일어섰다. 나는 우선 조의금을 내려 했는데, 정신이 없어 입구에서 봉투를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 내지 봉투가 어디있지 하고 있는데, Y의 가족분들은 조의금을 받지 않고 계셨다. 5만원과 10만원 사이에서 고민하던 내가- 너무, 어이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기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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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에 들어서서 Y의 영정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이 모든 일이 연극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사실 그 순간의 기억은 흐리다. 오롯이 아득하다. 뭘 어찌해야하는지도 익숙하지 않아서. 국화 꽃을 Y의 앞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이고 서서 기도했다. 그 때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울었다. 상주로 서 계시던 Y의 어머니께서는, 내가 울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셨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안고 울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친구냐고, 이름은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앉아있는 친구들에게 갔다. 내가 울자 언니들이 휴지와 물을 줬다. 


빈소에서의 시간은, 그냥 오롯이 Y 생각만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다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Y에 대한 생각에 빠져, 말없이 혼자 멍하니 있었다. 가장 많이 든 건 죄책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H와 C가 왔고, 막차시간이 돼서 우리는 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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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며칠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혼자 밥을 먹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며칠 후 Y는 꿈에도 나왔다. H와 내가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는데, Y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나타났다. 난 너무 놀라서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냐며 소리를 질렀고, Y는 대개 죽다 살아돌아온 사람들이 하는 저승사자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Y에게, 너무 놀라서 진정이 안된다면서, 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투정을 부렸다. 꿈에서 난 정말 다행이고 또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H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지었다. 나는 꿈을 꾸자마자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도 잠에서 깼고, 깨고 나서 방금 꾼 게 꿈이라는 걸 깨닫고는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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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다녀오는 길에는, 부고를 알려준 친구로부터 Y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몰랐던 Y의 이야기들. 


번호를 자주 바꿨던 Y와는 한 달 전 나누었던 한 번의 카톡 대화만이 남아있었다. 한 달 전 Y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었다 했다. 세상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었을지,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려한 것이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그 대화에서 나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했던 Y와는 달리, 나는 Y를 조금 귀찮아했고, 표면적으로 대했다는 사실이다. 그 짧은 대화에서도 나의 무정함이 충분히 느껴졌다. Y도 느꼈었겠지. Y는 나에게 조만간 보자고 했고, 힘내라고 했고, 잘지내라고 했다. 나는 그런 Y에게 "응 너도 잘지내ㅋㅋ"라고 영혼 없는 마지막 말을 남겼고, 조만간 보자던 Y와 나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내 죄책감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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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사람.


Y에게 내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Y와 나는 친한 친구였다. 재수학원에서 만난 Y와 나는 같은 무리의 유일한 동갑 여자 친구였다. 언니들 둘에 우리 둘. 우리는 넷이 친했다. 학원을 다닐 때는 매일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모의고사를 보는 날에는 이곳저곳 함께 놀러 다녔다. 


그 때의 Y와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 때의 Y는 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모범생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다지 모범적인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Y는 그런 나를 어른이 아이 바라보듯 바라보며 챙겨주고 때론 충고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도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막 사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무리 중에 유이하게 담배를 피지 않는 나와 Y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집에 가는 길 밤 10시가 넘은 시각, 지하철 역에서 이야기하며 수많은 지하철을 그냥 흘려 보냈고, 더 이상의 지하철을 놓치면 집에 갈 수 없을 쯤이 되어서야 헤어진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루는, 이야기를 하다 멈추기 싫어서, 내가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인 Y네 집 쪽 방향으로 Y와 함께 2호선 지하철을 타서 한 바퀴 돌아 집에 간 적도 있었다. 이것도 벌써 7년 전 이야기라, 그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지 자세한 대화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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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Y가 지방의 대학을 가고, 내가 삼수를 하게 되면서 Y와 나는 자주 볼 수 없는 사이가 됐다. 그럼에도 중간에 Y가 힘내라고 찾아왔던 일은 기억이 난다. Y가 아무 날도 아닌데 말도 없이 가디건을 사서 선물이라고 주어서, 나는 이런 걸 왜 주냐고 했었고, Y는 내가 생각나서 샀다고 했었다. Y는 꽤나 따뜻한 아이였다. 20대 초반의 나는 소위 '츤데레'처럼, 좋아하는 사람일 수록 드러내놓고 애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고 삐딱하게 구는 사람이었는데, Y는 나와 달랐다. 진지하고, 사려 깊은 아이였다. 언제나 겉으로 삐딱하게 구는 내게 면박을 주면서도, 내 진심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아는듯, 나를 이해해줬다. 


우리는 언니들과 함께 종종 만나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고, 둘이 만나 쇼핑을 했으며,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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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에 오게 됐고, 바빠진 언니들과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주 보지는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Y와 나는 꽤 꾸준히 만났다. 그리고 무렵 Y는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변한 건 Y가 대학에 간 후였는데, 내가 나 사는 데 바빠 Y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안경을 벗고 화장을 하기 시작한 Y는 예뻐졌다. 그리고 Y는 좀 달라졌다. 클럽을 다니고, 소개팅을 하고, 미팅을 하고. 언젠가부터 부쩍 남자 얘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언니들보다는 학원의 남자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와는 학원을 다닐 때부터 친했지만 Y와는 친하지 않았던 H나 C, A 같은 동갑내기 남자애들과 놀았다. 우리는 만나면 술을 마셨고, 시덥잖은 가벼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나는 Y와 진지한 얘기를 하지 않게 됐고, Y는 나보다는 H와 더 친해졌다. 


그 사실을 H를 통해 알게 되는 일이 종종 생겼고, 거기서 소외감을 느껴서 Y가 미워졌던 건지 어쨌는지 나는 시덥잖은 이유로 Y를 멀리하게 됐다. 중간중간 몇 가지 Y가 나를 화나게 했던- 사건이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일도 아니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별 일 아닌 몇 가지 일이 당시엔 Y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보니, 나에게 Y는 그저, 만나면 남자 얘기만 하는 친구, 그런데 한 남자와 진득하게 만나는 일은 없는 친구, 맨날 나에게 소개팅을 시켜달라고만 하는 친구, 나보단, 남자가 더 중요한 친구. 가 되어있었다. 이게, Y에게 무정해진 나에 대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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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Y가 남자 얘기만 한다는 사실에 짜증을 냈을뿐, Y가 왜 그러는지 궁금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카톡을 수시로 지웠다 깔았다 하고 핸드폰 번호를 바꿔대는 Y의 멘탈이 이상하다고 뒤에서 욕했지만, 정작 Y보고 너 대체 왜그러냐고 물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같이 노는 친구들 중에서도 나는 Y의 멘탈에 대해 가장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 기준으로 보면 Y는 힘들 일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삼수를 하고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집이 망하고, 연애 또한 망하는 그런 20대 초반을 겪으며, 나는 내 자신을 동정했고, 내 세계에서 '힘듦'의 기준은 끝도 없이 높아졌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피해 수업 시간표를 짜고, 우울해서 상담소를 다니던 시절의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이유로 힘들 수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직업이 보장된 좋은 대학에 가서 예뻐진 외모로 멋있는 남자들을 바꿔가며 만나고, 사고 싶은 옷도 맘껏 사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어 즐겁게, 외제차까지 사서 몰고 다니는 Y는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 힘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Y를 이해하지 못했다. Y도 이해하지 못할 나에게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Y를 가장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애들이 Y의 멘탈을 걱정할 때도 가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친구들이 모여 Y의 멘탈을 걱정할 때, 나는 "Y가 좋은 남자 못만나서 그런 거 아냐? Y도 괜찮은 남자 만나서 안정적인 연애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말했었고, Y와는 친했던 순간이 없는 C는 내 말에 "야 아니야. Y는 누굴 만나건 걔 자체가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가 없어."라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도 C가 Y를 잘 알았던 것 같다. C도 알 수 있을 정도로 Y의 멘탈은 이미 망가져 있었는데, 나만 그걸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에도 한결같이 Y는 나에게 친구로서의 애정을 표현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꾸준히 무정했고, 무책임했으며, 무관심했다. 그래서, 그녀를 못봤다.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놔봤자, 결론은 하나다. 나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 




Y에게는 내가 소개해준 동생 K가 있었다. K는 내가 삼수할 때 같은 학원 동생이었는데, Y의 한 학년 밑으로 Y와 같은 대학에 가게 되어, 나는 둘을 소개해줬었다. 그리고 그 둘은 지방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나보다 더 친해졌다. 


K에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부고를 뒤늦게 들었다고. Y를 공동으로 아는 사람이 나뿐인 K는 Y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며 나에게 자기가 알았던 Y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 터널을 빠져나가느라 오로지 내 터널 끝 밖에는 보지 못하던 그 시점에, Y는 끝이 막힌 터널에 갇혀 있었던 모양이다. Y는 지방의 그 학교에서 꽤나 힘들어했다고 했다. K가 아는 것만 해도 3번의 자살시도를 했다고 했다. 그 전에, H는 Y가 병원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고 했었다. 전부 나는 모르는 얘기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몰랐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알았더라면,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을 그렇게 보내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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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죽기 전날 밤 SNS에 죽음을 암시하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그 SNS를 하지 않아, 그 글조차 보지 못했다. 그리고 Y가 그 글을 남기기 전날, 나는 H 그리고 M 언니와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다. 내가 모임을 주도한 술자리였는데, Y가 있어도 자연스러울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Y를 부르지 않았다. Y가 한 달 전에 조만간 보자고 한 말도 잊고 있었고, 그냥 잘나가고 있는 Y를 보면 작아질 내가 걱정된 무의식 탓이었는지, Y를 부를 생각도 안했다. 


셋이 모였을 때 M언니는 첫 마디로 "Y는 요새 어떻게 지내?"냐고 했고, 나는 "뭐 잘지내겠죠. H가 알텐데?"라고 했다. H는 그냥 웃고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Y에게 연락해볼 생각 한 번 안했다.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그 술자리에 대해 후회했다. 그 날 Y를 부를걸. 그럴걸. 


물론, 그랬더래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그랬더라면 적어도 Y를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Y를 마지막으로 본지 어느새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사실 Y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조만간. Y가 말한 조만간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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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의식 과잉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지만 Y의 죽음에 나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 날이후 나는 자주 죄책감에 휩싸인다. 


Y가 살아 있었을 때 이 모든 걸 알았더라면, Y가 죽기 이틀 전 함께 술을 마셨더라면, Y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그 글을 내가 봤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못그랬었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었던 K도 H도, Y의 가족도 차마 못한 일이니까. 


하지만 미안하다.


힘든 시간을 외롭게 보냈을 Y에게 미안하다. 너의 힘듦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서. 니가 왜 힘든지 궁금해하지 않아서. 너는 알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널 뒤에서 손가락질하기만 했어. 니 앞에선 아닌 척 했지만 뒤에선 너에 대해 차가운 시선으로 뾰족한 말만 했었어. 이제 용서를 구할 너는 없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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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잊지 않기 위해 쓴다. 언제든 이 글을 보면 떠오르도록, 가장 구체적으로 썼다. 

다시는 다른 사람의 힘듦을 내 기준으로 쉽게 재단하고 말하지 않기를, 힘든 친구에게 먼저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기를, 나에게 의지하려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기를, 마음을 알아주기를,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를, 다짐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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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가 보고싶다.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기를.





2009년 어느 새벽 우리가 같이 들었던 노래 

달빛에 흔들려 어디로 가는 건 진 몰라도, 우리 서로 한없이 취해서 보냈던 그 시간들은, 나에게도 정말 소중했었어.

행복했었다는 너의 마지막 말이 정말 진심이었기를 바랄게.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이 행복하길. 








 


 




[아니쉬 카푸어의 '붉은 색의 은밀한 부분 반영하기'를 보며 느껴지는 붉은 은밀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지시하여 상상력 펼치기]

 

 

 나는 내 적혈구가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차례가 다가오는 것이 긴장되었다. 나는 흰 러닝셔츠에 군청색 브리프를 입고, 같은 복장의 남자들과 함께 줄을 서 있었다. 나는 230년 전 영화인 워쇼스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 속 복제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을-0755번, 2번 검사대.”

 

 낮은 기계음이 내 차례를 알렸고 나는 검사대로 향했다. 서늘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검사대는 작년과 다른 모습이었다. 검사대는 양 옆에 내 키 높이의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칸막이 앞에는 작은 구멍들이 동그란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스피커인듯 했다. 스피커 위에는 스피커를 이루고 있는 구멍들보다 조금 더 큰 구멍이 있었다. 구멍 위에는 굴림체로 ‘구멍에 오른쪽 눈을 대시오.’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구멍에 오른쪽 눈을 댔다가 소리를 지를 뻔했다.

 

 구멍 너머에는 하나의 눈동자가 있었다. 초록색 눈동자였다. 깜박이지 않는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왔다. 초록색 눈동자의 주인이 말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혈압 130-80, 골수 상태 양호, 백혈구 수치 양호... 뭐 문제될 건 없겠습니다만.”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는 짧은 순간동안 나는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침을 삼키고 싶었지만, 상대가 내 긴장을 알아챌까 그럴 수 없었다.

 

“적혈구가 문제로군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내 하얀 러닝셔츠만이 파르르 떨렸다. 초라한 내 적혈구. 망할. 그래 나는 평생 적혈구가 문제였다.

 

 

“색깔도 아름답지 않지만...그보다 더 문제인 건 연애세포가 아예 없군요. 이런 적혈구는 처음 봅니다. 3차 검사대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겠습니다.”

 

 처음보긴 개뿔. 나를 검사한 20년동안 검사대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저 말을 했다. 매해 검사원이 바뀌는 걸까.

3차 검사대로 가라는 것은 말이 좋지 곧 탈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검사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이 검사는 일반적인 신체검사를 비롯해 유전자 검사, 생식기능 검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검사에서 일정기준을 충족해야만 짝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 곳의 규칙이었다. 나는 20살이 된 후로 매년 신체검사에 응모해왔고 40살인 올해가 내 마지막 기회였다. 오늘을 위해 연애세포를 생성해준다는 약을 비싼 돈을 들여 먹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연애세포를 생성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학원을 다니는 데에 내 월급을 다 쏟아 붓기도 했지만. 결국 최종결과는 이랬다. 나는 20년동안이나 흰 러닝셔츠와 군청색 브리프를 입고 복제인간이 된듯한 굴욕적인 기분을 느끼면서 이런 검사를 연례 행사처럼 매 해 해왔다. 검사를 받기 위해 내야만 했던 휴가의 급여들만 모았어도, 미소녀 로봇을 세 개는 샀을 거다.

 

 나는 시스템 자체에 반항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정밀 검사를 받으라니. 대체 그 말만 몇 년쨉니까. 더 이상은 저도 지친다구요. 정 안되면 저와 같은 입장의 여자라도 연결해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20년만에 처음으로 스피커의 목소리에 반박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칸막이 너머로 불편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초록색 눈동자가 느리게 한 번 깜박였다.

 

“을-0755님. 그건 아무래도 곤란합니다. 귀하가 알다시피 우리 시스템의 목표는 인간의 마음에 가해질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한…당신의 적혈구는 타인에게 너무 치명적인… ”

 

 어느새 초록색 눈동자는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스피커를 발로 한 번 뻥 찼다. 

 

 그 순간, 내 피 속 적혈구가 반짝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검사대에서 뒤돌아 나오며, 초라한 적혈구를, 내 적혈구를 사랑해주기로 하였다. 나는 이제 빨간 적혈구를 남에게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사랑하면 될 일이었다. 스스로를 사랑하여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조차 막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최대한 은밀하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 밖에는 없었다.


2013.02.13 23:59, 발렌타인데이 기념 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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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하고도 조금 더 전에 가장 친한 친구들과 글쓰기 모임을 했었다.

지금은 미술하러 독일로 떠난 ㅇㅇ이가(ㅇㅇ인 이유는 그녀 이름의 초성이 ㅇㅇ이라서) 낸 주제로 썼던 글.

글쓰기 모임 재미있었는데, 좀 하다가 흐지부지 돼버렸다. 

애들이 다들 간간히 그 때 그 글쓰기 모임을 다시 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어제가 고백데이였다고 한다. 고백데이 기념 작문일까. 

블로그를 보면 알 수 있듯 홍보 따위 없는 주관 100% 진짜 맛집 리스트.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었다.

홍보용이 아니기에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는 없음. 보고 가보고 싶다하면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구체적인 정보들 다 뜰테니 찾아보세요. 그리고 학생인 관계로 맛과 더불어 가성비에도 굉장히 중점을 둔 맛집들임.  



 1. 스노우볼 

 빙수 맛집 스노우볼. 난 이촌점에만 갔었는데 지점이 여러 군데 있다. 여름내내 페북 등에 떠돌아다니는 빙수 맛집을 봐도 이상하게 여긴 없던데.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다 맛있다고 난리였던 빙수. 스노우볼 먹느라 여름동안 다른 빙수집은 거의 안갔다. 특이한 질감에 잘 안녹는 이 집만의 특수한 우유얼음이 특색이다. 1인분 기준의 빙수고 가격대는 5000~7000원대. 팥, 인절미, 오레오, 자몽, 레몬 빙수 등이 있다. 오시정 레몬빙수가 사라져서 슬펐었는데 오시정 레몬빙수랑 비슷한 식이면서도 여기가 얼음이 더 맛있음. 빙수집 위생이 문제라던데 여긴 위생 걱정도 없게 생겼고, 진짜 맛난다. 사진은 오레오&레몬빙수!   


 2. 인천 차이나타운 원보 

 인천 차이나타운 만두 맛집 원보. 인천에 놀러갔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된 집. 만두 전문점이다. 짜장면, 짬뽕은 아예 안팔고 만두랑 요리 몇가지만 판다. 사진의 만두는 새우물만두랑 군만두인데, 각각 한 접시 4~6천원쯤 했다. 같이간 친구는 군만두 안좋아한다고 시키지 말라더니 먹고나서 맛있다고 난리남. 칭따오도 차이나타운 다른 집(인터넷 블로그에서 맛집이라고해서 보고간 집ㅠㅠ)에서는 7천원인가 그렇게 비싸게 받던데 여기는 동네 양꼬치집들처럼 한 병에 3천원인가 4천원이어서 좋았음. 만두 진짜 맛집인데 인터넷에서 별로 안 유명해서인지 웨이팅도 없고 짱좋았다. 새우 물만두는 만두 하나당 새우가 한마리씩 알차게 들어있었는데 입안에서 씹히는 맛이 딱 나서 맛있고, 군만두도 적당히 느끼하고 맛있었다. 집만 가까우면 자주 가고 싶은 집. 지금도 같이 갔던 친구랑 원보 가고 싶다고 때때로 얘기하는 맛집!  



 3. 사당 청송 산오징어

 사당역에서 좀 걸어가면 찾을 수 있는 청송산오징어. 오징어 통찜이랑 오징어 회를 먹었었는데, 오징어 회는 맛있었지만 평범했고, 오징어 통찜이 진짜 정말 맛있었다. 싯가라서 가격이 좀 부담ㅠㅠ이지만 보통 만원 후반대~이만원 초반대라고 함. 고등학교 동창 남자애들 둘이랑 셋이 먹었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셋이 이거랑 오징어 회 반반에 소주 세 병 마셨나?... 너무 맛있어서 아껴아껴 먹게되는 맛임. 또 가고 싶다... 돈 많이 벌면 청송 산오징어에서 산오징어 통찜 원없이 먹어보고 싶다. 흐엉. 다른 것도 왠지 맛있을 것 같은 맛집. 






이사를 오고 나서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자전거를 수월하게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자전거를 잘 타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파른 경사는 오르막도 내리막도 탈 수가 없다. 전에 살던 집은 언덕 위에 있는 아파트 였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려면 평지까지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야 했기에 자전거를 타기에는 매우 나쁜 환경이었다. 그래서 그 땐 언제나 가족 모두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자전거를 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지금 집은 한강대교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데 자전거를 타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자전거 도로가 끝없이 펼쳐진 한강변까지 자전거를 타고 2분이 채 안 걸리니까. (걸어서도 5분 정도)



덕분에 이사 오고 나서 자연스럽게 자전거가 생겼다. 주로 타는 사람은 아빠와 나. 아빠는 한강공원 자전거도로를 타고 난지도까지 가거나 하시는 등 주로 한강변에서 운동으로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신다. 물론 나도 한강변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지만 나는 운동을 위한 자전거 타기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날씨 좋을 땐 운동을 위해 목적지 없이 자전거를 탈 때도 있지만, 보통은 주로 어딘가를 갈 때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다. 한강 근처는 한강공원이 아니라도 웬만하면 평지고 자전거 도로도 잘되어 있는 편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가기가 수월하다.



내가 여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본 곳들은 다음과 같다. (출발지는 모두 한강대교 북단)



1. 노량진 : 난이도 하

내가 가장 만만하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곳, 노량진. 여긴 꽤 여러 번 갔다. 가깝고, 친구들이 노량진 근처에 많이 살아서 친구들 만나러 갈 일도 종종 있어서. 가는 길이 100% 평지고, 노량진역 앞에 자전거 주차소도 있다. 거의 최저 난이도라고 할 수 있다. 노량진 가까워져서 인도부터는 사람이 많고 인도도 좁아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할 거리가 꽤 된다는 게 조금 귀찮지만 뭐 그정도야.



2. 상수역 : 난이도 하

이것도 뭐. 말할 내용도 딱히 없이 쉽다. 남자친구 동네라 두어 번 갔었음. 한강공원 상수지구까지 그냥 한강변 자전거 도로 따라 쭉 간 후에 상수 출입구였나 아무튼 거기로 나가서 조금만 안쪽으로 가면 상수역. 그 끝엔 남친이 바나나 우유 두 개 들고 날 기다리고 있었기에 더 힘들지 않았는지도...



3. 63빌딩 : 난이도 하

어제 자전거 타고 갔던 63빌딩.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면 언제나 건너편에 탐스럽게 보이는 63빌딩. 남친과 전망대 겸 미술관이라는 스카이아트 미술관에 갔었다. 야경을 보기 위해 야간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 한강 근처랑 가까워서 가기 쉬웠다. 마지막에 한강공원에서 63빌딩으로 나가는 출구가 계단이라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게 좀 난코스였지만. 그리고 갈 땐 안 추웠는데 올 땐 아직 추위가 덜 풀려서 입 돌아갈 뻔. 그래도 워낙 가까워서 추웠는데도 갈 만 했다. 



4. 한강공원 망원지구 근처 ㅇㅇ이 작업실 : 난이도 중하

친구 ㅇㅇ이의 작업실이 망원역 근처여서 거기까지 자전거 타고 놀러갔었다. 한강공원 망원지구까지 자전거 타고 가는 건 역시나 수월하고, 망원지구에서 나와 ㅇㅇ이의 작업실까지도 도로가 되게 한산하고 골목도 넓직넓직해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가는 일 없이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하인 이유는 거리가 좀 있어서...



5. 여의나루 : 난이도 중

이촌 한강공원에서 출발해서 마포대교를 건너 갔었나? 네이버 지도 보고 갔었는데 무튼 길 찾는 것 빼곤 수월했던 코스. 내려서 자전거 끌 부분도 딱히 없었다. 여의나루 한강공원에서 ㅇ언니랑 치맥 먹으려고 갔었지. 맥주 한 잔 하니까 올 때는 겁도 없이 더 즐겁게 타고 왔던 기억이... 



6. 상도동 (상도역 근처) : 난이도 중상

내가 태어나서부터 10년이 넘게 살던 동네인 내 마음의 고향 상도동.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먹었던 오시오 떡볶이가 아직도 있고, 친구들도 몇 명 있다. 날 좋은 어느 금요일 낮 친구와 오시오 떡볶이를 먹기로 하고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상도터널만 건너서 가면 되니 노량진보다 더 가깝겠구나 가기 쉽겠네. 라는 나의 생각은 상도터널에 들어선지 채 10미터도 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상도터널은 차로 갈 땐절대 알 수 없었지만...미세한 경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런 터널이었다. 초반엔 근성으로 자전거 페달을 쭉쭉 밟았으나 그러다 다리도 죽고 나도 죽을 듯 하여 중반부터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터널을 건넜다. 차타고 다닐 땐 몰랐는데 터널은 또 왜 그리 길던지. 중학교 때 버스비 없어서 친구인 김우영과 둘이 인도가 없던 그 시절 상도터널을(먼지가 가득하고 바로 옆엔 차가 쌩쌩거렸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걸어서 건넌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 다시는 상도터널을 걸어서 건너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물론 걷는 게 아니라 자전거긴 했지만 10년 전 다짐이라 방심했던 것 같다... 터널을 나와 오시오 떡볶이 앞에서 만난 친구는 터널을 건너자마자 폐인이 되어 급격히 생기를 잃은 내 모습을 비웃었다. 아무튼 상도터널은 아무리 자전거 기어에 자신이 있더라도 차로 건너야 한다. 다시는 안 갈 코스.



7. 서강대학교 : 난이도 상

1교시를 자전거 타고 등교... 마포나룻까지는 가깝고 쉽게 갔지만... 마포나룻 출구에서 대흥역을 지나 학교까지 가는 코스가 난코스였다. 갈 때는 오전이라 차도 많고, 마포나룻에서 학교까지는 주로 미세한 오르막인데다가 인도도 좁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이라 참 힘들었다. 뭐 또 자전거 타고 가라면 심호흡 한 번 하고 갈 수야 있겠지만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포나룻에서 학교까지가 미세한 오르막이라 그런가 아니면 몇 시까지 맞춰가야 한다는 정해진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꽤 수월했던 기억이 나네. 




여기말고도 용산역이나 신용산역까지도 자전거타고 잘 다닌다. 둘 다 걷기엔 멀고 버스 타기엔 가까운 애매한 거리라 자전거 타고 가기가 딱이다. 써놓고 보니 자전거 타고 참 많이도 다녔구나. 겨울 동안은 추워서 잘 못 타고 다녔는데, 빨리 날 풀려서 자전거 타고 또 이곳 저곳 다니고 싶다. 자전거 타고 다니면 바람도 가를 수 있고, 평소에 못 보던 이런 저런 풍경도 보고 이런 저런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친구 만날 땐 좀 있어 보이는 도시인이 된 기분이 들어서 좋다. 알러뷰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