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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의 일반인 여성보다는 조금 더 하드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 평범하지 못한 유머 감각은 팬이 있는가하면, 안티도 있었다. 내 유머 코드를 설명한다면 미국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정도의 수위인데, 유우머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린 한국에서는 종종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고 입시를 할 때 학원 영어 선생은 나를 무척 싫어했다. 그녀는 나의 개그를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내 여러 개그 중에서도 디스 개그를 광적으로 싫어했다. 정작 디스를 당하는 당사자들이 더 즐겁게 웃는 디스조차 그녀는 진절머리를 치며 싫어했고, 나와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나에게 훈계질을 하곤 했다. 나는 아주 가끔씩 분위기를 봐서 그런 그녀의 오버스러움을 조롱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웃고, 다들 웃는 분위기에서 차마 정색할 수 없는 그녀는 애써 화를 참으며 억지 웃음을 짓다가, 가끔은 폭발하여 정색하고 화를 냈다.
그녀를 조롱하는 데 개그의 형식을 사용했듯,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비꼬며 같이 있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도 내 특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 대부분의 디스 개그는 애정이 바탕이 된, 악의 0%의 초딩식 마인드에서 비롯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심리 말이다. 다행히 어린 시절 정신이 건강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런 내 유머를 받아줄 여유가 있었고, 주위엔 내 개그에 함께 낄낄댈 수 있는 친구들로 가득했다. 나는 디스하는 것을 좋아하듯, 디스 당하는 것도 좋아했다. 친구들이 다같이 연합하여 나를 갈굴 때는 내가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며 상황을 즐겼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의 디스 개그에 맞디스로 반격하곤 했다.
하지만 영어 선생만은 내 개그를 너무너무너무 싫어했다. 나는 당시 학원 오빠들과 절친하였는데, 오빠들과 나는 서로를 디스하며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오빠 오늘 그 패션 뭐에요? 할머니가 주신 옷이에요?" "너 그 바지 아빠 팬티 주워 입은 거냐?" 하는 식으로 인사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사실 오빠들과 나는 아주 호의적인 관계였고, 그 중 한 명과는 썸도 탔으며, 이후로도 14년을 넘게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영어 선생은, 그런 내가 오빠들에게 예의가 없다며 또 나를 혼내고 훈계질하곤 했다. 아니 우린 서로를 갈구며 놀고 있는 것뿐인데 왜 그쪽이 불편한 거에욧!
그때부터였다. 어떤 사람을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머가 오고 가는 현장에 꼭 정색하며 분위기를 망쳐놓는, 시쳇말로 '진지충'들. 한마디로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수도없이 관찰해온 결과(싫으니까 집요하게 관찰함), 그들의 몇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지충들의 특징~
1. 80% 이상 여자 : 중고딩 남자 사이에서 진지충으로 유머 감각 없이 굴다가는 이미 답답한 새끼 취급 받으며 도태 당하게 되어있음. 아주 소수의 원래 착하거나 올바른 이미지의 남자애들(cf.박보검)만 이 디스 개그전에서 논외 취급 받으며 고고하게 살 수 있음.
2. 90%의 확률로 정신이 건강하지 않음 : 누군가 자신을 놀리거나,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을 곧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유리멘탈. 자신을 향한 놀림은 무조건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호의와 애정에서 비롯한 놀림과, 악의에서 비롯한 갈굼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를 구분 못할 거면 그냥 다들 내가 좋아서 놀리나 보다 생각하면 자기 정신 건강에도 더 이로울텐데. 자신을 향한 놀림은 무조건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않고 피해의식이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3. 지능 낮음 : 원래 서양 연구 결과 보면 사르카즘(비꼬기 개그, 농담) 잘하는 애들이 머리 좋고, 유머 감각과 지능은 비례한다고 나옴.
4. 장난이나 농담이 통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답답한 가정 분위기 : 진지충 부모 아래 진지충 자식 자란다.
나는 자라면서 최대한 진지충을 피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하지만 걱정 없던 어린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는 인생만큼 사람들의 여유도 사라져갔다.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를 디스하며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은 줄어들었다.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서로의 고쟁이 패션을 디스하며 깔깔거리는 친구 관계를 꿈꿨지만, '우리 이제 그럴 나이 아니'라는 말에 숨겨진 친구들의 피곤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아가 나 스스로도 힘든 시간을 겪으며 진지충들의 예민한 유리멘탈을 한시적으로나마 겪어보게 되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의도치 않게 다치게 할까 웬만해선 디스개그를 자제하게 됐다. 정말 친한 소수의 친구들과만 디스 개그가 남아 있는데, 멘탈의 튼튼함이 상위 10%는 되는 좋은 친구들이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서로를 갈구며 놀 수 있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매우 행복하다.
대신 나이든 나의 메인 개그는 '자기 디스 개그'가 됐다. 나의 모든 아픔을 개그로 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20대 초반에 잠수 이별을 두 번이나 당했는데, 친구들과 카톡을 하다가 잠시 카톡이 끊기면 "왜그래...? 잠수야...? 너까지 나한테 왜이래...?"하면서 계속해서 카톡을 보내는 집착녀 코스프레를 하곤 했고, 잠수 이별을 겪으며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지켜봤던 친구들은 이 대목에서 어김없이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 외에도 최종 면접 탈락, 부모님 사업 망한 것, 11년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등 나는 커다란 아픔일수록 개그로 승화하며 치유했다. 11년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 같은 것은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하드코어하기 때문에(눈치없이 했다간 그 자리가 숙연해짐), 사람을 가려했다. 이런 개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들은 다른 어떤 개그보다도 이런 개그를 좋아하며 함께 깔깔거렸고, 나는 그 과정에서 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
역시 유머는 만병통치약이었던 것이다. 껄껄껄.
뭘 위해 이 글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하고 싶은 말은, 모두에게 유머 감각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 나라의 개그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너무 많은 금기가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대머리를 보고 웃으면 안 된다고, 달리기하다 친구가 아무리 웃기게 넘어져도 웃지 말아야 한다고, 그 외에 여러가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질만한 상황에서 웃음을 참아야 한다고 지나치게 강요 받으며 살아왔다. 할아버지가 대머리길래 빛나리라고 놀리다가 진지하게 혼났고, 친구가 웃기게 넘어져서 크게 웃었다가 당사자한테 뒤에서 눈치 없다고 욕 먹은 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을 두려워말자! 컴플렉스가 없는 인간은 스스로가 희화화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컴플렉스가 있는 인간도 참고 자신의 컴플렉스를 희화화하다보면 컴플렉스가 점차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을 웃긴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찬 행위인가. 빛나리라고 대머리를 놀리는 손녀에겐 "허허허 욘석! 할아버지 레이저 빔 맛 좀 볼테냐?"하며 손녀를 향해 대머리 광선을 쏘자. 넘어져서 아프지만 친구들이 웃으면 무릎을 털고 더 과도하게 절뚝거리며 친구들을 향한 몰카를...왜.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냐고? 그...그...웃으면 수명이 는다구!
하여튼 시절이 하수상해서인지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냥 함께 웃어 넘길 수 있을 만한 것에도 진지한 잣대가 끼어드는 모습이 짜증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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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서 뭐하나 검색해서 읽는 게 취미인데(주로 사건/사고 항목을 즐겨 읽음)
보다 보면 중간에 꽂히고 꽂히고 들어가서 막 별 이상한 지식을 다 쌓게 된다
오늘만해도
인터넷에 트위터 관련된 글 보고 트위터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트위터'를 검색함
-> 리트윗 기능에 대해 읽다가 박정근의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사건'이 리트윗을 무조건 호의의 표현으로 오해해서 나온 웃긴 일이란 설명을 봤음.
-> 몇 년전에 박정근 돕는 두리반 바자회 갔던 게 생각나서 '박정근' 클릭
-> 박정근 사건 1심 공판에서 밤섬해적단의 권용만이 증인으로 나섰다는데 밤섬해적단이 왜 나섰는지 궁금해져서 '밤섬해적단' 클릭
-> 이름만 알고 어떤 밴든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위키에 발췌되어 쓰여진 노래 가사들 읽으니 웃김.
밤섬해적단 '백범살인일지'라는 노래 가사 보는데 어디선가 들어보기만 하고 뭔지 잘 모르는 사건이라 찾아보게 됨.
-> 김구에게 젊을 때 죄없는 일본인 민간인을 살해한 '쓰치다 살인 사건'이라는 흑역사가 있단 걸 알게됨.
-> 나무 위키 묘사가 맞는지 궁금해서 구글에 '쓰치다 사건'을 검색했더니 김구는 좌익들에게 백색 테러하던 흑역사가 있다는 엠팍 글 발견
-> 김구의 좌익 상대 테러 '백의사'에 대해 알게 됨.
김구가 이승만, 김일성과 달리 같은 독립운동가를 상대로 보복하고 싸우지 않아서 이만큼의 존경을 받게된 것인데, 실은 그들과 같았다는 요지의 글을 읽게됨.
-> 김구의 또다른 흑역사 '김립 피살 사건'에 대해 알게 됨.
김구가 소련이 준 독립 운동 자금을 임시정부가 아닌 상하이 공산당이 쓰려고 했단 이유로 김립에게 공금 유용 혐의를 씌워 피살한 사건이었음.
소련은 자금을 임정이 아니라 상하이 공산당에게 준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함. 하지만 아직도 김립은 불명예스럽게 죽어 독립유공자 인정도 받지 못한다나.
-> 다시 박정근 페이지로 돌아옴. 권용만이 왜 증인을 해줬는지 권용만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서 클릭.
-> 권용만 항목을 읽는데 2000년대 초반 3cf라고 꽤 유명했던 만화 커뮤니티 주인장이었다함.
-> 3cf가 뭔지 처음 들어봐서 클릭. 삼류만화 올리는 사이트였는데 웹툰 작가 주호민이 활동했다고. 이말년도 여러번 가입신청했는데 폐쇄적인 사이트라 가입 못한듯.
권용만은 3cf라는 커뮤니티를 무려 고3때 운영했다함.
-> 3cf의 레귤러 멤버 항목을 읽다 '팔보채'라는 사람을 발견. 한 여자 회원이 사이트 주인인 보노(권용만)과 팔보채 둘 모두와 교제했다나.
-> 팔보채는 3cf의 부운영자였던 '닥터 고딕', '고두익'의 또다른 이름이었다고 함.
-> 고두익은 디씨인사이드의 네임드였고, 주호민 '신과 함께'에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함.
-> 카메오 단어 링크가 활성화돼 있길래, '신과 함께'에 고두익이 등장한 컷인 줄 알고 클릭.
-> 그냥 '카메오' 항목이었음. 그 항목을 통해 카메오가 '보석을 조각한 장신구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됨.
-> 다시 고두익으로 돌아옴. 그의 유명 작품 중엔 김성모 만화로 만든 플래시, '왱알앵알'이 있다고 함.
-> '왱알앵알'이 뭔지 몰라서 눌러봄.
그래서 지금 왱알앵알 감상 중...
나 지금 뭐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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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야운 고냥이들
뒷모습
남의 집을 내 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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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코너 돌아서 또 만남
공원에서 만난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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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도착해서 핸드폰을 제출하자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내내 잤다. 종이 치면 나가서 밥을 먹고, 명상을 하고, 나머지는 자고. 한 3일째까진 그렇게 지냈다. 말을 안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실 새로운 집단에 가자마자 말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명상 센터에는 산책할 수 있는 억새밭이 있었지만, 3일째까진 산책도 하지 않았다. 추워서 밖에 나가지 않는 집에서의 습관이 센터에서라고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내 잤지만 밤에도 어렵지 않게 잠들 수 있었다. 밤 아홉시쯤 명상이 끝나고 나면 씻고 아홉시 반쯤 잠에 들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덕에 눕자마자 잠을 잘 수 있었다. 거의 매일 꿈을 꾸었다. 꿈은 보통 자고 일어나면 금방 잊혀지는데, 센터에선 자고 일어나서 할 일이 생각 밖에 없었기 때문에 꾼 꿈을 계속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나는 꿈은 작년에 죽은 친구 Y가 나온 꿈이었다. Y가 우울할 때, 그러니까 죽기 전에 이 곳에 왔더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꿈에서 나는 C언니, H와 함께 이자까야에 갔다. 그 곳은 저승과 이승의 사람들이 잠시 만나 함께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술집이었다. 우리는 Y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눈이 펑펑 오고 눈보라가 쳤고, 우리는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Y는 살아있을 때처럼 가장 먼저 이자까야에 도착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미식가인 C언니는 그곳에서도 무슨 맛있는 걸 먹을까 메뉴판을 보고 있었고, 나는 취업이라도 한 모양인지 내가 사겠다며 호기롭게 비싼 걸 먹으라 말했다. 늦은 게 미안했던 나는 Y에게 말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가 막혀서 늦었어. 저승은 차 안 막히지?" 그러자 Y는 "아니 여기도 차 막혀" 라고 대답했다. 당황한 나는 반농담이랍시고 "좋은 거 하나 없네. 그러길래 왜 죽었냐"라고 대답했는데, Y가 아주 슬픈, 후회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시금치 카레
센터의 밥 하루 두 끼. 모두 채식. 여섯시 반에 먹는 아침은 그냥 평범했다. 오래 전에 구워져 별로 따뜻하지 않은 토스트와 매일 달라지는 잼(사과잼 혹은 딸기잼), 땅콩 버터. 그리고 죽도 나왔는데, 죽은 본죽 죽처럼 맛있는 그런 죽은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죽이었다. 쌀죽, 깨죽, 호박죽 등이 돌아가면서 나왔는데 깨죽이 제일 나았다. 콩자반이나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과일도 있었다. 사과나 감 1/4개 정도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매일 토스트 두 개와 죽 한 그릇을 먹었다. 이 기회에 살을 빼려고 한 5일째까지는 땅콩 버터를 먹지 않았는데, 6일째 정도부턴 참지 못하고 땅콩 버터를 먹어버렸다.
맛있는 건 점심이었다. 매일 11시에 점심을 먹었다. 콩인지 버섯인지로 만든 채식 고기도 나왔고, 신정 다음날엔 무와 두부로 만든 떡국도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시금치 카레였다. 나는 시금치 카레란 걸 처음 먹어봤는데, 간이 밍밍한데도 왠지 맛있었다. 어릴 때 급식 메뉴에서 제일 싫었던 것 중에 하나가 시금치 나물이었는데, 어른이 돼서 먹은 시금치는 거의 다 맛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주 긴 시간 맛 없다고 오해 받아온 시금치가 안타깝달까. 시금치 피자, 시금치 카레 다 맛있는데. 시금치는 나물로 쪼그라들어 무쳐져 있을 때 가장 매력 없다.
11시에 점심을 먹고나면 잠을 자는 저녁 9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데, 하루종일 거의 움직이지 않는 탓인지 하나도 배고프지 않았다.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았다. 심지어 아침이나 점심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저 심심해서였지, 배가 고프다거나 무엇을 먹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신수련생은 저녁 5시에 차를 마시며 튀밥과 과일 한쪽을 먹을 수 있는데, 나는 그조차 먹기 귀찮아 먹으러 가지 않았다.
룸메이트
대부분의 사람이 1인 1실이었지만 나는 2인 1실이었다. 나와 같이 방을 쓰는 사람은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맞았다) 처음엔 나처럼 자유 시간에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지만, 곧 혼자 방에서 나가선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 그녀가 내내 산책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센터의 규칙 상 같은 방을 쓰면서도 그녀와 나는 말 한 마디, 아니 눈짓 한 번 나눌 수 없었다. 처음엔 낮에 코를 골며 자는 그녀가 조금 싫었지만, 볼수록 정이 들었다. 난 시계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녀는 시계가 있어서, 그녀가 방에 없을 땐 그녀의 시계를 훔쳐보기도 했다. 시계를 한 번 보려면 먼 복도까지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3일째에 어떤 외국인이 견디지 못하고 센터를 떠났는데, 덕분에 우리에게 1인실로 옮기겠냐는 제안이 왔다. 순간적으로 나는 방을 옮기지 않겠다고 답했다.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나중에 생각해보았는데, 혼자 자는 게 무서울 것 같기도 했고, 자유 시간 내내 혼자 방에 있으면 너무 심심할 것 같기도 해서였다. 다행히 그녀도 짐이 많다는 이유로 방을 옮기지 않아서, 나와 그녀의 기묘하고도 어색한 공존은 계속될 수 있었다.
심심함과의 싸움에서 그녀를 관찰하는 것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녀가 방을 나가면 어딜 갔지 하며 눈에서 그녀를 찾았고, 그녀의 행동이나 물건을 관찰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일까를 상상해보며.
천장 무늬 그리고 스쿼트 그리고 공기 놀이
내내 자던 사흘이 지나자, 잠도 바닥나버렸다. 이때부터 나는 심심함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매일 점심을 먹은 후 다음 명상시간까지 세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는데, 시간이 정말 안갔다. 한참 잔 것 같은데도 시계를 보면 삼십분 지나 있었다. 밖에서는 컴퓨터나 핸드폰을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데 센터에서는 도무지 그런 경험은 할 수가 없었다. 1분 1분을 생생히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한부 환자가 와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그럼 죽는 날까지 참 멀게 느껴질 것 같았거든. 자유시간 그리고 때론 명상시간에도 생각을 했다. 주로 사람들 생각을 했다. 좋아했던 남자, 좋아하는 남자, 나를 좋아하는 남자, 좋아할까 고민되는 남자 등등. 열흘만에 핸드폰 켜면 누구한테 연락이 와 있을까 하는 매우 세속적인 생각도 꽤나 자주 했다. 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봤던 오뉴블(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생각도 많이 났다. 오뉴블 보면서 감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생각은 센터에 온지 수일만에 싹 사라졌다. 스마트폰 없이 사는 괴로움을 충분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뉴블 죄수들은 가족들이랑 통화라도 할 수 있지 하며 내 스스로 만든 심심함과의 전쟁을 조소했다. 나가서 만들 잡지 아이디어, 창업 아이디어 따위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아무 데도 적지 못한 탓에 좋은 생각 중에 많은 생각이 날아가 버렸다.
생각도 하다 보면 지겨워지는 순간이 왔다. 대체 뭐하지 하다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곰돌이 얼굴을 찾기 시작했다.
센터의 천장은 이런 평범한 사무실 천장 같았는데, 나는 이 천장 무늬를 보며 'ㅅ' 이렇게 생긴 곰돌이 얼굴을 열심히 찾아댔다.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 수 있겠지.
룸메이트가 없을 땐 아는 요가 동작이나 스쿼트, 플랭크, 윗몸 일으키기를 하기도 했지만 오래 하진 못했다. 정말 심심했을 땐 마당에서 적당한 돌멩이 다섯 개를 주워다 씻어서 침대 위에서 조용히 공기 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룸메이트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이것 또한 관두었다. 지갑 속 영수증을 꺼내 학을 접기도 했다. 너무 심심한 탓에 명상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였다.
명상과 법문, 허리 통증
명상홀에서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했는데, 하루 7~8시간 정도였으니 쉽지 않았다. 사흘째까지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괴로웠다. 자꾸만 앞으로 허리를 숙이곤했다. 센터에서는 요구하면 앉은뱅이 의자나 그냥 의자를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 의자를 가져와 앉기 시작했고, 나또한 의자를 달라고 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사흘째까진 명상 자체에 집중하기 보단 허리가 너무 아픈데 의자를 달라 할까 말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나흘째가 되자 허리 통증이 싹 사라졌고, 나는 어렵지 않게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엔 무릎과 발목이 저리거나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나중에 집에 가는 길에 터미널까지 동행한, 이미 센터가 두번째라는 아주머니들은,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명상 타입인가 보라는 말을 해주셨다.
몸도 금방 괜찮아졌고, 명상은 시키는대로 했지만, 끝날 때까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갔다와서 확실히 마음이 편해지고 고뇌가 사라진 걸 보면 명상이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명상홀에선 매일 저녁 한 시간씩 고엥까 선생(위빠사나 명상 전승자로, 2013년 작고)의 법문을 들었다. 물론 한국어로 번역된 버전으로. 종교적인 얘기는 거의 없고 그냥 붓다가 살던 시대의 옛날 이야기였는데, 고엥까 선생의 말솜씨가 좋다보니 재밌었고, 인상 깊은 이야기도 많았다. 소리만 들리다 보니 조느라 듣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산책
너무도 심심했던 나머지 나도 나흘째부턴 점심을 먹은 후 억새밭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산책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사람들은 억새밭에 난 길을 천천히 돌고 또 돌았다. 모두 혼자씩이었고, 서로의 눈을 피했기 때문에 모양새가 웃겼다. 회피형 인격 장애(맞나?) 환자들이 모인 평화로운 정신 병원 같았다. 공격성이라곤 1도 없고 수동적인, 타인과 눈 마주치는 걸 꺼려 하는 사회성 없는 사람들이 모인 정신 병원. 멍하니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억새밭을 뱅뱅 도는 사람들은 게임 속 NPC들 같기도 했다. 이 로봇들 중 사람이 누구게? 이 NPC 중에 캐릭터는 누구게? 뭐 이런 잡생각을 혼잣말로 중얼중얼 하면서, 혼자 키득거렸다. 센터에 오래 있을수록 혼잣말을 하게 됐다. 별로 내용 없는 얘기. 금이 보고 싶다. 금이는 예쁜 개. 뭐 이런 거.
까치인지 제비인지가 자주 날아다녔는데, 새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억새를 만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난 풀을 관찰하기도 했다. 명상 시간이 끝나기 20분 전쯤 미리 명상홀을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억새밭을 걸으며 찬 공기 냄새를 맡는 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비 오는 날 영국 세븐 시스터즈에 가서, 아무도 없는 넓은 절벽을 산책하며 풍경에 감탄하던 황홀한 순간이 떠올랐다.
센터에 있는 동안 비가 오기도 하고 눈이 오기도 했는데, 눈 오는 날은 산책이 더 즐거웠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뽀득뽀득 밟으면 기분이 좋았다. 눈을 맞고, 손으로 만지는 것도 느낌이 좋았다. 나는 갈수록 산책을 즐기게 됐다. 햇빛이 쨍한 한낮엔 곳곳에 놓인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햇빛을 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비타민 D가 충전되어서 그런가. 겨울 햇빛이 그렇게 쨍한지 처음 알았다. 하늘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해질녘 무렵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맡으며 걷고 있으면 밥 짓는 것 같은 약간의 탄내가 났다. 어린 시절 저녁무렵까지 친구들과 밖에서 뛰놀다 집에 갈 때 느꼈던 찬 공기와 냄새였다. 상도동 집에 돌아가던 저녁 시간이 생각났다. 아주 좋아하는 공기의 온도 그리고 냄새였다.
명상 센터
이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오지 않을 것만 같던 11일째가 왔고, 나는 센터를 청소하고 짐을 정리한 후 서울에 돌아왔다.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대체 뭐가 변한지 전혀 모르겠지만, 마음이 한결 여유롭고 편안하다. 센터에서 돌아온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여전하다. 그 사이 내 평정을 해칠만한 사건 한 두 개가 있었지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 많이 어렵지 않았다. 내가 뭔가 많이 변한 건 절대 아니지만, 다녀오길 잘 한 것 같다.
사람은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진짜 깨닫게 된 것 같다. 일상에선 느낄 수 없던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하늘을 보고, 심심하고, 또 심심한 그런 것. 내가 심심함을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사람인지,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인지 생각도 충분히 해볼 수 있었고.
마음이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가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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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모든 공채가 끝난 11월 말쯤 올해도 이렇게 소득 없이 한 해를 마치는구나
하는 허무한 마음이 가득 했다.
그 때 자주 구경하는 커뮤니티에서 '담마코리아 가보신 분?'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아주 힘들지만 보람있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기에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명상센터였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명상이라곤 초등학교 명상시간에 하던 게 다였다.
눈을 감고 아주 뻔한 도덕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 이야기를 명상록에 적으라는...아주 의례적이고도 지겨운 시간이었는데
명상센터 홈페이지를 보다보니 왠지 끌리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 읽은 명상센터의 특징과 규칙은 이러했다.
- 시간표는 밥-명상-밥-명상-휴식-명상인데 시간표를 빡세게 지켜야함.
- 10일간 핸드폰 사용 금지, 책읽기, 음악 듣기, 글쓰기 등 일체의 행위 금지. (속세와의 단절)
- 10일동안 말을 하면 안됨. (묵언수행) 눈짓 등 다른 종류의 소통도 일체 금지.
- 밥은 오전 6시 30분과 11시 두 차례 먹으며 11시 이후는 금식.
- 채식.
- 종교적인 색채가 없는, 그저 오래 전해 내려온 수행법임.
- 일단 무료이며, 코스를 마친 후 다음 코스 참가자를 위해 기부하고 싶은 만큼 기부를 하면 됨.
간결했지만 빡셌다.
명상이 뭔지도 개뿔 몰랐지만 읽다보니 호기심이 생겨났다.
스마트폰 중독자이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늘 핸드폰 없는 세상에 살아보고 싶다던 소망을 이야기했었기에
핸드폰 없는 10일이 궁금하기도 했고
10일동안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괜히 안해도 될 말을 해서 망쳐버린 면접과 연애, 술이든 뭐든 절제를 몰라 벌어졌던 수많은 일을 후회하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명상센터 고유의 목적이 무엇이든, 나는 명상센터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개설된 코스 중에 12.24-1.4라는! 가난한 백수 솔로에겐 매우 맘에 드는 날짜 구성이 있어 신청했다.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이미 신청이 마감되어 대기자 명단이었기에,
"되면 그 때가서 생각해보고 말면 말아야지~" 하는 맘으로 가볍게 신청하고...
친구들과 저런 곳이 있다더라 하며 농담으로 "나 명상센터 갈거다~~"하고 입을 털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연말연시를 앞두고 다들 뭔가 일이 생기신건지^^^*
진짜 대기자가 다 빠져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며, 참가하겠냐는 이메일이 왔다.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가야 돼 말아야돼?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아 여기 사이비 아냐? 사이비면 어쩌지...날 10일동안 속세랑 단절시켜서 가둬놓고 세뇌시키면 어쩌지...
나는 사이비한테 넘어갈 인간일까?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만약 사이비인데 넘어가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ㅋㅋㅋ 그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갈 것처럼 미리 말을 던져놓고 다닌 것도 있었고
연말이 다가왔는데도 약속이 거의 없고 크리스마스 계획^^^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ㅋㅋㅋㅋㅋ
그래! 이참에 속세를 떠나보자! 하는 결심에 도달했다. ㅋㅋㅋㅋㅋ
집구석에 앉아 가족들이 틀어놓은 연예대상을 억지로 시청하며
날 떨어뜨린 면접관이나 날 갈구던 인턴시절 선배의 이름을 연예인 수상소감에서 듣는 그 상황이 (작년의 경험임^^+)
또 찾아오는 게 두려웠다
약속이 있어봤자 바가지 씌운 비싼 술값에 술이나 흥청망청 마시며 보낼 게 뻔하기도 했고.
나는 뜻깊은 연말연시를 보내보자!
후기 보니 채식에 두끼만 먹어서 4kg씩 빠졌다는데 나도 살이나 빼오자!
폰없이 말없이 살아보자! 나도 절제할 수 있어!
이런
조금은 충동적인 맘으로
진안 가는 버스를 타고
명상센터로
떠나게 되었다...
두둥-!!!
- 2편에서 이어짐 -
동네 산책 (0) | 2017.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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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명상센터 10일 코스 후기 2 - 명상센터의 날들 (6) | 2017.01.19 |
강박 혹은 예민 (2) | 2016.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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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인상깊게 본 영상들 (1) | 2016.10.04 |
어릴 때 나는 약간의 강박 혹은 예민함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입 댄 컵으론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새 컵을 꺼내 마시거나, 컵 손잡이 부분으로 음료를 마셨다
더러운 식당에서 밥 먹는 게 정말 싫어서
오시오 떡볶이(이젠 리모델링해서 많이 괜찮아졌지만 예전엔 진짜 더러웠다)는 무조건 포장해 먹었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징거미 매운탕 집엔 가지 못했다
징거미 매운탕 집엔 파리가 수십마리 붙어있는 파리 끈끈이가 시야에 놓여져 있었는데 그걸 보면 비위가 상했다
그래서 나는 홀로 차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곤 했다
새학기 책이나 공책엔 이름을 잘 보이게 써넣어야 했다
책보로 책을 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흰 선이 있으면 흰 선을 따라 밟으며 걸었고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네 숫자 간에 관계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보이지 않는 나만의 룰이 많았다
남이 보기에 딱히 깔끔 떨거나 예민해 보이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은 나의 예민함을 알았다
저런 일련의 룰이 불편해서 고친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저러는 게 너무 찌질하게 느껴졌다 쿨하지 못하게
아마 뭐든 무던한 엄마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1의 예민함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설거지한 그릇에 밥풀이나 고추가루가 묻어 있는 건 흔한 일이다
다같이 찌개를 열심히 떠먹고, 그걸 다시 끓여 놓지도 않고 다음 끼니에 그대로 먹는다
(나는 가끔 신경이 쓰인다. 내가 살림하면 꼭 덜어먹을 것이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아무거나 잘 먹고, 잔기스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엄마인데
때문에 내 머릿 속에 예민함 = 쿨하지 못함, 찌질함 이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다
내 강박과 예민한 부분을 고치려 노력했다
고치려고 여러 충격요법을 썼다
사람들이 입 댄 것에 눈 딱 감고 입을 대기 시작했다
숫자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많이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못 고친 몇 가지 것들이 있긴 했다
이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인더풀'이었다
한참 일본 소설을 많이 읽던 고등학교 때 읽었다
조금 웃긴 정신과 의사가 주인공인데, 다양한 증상을 가진 환자를 고치는 내용이다
그 책에 나같은 강박 환자가 나온다
버스에서 내릴 땐 내가 내리기 전 정류장을 지나자 마자 제일 먼저 벨을 눌러 놔야 직성이 풀리고
가스를 켜놓고 왔을까봐 나온지 한참 지났는데도 집으로 되돌아가는.
나도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 책에서 의사가 말한 치료법을 나는 따라했다
자신이 내릴 정류장이 되어도 끝까지 벨을 누르지 않고 참아보는 것이다
집에 가스를 켜놓고 온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도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별 일 안 생겼고
이후로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게 되었다
책과 공책에 강박적으로 이름을 적는 버릇도 고치고 싶어서
대학교에 와서부턴 책과 공책에 내 이름을 적지 않았다
재수할 땐 책 표지에만 살짝 적어놓다가
대학에 와선 아예 안 적었다
대학에 와선 주로 같은 공책만 썼는데(이것조차 강박일까봐, 다른 공책도 간간히 썼다)
색깔만 다른 공책들이라
표지에 과목명과 이름을 써놓지 않으니 스스로도 헷갈렸다
하지만 끝까지 과목명도 이름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나중에 보면 왠지 뿌듯했다
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언제나 쿨한 미국 고딩 남자애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쓰고보니 음 진짜 환자 같네
아무튼 저런 노력을 거쳐 나는 지금 예민함이 1도 보이지 않는, 엄마와 매우 비슷한 인간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아주 사소한 영역에서 나의 예민함을 발견할 때가 있긴 한데
그럴 때면 나는 나답지 않은 낯섦을 느낀다
나와 친한 내 주위 사람이라면 이 글 속의 예민한 내가 매우 낯설 것이다
위빠사나 명상센터 10일 코스 후기 2 - 명상센터의 날들 (6) | 2017.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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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떠올리면 생각나는 색깔이 있다
왜 그런지, 무슨 의미인지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단어에서 성격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추측해본다 (그 때문에 이름이 중요한 것!)
친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해서
한참동안 사람과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색깔이 뚜렷이 느껴지는 주위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볼까나
고등학교 선생님인 친한 친구 ㅁㅅ(여)는 왠지 베이지에 가까운 갈색
차분하고, 가을 같고, 성숙한 느낌이다
할머니가 벽난로 앞에 앉아 짜준 스웨터 같다
옆 이미지는 린넨이라 써있었는데 질감마저도 ㅁㅅ 같다
드라마 PD를 준비하고 팟캐스트를 하는 ㅅㄱ언니는 톤 다운된 초록색 deep green
생각과 고뇌가 많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 이지적인 느낌도 있고
언니 생각하면 숲이 생각나는데, 밝고 울창한 여름 숲 말고 북유럽의 판타지적인 숲이 생각남
영화 '더 랍스터'에 나오는 솔로부대가 모여사는 숲 같다
그래서 톤 다운된 초록색
기계과 졸업생 ㅎㅈ이(남)는 gray blue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 같은데 막상 내려가보면 아무것도 없이 깔끔할 것 같다
이 색을 마주할 때 난 심연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조심해야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데
막상 삼켜져도 별 일 없을 것 같음
안전한 심연
작업복과 수트의 중간 혹은 둘 다. 적고 보니 아빠 색깔과 비슷하네
나는 반말하고 걔는 존댓말하는 선배이자 동생 ㅅㅈ(남)는 밝은 겨자색 mustard
얜 좀 특이한 게 하나도 친하지 않았을 때부터 얘 색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겨자색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앤데 막상 본인은 크게 웃지 않는다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하는데 애쓰는 느낌도 없고.
한 때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는데 내 머릿속 KBS 개그맨 느낌에 비추어보면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다. 재밌지만 속깊은 동생.
고1 때 좋아하던 I 오빠 색과 비슷하네 그 오빠가 조금 더 탁한 느낌이지만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와 같은 그룹의 일원 ㅈㅎ(여)는 분홍색 light pink 같은 사람이다
사실 요샌 자주 만나지도 않고 얘 생각을 하는 일도 드물어서 딱 생각이 안났는데,
여러 사람을 생각하다보니 주변인이 대부분 무채색이나 톤 다운된 색이라는 생각이 들어
파스텔톤, 분홍색 사람은 하나도 없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ㅈㅎ가 생각났다
ㅈㅎ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도 잘내고 짜증도 잘 내고 제멋대로인, '소녀'였다
난 ㅈㅎ가 지금도 소녀 같다고 생각한다
김혜자 같은 사람을 일컬을 때 말하는 '소녀' 말고, 짜증 잘내는 사춘기 소녀
요시토모 나라 그림 중에 눈이 양 옆으로 쭉 올라간 화난 표정의 소녀가 있는데 얠 떠올리면 그 이미지가 생각난다
내 주위에 드문 파스텔톤 사람. 나이 들고부턴 더더욱 없다.
일단 생각 나는 건 이렇게 다섯 명.
쓰다보니 느낀 건,
깊고 톤다운된 색의 친구들과는 단둘이 만나는 게 더 좋고,
함께 술을 마시면 내밀한 마음이나 인간 분석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밝은 색, 가벼운 색의 친구들과는 여럿이 만나는 게 좋고,
함께 술을 마시면 섹드립이나 가벼운 장난, 농담을 나누는 게 좋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 없게, 양쪽 다 소중하다.
둘의 밸런스가 맞아야 내 감정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다.
색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색으로 느껴질지 궁금하다.
이 얘기를 나눈 유일한 친구인 ㅇㅇ이는 내가 진한 분홍주황초록의 츄파츕스 같은 인간이라 했었는데.
알면서도 모르겠다.
파스텔톤이나 톤다운된 색보단 원색에 가까운 인간일 거란 생각은 든다.
어떤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색깔을 느끼고 있으면 신기할 것 같다.
이 얘기를 나눈 유일한 친구는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궁금하다. 다른 데서도 이야기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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