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야운 고냥이들


뒷모습


남의 집을 내 집처럼


금이가 다가가자 도망가는 냥이


근데 코너 돌아서 또 만남


공원에서 만난 강아지


도착해서 핸드폰을 제출하자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내내 잤다. 종이 치면 나가서 밥을 먹고, 명상을 하고, 나머지는 자고. 한 3일째까진 그렇게 지냈다. 말을 안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실 새로운 집단에 가자마자 말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명상 센터에는 산책할 수 있는 억새밭이 있었지만, 3일째까진 산책도 하지 않았다. 추워서 밖에 나가지 않는 집에서의 습관이 센터에서라고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내 잤지만 밤에도 어렵지 않게 잠들 수 있었다. 밤 아홉시쯤 명상이 끝나고 나면 씻고 아홉시 반쯤 잠에 들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덕에 눕자마자 잠을 잘 수 있었다. 거의 매일 꿈을 꾸었다. 꿈은 보통 자고 일어나면 금방 잊혀지는데, 센터에선 자고 일어나서 할 일이 생각 밖에 없었기 때문에 꾼 꿈을 계속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나는 꿈은 작년에 죽은 친구 Y가 나온 꿈이었다. Y가 우울할 때, 그러니까 죽기 전에 이 곳에 왔더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꿈에서 나는 C언니, H와 함께 이자까야에 갔다. 그 곳은 저승과 이승의 사람들이 잠시 만나 함께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술집이었다. 우리는 Y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눈이 펑펑 오고 눈보라가 쳤고, 우리는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Y는 살아있을 때처럼 가장 먼저 이자까야에 도착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미식가인 C언니는 그곳에서도 무슨 맛있는 걸 먹을까 메뉴판을 보고 있었고, 나는 취업이라도 한 모양인지 내가 사겠다며 호기롭게 비싼 걸 먹으라 말했다. 늦은 게 미안했던 나는 Y에게 말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가 막혀서 늦었어. 저승은 차 안 막히지?" 그러자 Y는 "아니 여기도 차 막혀" 라고 대답했다. 당황한 나는 반농담이랍시고 "좋은 거 하나 없네. 그러길래 왜 죽었냐"라고 대답했는데, Y가 아주 슬픈, 후회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시금치 카레


센터의 밥 하루 두 끼. 모두 채식. 여섯시 반에 먹는 아침은 그냥 평범했다. 오래 전에 구워져 별로 따뜻하지 않은 토스트와 매일 달라지는 잼(사과잼 혹은 딸기잼), 땅콩 버터. 그리고 죽도 나왔는데, 죽은 본죽 죽처럼 맛있는 그런 죽은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죽이었다. 쌀죽, 깨죽, 호박죽 등이 돌아가면서 나왔는데 깨죽이 제일 나았다. 콩자반이나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과일도 있었다. 사과나 감 1/4개 정도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매일 토스트 두 개와 죽 한 그릇을 먹었다. 이 기회에 살을 빼려고 한 5일째까지는 땅콩 버터를 먹지 않았는데, 6일째 정도부턴 참지 못하고 땅콩 버터를 먹어버렸다.

맛있는 건 점심이었다. 매일 11시에 점심을 먹었다. 콩인지 버섯인지로 만든 채식 고기도 나왔고, 신정 다음날엔 무와 두부로 만든 떡국도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시금치 카레였다. 나는 시금치 카레란 걸 처음 먹어봤는데, 간이 밍밍한데도 왠지 맛있었다. 어릴 때 급식 메뉴에서 제일 싫었던 것 중에 하나가 시금치 나물이었는데, 어른이 돼서 먹은 시금치는 거의 다 맛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주 긴 시간 맛 없다고 오해 받아온 시금치가 안타깝달까. 시금치 피자, 시금치 카레 다 맛있는데. 시금치는 나물로 쪼그라들어 무쳐져 있을 때 가장 매력 없다.

11시에 점심을 먹고나면 잠을 자는 저녁 9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데, 하루종일 거의 움직이지 않는 탓인지 하나도 배고프지 않았다.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았다. 심지어 아침이나 점심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저 심심해서였지, 배가 고프다거나 무엇을 먹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신수련생은 저녁 5시에 차를 마시며 튀밥과 과일 한쪽을 먹을 수 있는데, 나는 그조차 먹기 귀찮아 먹으러 가지 않았다.


룸메이트


대부분의 사람이 1인 1실이었지만 나는 2인 1실이었다. 나와 같이 방을 쓰는 사람은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맞았다) 처음엔 나처럼 자유 시간에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지만, 곧 혼자 방에서 나가선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 그녀가 내내 산책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센터의 규칙 상 같은 방을 쓰면서도 그녀와 나는 말 한 마디, 아니 눈짓 한 번 나눌 수 없었다. 처음엔 낮에 코를 골며 자는 그녀가 조금 싫었지만, 볼수록 정이 들었다. 난 시계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녀는 시계가 있어서, 그녀가 방에 없을 땐 그녀의 시계를 훔쳐보기도 했다. 시계를 한 번 보려면 먼 복도까지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3일째에 어떤 외국인이 견디지 못하고 센터를 떠났는데, 덕분에 우리에게 1인실로 옮기겠냐는 제안이 왔다. 순간적으로 나는 방을 옮기지 않겠다고 답했다.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나중에 생각해보았는데, 혼자 자는 게 무서울 것 같기도 했고, 자유 시간 내내 혼자 방에 있으면 너무 심심할 것 같기도 해서였다. 다행히 그녀도 짐이 많다는 이유로 방을 옮기지 않아서, 나와 그녀의 기묘하고도 어색한 공존은 계속될 수 있었다.

심심함과의 싸움에서 그녀를 관찰하는 것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녀가 방을 나가면 어딜 갔지 하며 눈에서 그녀를 찾았고, 그녀의 행동이나 물건을 관찰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일까를 상상해보며.


천장 무늬 그리고 스쿼트 그리고 공기 놀이


내내 자던 사흘이 지나자, 잠도 바닥나버렸다. 이때부터 나는 심심함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매일 점심을 먹은 후 다음 명상시간까지 세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는데, 시간이 정말 안갔다. 한참 잔 것 같은데도 시계를 보면 삼십분 지나 있었다. 밖에서는 컴퓨터나 핸드폰을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데 센터에서는 도무지 그런 경험은 할 수가 없었다. 1분 1분을 생생히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한부 환자가 와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그럼 죽는 날까지 참 멀게 느껴질 것 같았거든. 자유시간 그리고 때론 명상시간에도 생각을 했다. 주로 사람들 생각을 했다. 좋아했던 남자, 좋아하는 남자, 나를 좋아하는 남자, 좋아할까 고민되는 남자  등등. 열흘만에 핸드폰 켜면 누구한테 연락이 와 있을까 하는 매우 세속적인 생각도 꽤나 자주 했다. 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봤던 오뉴블(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생각도 많이 났다. 오뉴블 보면서 감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생각은 센터에 온지 수일만에 싹 사라졌다. 스마트폰 없이 사는 괴로움을 충분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뉴블 죄수들은 가족들이랑 통화라도 할 수 있지 하며 내 스스로 만든 심심함과의 전쟁을 조소했다. 나가서 만들 잡지 아이디어, 창업 아이디어 따위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아무 데도 적지 못한 탓에 좋은 생각 중에 많은 생각이 날아가 버렸다.

생각도 하다 보면 지겨워지는 순간이 왔다. 대체 뭐하지 하다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곰돌이 얼굴을 찾기 시작했다.



센터의 천장은 이런 평범한 사무실 천장 같았는데, 나는 이 천장 무늬를 보며 'ㅅ' 이렇게 생긴 곰돌이 얼굴을 열심히 찾아댔다.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 수 있겠지.

룸메이트가 없을 땐 아는 요가 동작이나 스쿼트, 플랭크, 윗몸 일으키기를 하기도 했지만 오래 하진 못했다. 정말 심심했을 땐 마당에서 적당한 돌멩이 다섯 개를 주워다 씻어서 침대 위에서 조용히 공기 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룸메이트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이것 또한 관두었다. 지갑 속 영수증을 꺼내 학을 접기도 했다. 너무 심심한 탓에 명상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였다.


명상과 법문, 허리 통증


명상홀에서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했는데, 하루 7~8시간 정도였으니 쉽지 않았다. 사흘째까지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괴로웠다. 자꾸만 앞으로 허리를 숙이곤했다. 센터에서는 요구하면 앉은뱅이 의자나 그냥 의자를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 의자를 가져와 앉기 시작했고, 나또한 의자를 달라고 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사흘째까진 명상 자체에 집중하기 보단 허리가 너무 아픈데 의자를 달라 할까 말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나흘째가 되자 허리 통증이 싹 사라졌고, 나는 어렵지 않게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엔 무릎과 발목이 저리거나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나중에 집에 가는 길에 터미널까지 동행한, 이미 센터가 두번째라는 아주머니들은,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명상 타입인가 보라는 말을 해주셨다. 

몸도 금방 괜찮아졌고, 명상은 시키는대로 했지만, 끝날 때까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갔다와서 확실히 마음이 편해지고 고뇌가 사라진 걸 보면 명상이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명상홀에선 매일 저녁 한 시간씩 고엥까 선생(위빠사나 명상 전승자로, 2013년 작고)의 법문을 들었다. 물론 한국어로 번역된 버전으로. 종교적인 얘기는 거의 없고 그냥 붓다가 살던 시대의 옛날 이야기였는데, 고엥까 선생의 말솜씨가 좋다보니 재밌었고, 인상 깊은 이야기도 많았다. 소리만 들리다 보니 조느라 듣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산책


너무도 심심했던 나머지 나도 나흘째부턴 점심을 먹은 후 억새밭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산책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사람들은 억새밭에 난 길을 천천히 돌고 또 돌았다. 모두 혼자씩이었고, 서로의 눈을 피했기 때문에 모양새가 웃겼다. 회피형 인격 장애(맞나?) 환자들이 모인 평화로운 정신 병원 같았다. 공격성이라곤 1도 없고 수동적인, 타인과 눈 마주치는 걸 꺼려 하는 사회성 없는 사람들이 모인 정신 병원. 멍하니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억새밭을 뱅뱅 도는 사람들은 게임 속 NPC들 같기도 했다. 이 로봇들 중 사람이 누구게? 이 NPC 중에 캐릭터는 누구게? 뭐 이런 잡생각을 혼잣말로 중얼중얼 하면서, 혼자 키득거렸다. 센터에 오래 있을수록 혼잣말을 하게 됐다. 별로 내용 없는 얘기. 금이 보고 싶다. 금이는 예쁜 개. 뭐 이런 거.

까치인지 제비인지가 자주 날아다녔는데, 새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억새를 만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난 풀을 관찰하기도 했다. 명상 시간이 끝나기 20분 전쯤 미리 명상홀을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억새밭을 걸으며 찬 공기 냄새를 맡는 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비 오는 날 영국 세븐 시스터즈에 가서, 아무도 없는 넓은 절벽을 산책하며 풍경에 감탄하던 황홀한 순간이 떠올랐다.

센터에 있는 동안 비가 오기도 하고 눈이 오기도 했는데, 눈 오는 날은 산책이 더 즐거웠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뽀득뽀득 밟으면 기분이 좋았다. 눈을 맞고, 손으로 만지는 것도 느낌이 좋았다. 나는 갈수록 산책을 즐기게 됐다. 햇빛이 쨍한 한낮엔 곳곳에 놓인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햇빛을 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비타민 D가 충전되어서 그런가. 겨울 햇빛이 그렇게 쨍한지 처음 알았다. 하늘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해질녘 무렵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맡으며 걷고 있으면 밥 짓는 것 같은 약간의 탄내가 났다. 어린 시절 저녁무렵까지 친구들과 밖에서 뛰놀다 집에 갈 때 느꼈던 찬 공기와 냄새였다. 상도동 집에 돌아가던 저녁 시간이 생각났다. 아주 좋아하는 공기의 온도 그리고 냄새였다.


명상 센터


이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오지 않을 것만 같던 11일째가 왔고, 나는 센터를 청소하고 짐을 정리한 후 서울에 돌아왔다.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대체 뭐가 변한지 전혀 모르겠지만, 마음이 한결 여유롭고 편안하다. 센터에서 돌아온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여전하다. 그 사이 내 평정을 해칠만한 사건 한 두 개가 있었지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 많이 어렵지 않았다. 내가 뭔가 많이 변한 건 절대 아니지만, 다녀오길 잘 한 것 같다.

사람은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진짜 깨닫게 된 것 같다. 일상에선 느낄 수 없던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하늘을 보고, 심심하고, 또 심심한 그런 것. 내가 심심함을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사람인지,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인지 생각도 충분히 해볼 수 있었고.

마음이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가면 좋은 곳이다.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나무위키 여행 경로  (0) 2017.03.05
동네 산책  (0) 2017.02.21
위빠사나 명상센터 10일 코스 후기 1 - 명상센터에 가게 되기까지  (2) 2017.01.05
강박 혹은 예민  (2) 2016.12.20
사람 색깔  (3) 2016.10.19


작년 연말,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모든 공채가 끝난 11월 말쯤 올해도 이렇게 소득 없이 한 해를 마치는구나 

하는 허무한 마음이 가득 했다.

그 때 자주 구경하는 커뮤니티에서 '담마코리아 가보신 분?'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아주 힘들지만 보람있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기에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명상센터였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명상이라곤 초등학교 명상시간에 하던 게 다였다. 

눈을 감고 아주 뻔한 도덕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 이야기를 명상록에 적으라는...아주 의례적이고도 지겨운 시간이었는데

명상센터 홈페이지를 보다보니 왠지 끌리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 읽은 명상센터의 특징과 규칙은 이러했다.


- 시간표는 밥-명상-밥-명상-휴식-명상인데 시간표를 빡세게 지켜야함.

- 10일간 핸드폰 사용 금지, 책읽기, 음악 듣기, 글쓰기 등 일체의 행위 금지. (속세와의 단절)

- 10일동안 말을 하면 안됨. (묵언수행) 눈짓 등 다른 종류의 소통도 일체 금지. 

- 밥은 오전 6시 30분과 11시 두 차례 먹으며 11시 이후는 금식.

- 채식. 

- 종교적인 색채가 없는, 그저 오래 전해 내려온 수행법임.

- 일단 무료이며, 코스를 마친 후 다음 코스 참가자를 위해 기부하고 싶은 만큼 기부를 하면 됨.


간결했지만 빡셌다. 

명상이 뭔지도 개뿔 몰랐지만 읽다보니 호기심이 생겨났다.


스마트폰 중독자이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늘 핸드폰 없는 세상에 살아보고 싶다던 소망을 이야기했었기에

핸드폰 없는 10일이 궁금하기도 했고

10일동안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괜히 안해도 될 말을 해서 망쳐버린 면접과 연애, 술이든 뭐든 절제를 몰라 벌어졌던 수많은 일을 후회하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명상센터 고유의 목적이 무엇이든, 나는 명상센터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개설된 코스 중에 12.24-1.4라는! 가난한 백수 솔로에겐 매우 맘에 드는 날짜 구성이 있어 신청했다.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이미 신청이 마감되어 대기자 명단이었기에, 

"되면 그 때가서 생각해보고 말면 말아야지~" 하는 맘으로 가볍게 신청하고...

친구들과 저런 곳이 있다더라 하며 농담으로 "나 명상센터 갈거다~~"하고 입을 털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연말연시를 앞두고 다들 뭔가 일이 생기신건지^^^*

진짜 대기자가 다 빠져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며, 참가하겠냐는 이메일이 왔다.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가야 돼 말아야돼?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아 여기 사이비 아냐? 사이비면 어쩌지...날 10일동안 속세랑 단절시켜서 가둬놓고 세뇌시키면 어쩌지...

나는 사이비한테 넘어갈 인간일까?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만약 사이비인데 넘어가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ㅋㅋㅋ 그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갈 것처럼 미리 말을 던져놓고 다닌 것도 있었고

연말이 다가왔는데도 약속이 거의 없고 크리스마스 계획^^^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ㅋㅋㅋㅋㅋ

그래! 이참에 속세를 떠나보자! 하는 결심에 도달했다. ㅋㅋㅋㅋㅋ

집구석에 앉아 가족들이 틀어놓은 연예대상을 억지로 시청하며

날 떨어뜨린 면접관이나 날 갈구던 인턴시절 선배의 이름을 연예인 수상소감에서 듣는 그 상황이 (작년의 경험임^^+) 

또 찾아오는 게 두려웠다

약속이 있어봤자 바가지 씌운 비싼 술값에 술이나 흥청망청 마시며 보낼 게 뻔하기도 했고.


나는 뜻깊은 연말연시를 보내보자!

후기 보니 채식에 두끼만 먹어서 4kg씩 빠졌다는데 나도 살이나 빼오자!

폰없이 말없이 살아보자! 나도 절제할 수 있어!


이런 

조금은 충동적인 맘으로 

진안 가는 버스를 타고

명상센터로

떠나게 되었다...


두둥-!!!


- 2편에서 이어짐 -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네 산책  (0) 2017.02.21
위빠사나 명상센터 10일 코스 후기 2 - 명상센터의 날들  (6) 2017.01.19
강박 혹은 예민  (2) 2016.12.20
사람 색깔  (3) 2016.10.19
요며칠 인상깊게 본 영상들  (1) 2016.10.04

어릴 때 나는 약간의 강박 혹은 예민함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입 댄 컵으론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새 컵을 꺼내 마시거나, 컵 손잡이 부분으로 음료를 마셨다

더러운 식당에서 밥 먹는 게 정말 싫어서 

오시오 떡볶이(이젠 리모델링해서 많이 괜찮아졌지만 예전엔 진짜 더러웠다)는 무조건 포장해 먹었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징거미 매운탕 집엔 가지 못했다

징거미 매운탕 집엔 파리가 수십마리 붙어있는 파리 끈끈이가 시야에 놓여져 있었는데 그걸 보면 비위가 상했다

그래서 나는 홀로 차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곤 했다


새학기 책이나 공책엔 이름을 잘 보이게 써넣어야 했다 

책보로 책을 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흰 선이 있으면 흰 선을 따라 밟으며 걸었고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네 숫자 간에 관계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보이지 않는 나만의 룰이 많았다

남이 보기에 딱히 깔끔 떨거나 예민해 보이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은 나의 예민함을 알았다


저런 일련의 룰이 불편해서 고친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저러는 게 너무 찌질하게 느껴졌다 쿨하지 못하게

아마 뭐든 무던한 엄마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1의 예민함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설거지한 그릇에 밥풀이나 고추가루가 묻어 있는 건 흔한 일이다

다같이 찌개를 열심히 떠먹고, 그걸 다시 끓여 놓지도 않고 다음 끼니에 그대로 먹는다

(나는 가끔 신경이 쓰인다. 내가 살림하면 꼭 덜어먹을 것이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아무거나 잘 먹고, 잔기스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엄마인데

때문에 내 머릿 속에 예민함 = 쿨하지 못함, 찌질함 이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다 


내 강박과 예민한 부분을 고치려 노력했다

고치려고 여러 충격요법을 썼다

사람들이 입 댄 것에 눈 딱 감고 입을 대기 시작했다

숫자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많이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못 고친 몇 가지 것들이 있긴 했다


이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인더풀'이었다

한참 일본 소설을 많이 읽던 고등학교 때 읽었다

조금 웃긴 정신과 의사가 주인공인데, 다양한 증상을 가진 환자를 고치는 내용이다

그 책에 나같은 강박 환자가 나온다

버스에서 내릴 땐 내가 내리기 전 정류장을 지나자 마자 제일 먼저 벨을 눌러 놔야 직성이 풀리고

가스를 켜놓고 왔을까봐 나온지 한참 지났는데도 집으로 되돌아가는.

나도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 책에서 의사가 말한 치료법을 나는 따라했다

자신이 내릴 정류장이 되어도 끝까지 벨을 누르지 않고 참아보는 것이다

집에 가스를 켜놓고 온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도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별 일 안 생겼고

이후로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게 되었다


책과 공책에 강박적으로 이름을 적는 버릇도 고치고 싶어서

대학교에 와서부턴 책과 공책에 내 이름을 적지 않았다

재수할 땐 책 표지에만 살짝 적어놓다가

대학에 와선 아예 안 적었다


대학에 와선 주로 같은 공책만 썼는데(이것조차 강박일까봐, 다른 공책도 간간히 썼다)

색깔만 다른 공책들이라

표지에 과목명과 이름을 써놓지 않으니 스스로도 헷갈렸다

하지만 끝까지 과목명도 이름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나중에 보면 왠지 뿌듯했다

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언제나 쿨한 미국 고딩 남자애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쓰고보니 음 진짜 환자 같네


아무튼 저런 노력을 거쳐 나는 지금 예민함이 1도 보이지 않는, 엄마와 매우 비슷한 인간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아주 사소한 영역에서 나의 예민함을 발견할 때가 있긴 한데

그럴 때면 나는 나답지 않은 낯섦을 느낀다

나와 친한 내 주위 사람이라면 이 글 속의 예민한 내가 매우 낯설 것이다


사람마다 떠올리면 생각나는 색깔이 있다

왜 그런지, 무슨 의미인지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단어에서 성격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추측해본다 (그 때문에 이름이 중요한 것!)

친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해서

한참동안 사람과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색깔이 뚜렷이 느껴지는 주위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볼까나


        


고등학교 선생님인 친한 친구 ㅁㅅ(여)는 왠지 베이지에 가까운 갈색

차분하고, 가을 같고, 성숙한 느낌이다

할머니가 벽난로 앞에 앉아 짜준 스웨터 같다

옆 이미지는 린넨이라 써있었는데 질감마저도 ㅁㅅ 같다 




        드라마 PD를 준비하고 팟캐스트를 하는 ㅅㄱ언니는 톤 다운된 초록색 deep green

        생각과 고뇌가 많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 이지적인 느낌도 있고

        언니 생각하면 숲이 생각나는데, 밝고 울창한 여름 숲 말고 북유럽의 판타지적인 숲이 생각남

        영화 '더 랍스터'에 나오는 솔로부대가 모여사는 숲 같다

        그래서 톤 다운된 초록색



       기계과 졸업생 ㅎㅈ이(남)는 gray blue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 같은데 막상 내려가보면 아무것도 없이 깔끔할 것 같다

       이 색을 마주할 때 난 심연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조심해야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데 

       막상 삼켜져도 별 일 없을 것 같음 

       안전한 심연

       작업복과 수트의 중간 혹은 둘 다. 적고 보니 아빠 색깔과 비슷하네


       나는 반말하고 걔는 존댓말하는 선배이자 동생 ㅅㅈ(남)는 밝은 겨자색 mustard 

       얜 좀 특이한 게 하나도 친하지 않았을 때부터 얘 색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겨자색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앤데 막상 본인은 크게 웃지 않는다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하는데 애쓰는 느낌도 없고.

       한 때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는데 내 머릿속 KBS 개그맨 느낌에 비추어보면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다. 재밌지만 속깊은 동생. 

       고1 때 좋아하던 I 오빠 색과 비슷하네 그 오빠가 조금 더 탁한 느낌이지만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와 같은 그룹의 일원 ㅈㅎ(여)는 분홍색 light pink 같은 사람이다 

      사실 요샌 자주 만나지도 않고 얘 생각을 하는 일도 드물어서 딱 생각이 안났는데,

      여러 사람을 생각하다보니 주변인이 대부분 무채색이나 톤 다운된 색이라는 생각이 들어

      파스텔톤, 분홍색 사람은 하나도 없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ㅈㅎ가 생각났다

      ㅈㅎ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도 잘내고 짜증도 잘 내고 제멋대로인, '소녀'였다

      난 ㅈㅎ가 지금도 소녀 같다고 생각한다 

      김혜자 같은 사람을 일컬을 때 말하는 '소녀' 말고, 짜증 잘내는 사춘기 소녀

요시토모 나라 그림 중에 눈이 양 옆으로 쭉 올라간 화난 표정의 소녀가 있는데 얠 떠올리면 그 이미지가 생각난다

내 주위에 드문 파스텔톤 사람. 나이 들고부턴 더더욱 없다. 



일단 생각 나는 건 이렇게 다섯 명. 

쓰다보니 느낀 건,

깊고 톤다운된 색의 친구들과는 단둘이 만나는 게 더 좋고, 

함께 술을 마시면 내밀한 마음이나 인간 분석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밝은 색, 가벼운 색의 친구들과는 여럿이 만나는 게 좋고, 

함께 술을 마시면 섹드립이나 가벼운 장난, 농담을 나누는 게 좋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 없게, 양쪽 다 소중하다. 

둘의 밸런스가 맞아야 내 감정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다.


색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색으로 느껴질지 궁금하다.

이 얘기를 나눈 유일한 친구인 ㅇㅇ이는 내가 진한 분홍주황초록의 츄파츕스 같은 인간이라 했었는데.

알면서도 모르겠다.

파스텔톤이나 톤다운된 색보단 원색에 가까운 인간일 거란 생각은 든다.

어떤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색깔을 느끼고 있으면 신기할 것 같다.

이 얘기를 나눈 유일한 친구는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궁금하다. 다른 데서도 이야기해봐야겠다.


 




1. 1974 way home 2학년 초등학생 합주

초등학교 2학년 애들한테 몬도 그로소를 가르치다니. 몬도 그로소뿐이 아니다. 저 선생님 다른 영상 보면 초딩들이 nujabes, daft punk, dj okawari 곡을 연주하는 영상도 있다.
한때 엄청나게 들었던 노래들이라 더 감흥있었음. 서수교 선생님 대단하신듯. 초딩때 저런 선생님 만났으면 초딩 6년내내 꿈이었던 작곡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난 그때 대중음악을 연주나 작곡할 수 있단 사실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는데. 저 초딩들이 부럽다.



2. 짝짓기 전에 결투로 서로를 판단하는 산토끼

귀여운 산토끼에 대해 알지 않아도 될 사실을 알게된 기분...
저렇게 열심히 싸워놓고 삼초찍이라니...인간처럼 쾌락을 위한 것도 아니고 수컷 산토끼의 번식 본능은 얼마나 강려크한 거신가



3. 상어 가족

이 노래 중독성 쩖. 처음부터 비트가 심상치 않다 느꼈는데 가사도 장난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목소리랑 오늘도 살았다! 가 킬링 포인트.
이 시리즈 중에 '밤이 좋아!'도 좋다. 두비두비두밥 두비두비두밥. 가사도 공감됨. 밤에 자지 않아~



4. 롤러꼬스터

세상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썸네일에 이끌려 보다가 끝까지 스킵 안하고 다봄ㅋㅋㅋㅋㅋ 실제로 있으면 타보고 싶게 생긴 롤러꼬스터. 말하는 사람이 좀 정신 나간 것처럼 설명을 해서 더 웃기다.



5. TBWA 망치 - 여자친구, 알바, 성공적

때마침 PT 준비를 하던 내 눈에 우연히 들어온 영상. 광고 지망하는 대딩들의 PT인데 재밌어서 계속 보게 됐음. 
학부 땐 영화 찍느라 광고는 눈에도 안 들어왔는데 졸업하고 보니 방송보다 광고가 더 창의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되게 이것저것 많이 봤는데 이 사람 건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서툰 느낌이 있긴 하지만 매력있다. 내용은 야설쓰기 알바가 인생을 바꿔놨다는 내용.
나도 야설쓰기 알바 하고 싶다앙~~~ 글빨 좋은 기자 피디 지망생들이 인정한 야설 유망주인데~~~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박 혹은 예민  (2) 2016.12.20
사람 색깔  (3) 2016.10.19
교회에 대한 추억  (0) 2016.09.25
학과별 인간 특성  (3) 2016.09.18
내가 싫어하는 글 스타일1  (6) 2016.09.18

아주 어릴 때 세례를 받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아빠 엄마는 친가로부터 내가 십대 후반이 되고 나서야 겨우겨우 분리되었기 때문에 

(근거리에 따로는 살았지만 감정적으로나 뭐나 분리되지 않고 엄마가 시집살이를 했음)

아빠 엄마의 종교나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어릴 때는 일요일마다 할머니가 다니시는 교회에 온가족이 가야만 했다

나는 교회 가는 게 재미 없어서 싫었다

대머리 목사님이 졸음이 쏟아지는 설교를 하는 게 예배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기도 시간에 눈감고 다같이 기도하는 것도 싫었음

난 기도할만큼 절실한 게 없었는데 기도하라니까 하기 싫었고, 눈감기도 싫었다

그래서 보통 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엄마한테 말을 걸다가 혼나곤 했다

큰 소리로 기도하다 울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어른들이 많았는데 무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헌금 걷는 시간만 좀 재밌었는데 유일하게 내가 뭔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넣느라.

끝나고 목사님은 사람들이 봉투에 적은 기도 제목을 쭉쭉 일어줬는데 그 시간도 괜찮았다

할머니나 엄마가 내 관련 기도를 써서 내 이름이 불릴 땐 라디오에서 사연 읽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을 듣는 게 재밌었음

요새도 막 어디 행사장 같은 데 가면 나무에 소원 매달아 놓는 곳에 사람들이 적어놓은 소원 구경하는 거 좋아하는데 

그때도 그랬나보다

 

그러다 초2때 친해져서 하이킥의 민호와 범이 수준으로 매일 붙어다니던 베프가 

동네 교회를 다녀서 교회를 따라 다니게 됐다

할머니 교회와는 달리 규모가 좀 있는 교회였고 나는 초등부를 다니게 됨


새로 다닌 교회는 돈이 많아서인지 전도를 하면 선물이 팡팡!!! 쏟아졌다

친구를 한 주 데려오면 미미 인형 한 개, 두 주는 뭐, 세 주 연속 데려오면 미미 인형 큰 세트 뭐 이런 식으로

5주가 최대치였는데 5주 연속 데려오면 대박 선물을 받았음

그래서 난 이 때 친구들과 선물을 나눠 갖자는 딜을 하고 수많은 애들을 교회에 데려갔다

심지어 대전에서 잠깐 우리집 놀러온 친구까지 교회에 데려감;;;ㅋㅋㅋ


암튼 그렇게 전도에 미쳐 지내며 예배 시간이 끝나면 선생님과 함께 성경 공부도 하고 그랬지만

아무리 들어도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수긍이 가지 않았다

비판적인 생각만 들었다

'신이 있는지 어떻게 알지? 신이 있으면 왜 세상이 이따위지? 

이 성경 구절은 말이 안되지 않나? 왜 성경 속에선 여자랑 남자는 평등하지가 않지?'

나는 <짱구를 못말려>를 보면서도 

짱구 엄마는 아빠한테 존댓말하는데 왜 짱구 아빠는 엄마한테 반말하는지를 궁금해하던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이 풍부하던 초딩이었기 때문에

오래된 책인 성경엔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너무나 많았다

근데 불행하게도 교회엔 나의 이런 질문에 논리적으로 대답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만 교회를 갔다


달란트 시장은 재밌었다

근데 교회 활동을 열심히 안해서 달란트를 많이 못 모아서

다른 애들이 좋은 장난감 다 사갈 때 <끝까지 하나님을 믿은 욥>인가 뭔가 하는 그림책 밖에 살 수 없어서 슬펐다

그 만화책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욥이 내내 고통 받는 내용이 인상 깊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이 욥을 시험하려고 무슨 가시덤불을 보내고 뱀을 보내고 해서 욥에게 교통을 줬는데도

욥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욥에게 선물을 내려주었다 뭐 그런 내용임

근데 그 책 읽으면서도 "왜 자기를 믿는 사람을 시험하지? 하나님 졸라 쪼잔하네"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초2~4 때의 생각이니 난 그냥 애초에 신을 믿을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남은 달란트로는 컵떡볶이를 사먹었다

그 때 달란트로 산 책을 구글에서 발견


또 교회에 대한 좀 별로인 기억 중에 하나는 교회 수련회를 갔던 것이다

엄마는 매번 방학 때가 되면 나를 어디론가 떠나 보내고 싶어했다

할머니댁이라든가, 수련회라든가, 캠프라든가, 청학동 예절학교라든가

(여긴 진짜 중학교 때까지도 제발 좀 가라고 했는데 티비에서 보고 내가 절대 안간다고 난리쳐서 안감)

난 캠프란 캠프는 다 싫어하는 초딩이었기 때문에 절대 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교회 수련회는 엄마와 절친 엄마의 합작 작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번 가게됨


수련회에 갔는데 제단이 있고 무슨 호박신 탈쓴 사람이 있었음

호박신이 음산한 bgm에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고는 무섭게 굴었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호박신의 목소리는 

너네들 집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엄마한테 대들지~ 어쩌고 하면서 우릴 혼냈고, 

뭐 그러더니 가족들이 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면 자기한테 절을 해야 한대

초딩들 일동 쭈뼛거리니까 계속 절하라고 다그침


그 때 내가 초3인가였는데 비판적 사고력이 기형적으로 뛰어난 '삐뚤어진 어린이' 시절이라

저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절 시켜놓고 우상숭배라고 혼내는 거 아니야?'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근데 뭔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분위기가 아니길래 나도 그냥 남들이랑 같이 절을 했다

그러자

정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호박신이 호박머리 벗었더니 교회 선생님이었고 다른 교회 선생님들까지 몰려 나와서 우리를 혼냈다 우상숭배하냐고


와 진짜 억울했음 

지네가 함정 파놓고 걸렸다고 난리여

시험 해놓고 시험에 든다고 뭐라하는 심보는 무엇인가

하여튼 이렇게 신에 대한 믿음은 멀어져만 갔고, 

그냥 심심해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같은 거 좔좔 외워 말하면서도

성경에서 말 안되는 부분만 찾는 매의 눈을 장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 4학년이 되고 같이 교회 다니던 절친이가 이사를 가면서 나도 미련없이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


근데 교회에서 진짜 뻥 안치고 1년 넘게 날 쫓아다녔다

매주 일요일마다 우리집 찾아와서 초인종 누르고 나오라하는 건 기본이었고

엄마랑 내가 안 나가고 자는 척 하고 있으면 전화도 마구함

1년 넘게 여러 명이 그렇게 돌아가며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러면 천국 못간다 협박도 하고 뭐라 말도 하고

우리 엄마가 내가 잔다고 돌아가시라고 좋게 말해도 

문틈새로 날 겁나 크게 불러대고 하여튼 사람을 질리게 함

동네를 맘대로 못 돌아다닐 지경이었다 

돌아다니다가 교회 선생님이나 전도사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길바닥에 서서 훈계 20분 듣는 게 기본이었음

교회 전도사 중에 다리 저는 장애인 전도사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의 목발은 공포의 아이템이었음

그 아저씨 목발을 500m 밖에서도 알아보고 길을 뺑 돌아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사람이나 추노꾼에게 쫓기는 노비의 심정이 그랬으려나

친구랑 같이 길가다 교회 사람 보이면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먼저 가라고 하고 숨는 게 일상이었다

왜그러냐던 친구들도 나중엔 다 알게 돼서 그 교회 사람이 보이면 나에게 알려주고 같이 숨어주고 쇼를 했다


말 그대로 '들어올 땐 맘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를 체험한 1년여의 시간이었기에 다시는 함부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음


그치만 이후로도 할머니 교회에 주요 기념일마다 동원돼야 했던 건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삼촌들과 함께 가족 찬송대회에 참석하여(동원되어) '나는 주의 어린 양~~'을 불렀던 기억도 생생

아 보신각 종 실제로 보는 게 꿈이었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시간엔 항상 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하면서 카운트 다운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도 교회 끌려가고 아악


교회 추억이 참으로 많구만

그립진 않다

글을 쓰다보니 나같은 본투비 무신론자가 이렇게 오래 교회를 끌려다녔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이래서 교회 개그만 나오면 빵빵 터진다 교회를 아니까

윤성호나 릭앤모티나 교회 개그 나오면 웃음보가 터진다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색깔  (3) 2016.10.19
요며칠 인상깊게 본 영상들  (1) 2016.10.04
학과별 인간 특성  (3) 2016.09.18
내가 싫어하는 글 스타일1  (6) 2016.09.18
이맘때의 언시반 풍경  (2) 2016.09.03

내 지인이라는 좁디 좁은 표본 기준(나 페북친구 250명)


경영학과

속물적이고 보수적인 대한민국 표준 시민

헐리웃 영화에 나오는 속물 월스트리트 증권맨 생각하면 됨 얘네가 원하는 이미지임 

페북에서 스타트업, 성공한 젊은 기업가, 글로벌 사회적 기업 등등 좋아요나 공유 엄청 누름 = 자기계발서형 페북

겉은 번지르르하고 괜찮아보이지만 깊게 알수록 알맹이 없는 경우 다수 (비판적 사고력이 모자람)

남자는 일베충 많음 근데 겉으론 아닌 척 매너남인 척하다 경영학과 남자들끼리 모여 있을 때 일밍아웃

여자는 평소엔 뭔가 과 남자애들한테 기가 눌려있음 근데 따로 만나보면 머리 좋은 여자애들 많음

남아선호사상 집안에 태어나 존재감 없이 자기 앞가림 알아서 하는 머리 좋은 딸내미 같음

남자든 여자든 각종 기업 서포터즈, 홍보대사 이런 거 열심히 하는 애들 많음 

학교에서 문제 터지면 80% 확률로 경영학과(경영학과가 또)

욕만 한 거 같아서 칭찬을 하자면

경영학과 오빠들이랑 놀면 밥이고 술이고 다 이 사람들이 사줬음 쏘면서 생색도 안냈음 

마초적이거나 꼴보수스러운 발언을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다면 공짜 밥과 술을 먹을 수 있었다



신방과

경계의 과

경영학과형 신방과생과 인문대형 신방과생으로 나뉨


경영학과형 신방과생은 주로 광고, PR 분야를 지망함

현대카드 정태영st

힙스터 워너비

감각있는 척 하고 싶어하며 예대 애들을 열심히 따라해보지만 무언가 어설픔

옷 입는 거 신경쓰고 페북에 남과는 다른 있어보이는 글 열심히 올림 

여친은 모델st로 분위기 있는 여자를 선호함 주로 미술하는 여자들

자비에 돌란류 영화 좋아함 cgv 아트하우스 자주감 

정치적 성향 드러내는 걸 촌스럽다고 생각하는지 잘 안 드러냄

담배는 펴도 술은 잘 안 마심 

남자끼리 까페 잘감

여성성 강한 남자가 많다


인문대형 신방과생은 주로 기자나 시교, 드라마 PD 등을 지망함 

간혹 본격적으로 영화쪽을 지망하는 소수의 애들도 여기 속함

보통 옷을 못입음 외모에 신경을 잘 안씀 아주아주 가끔 잘 입는 애들 있는데 그런 애들은 광장시장 빈티지st

적당히 마이너한 인디 음악, 김연수 소설, 옛날 MBC (무도,PD수첩), 팟캐스트 좋아함

경영학과형 신방과생과 달리 정치적 성향을 아주 열심히 드러냄

대부분 진보 성향이며 일베 극성 혐오자 & 마초 많음

술 잘 마심 밤새 마심 학교 잔디밭에서 마심 

고로 옛날 대학의 낭만을 찾는다면 얘네랑 놀면됨

연애를 잘 못하는데 가끔하면 질척질척하게 함 

상대한테 안쓰럽게 끌려다니는 사랑꾼 다수

남성성 강한 여자가 많다



인문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 심한 애들 많음(소위 PC충)

근데 소수과가 많아서인지 단과대 중에 선후배 관계가 제일 빡세고 단체 행사 참여를 강요하고 

아싸 의지를 가진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옛날 운동권 분위기나 연극 동아리 분위기 생각하면 됨(실제로 운동권이나 연극 동아리에 다수 분포)

인디 음악 중에서도 기타 하나에 목소리 하나 같은 포크 느낌 좋아함 

음악이든 영화든 일반적으로 '인문대형 신방과' 애들보다 더 마이너한 취향

담배 피는 사람이 많다 술도 잘 마신다

텔레비전 아예 안 보는 애들 많음

요즘 세상에 아무도 안보는 책이나 시사 주간지 얘네가 봐준다

술자리에 통기타가 자주 등장 

다같이 둘러 앉아 민중가요 부를 수 있다

옛날 대학의 낭만을 찾는다면 얘네랑 놀면됨222 

그런데 농담 한마디에도 발끈하는 사람들 때문에 좀 피곤할 수 있음 

학교에 문제가 터진다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80%의 확률로 인문대생



공대

대부분 아이폰을 씀

애플빠가 많다 잡스러버들이 많다

대체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확고하지 않으며, 

인문계 특유의 뜬구름 잡는 사회 얘기를 안해서 현실적으로 느껴짐

자기계발에 열심인 사람들이 많음

가끔 조모임을 같이 해보면 대부분 열심히 참여하며 성실함

컴공이나 건축 사람들은 기술을 가진 '경영학과형 신방과생' 느낌이었는데,

기술이 있어서인지 '경-신'보다 알맹이 있어보였다

영어 잘해서 외국 기술 동영상 이런 것도 잘 퍼오고 신기술에 민감했다

게임도 그냥 게임말고 스팀에서 살 수 있는 인디 게임 이런 거 하는 사람들이 많았음

기계, 화공과는 좀 덜 트렌디하고 무난한 느낌

아주 간혹 공대생중에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사과대나 인문대생의 글에 비해 뭔가 한쪽에 치우쳐져 있거나 좀 어설픈 느낌이 든다

락 좋아하는 사람 많음 

AC/DC나 드림 씨어터 등 고전부터 쌈싸페 숨은 고수 출신 펑크, 하드락 밴드까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취향 있는 락 매니아'들은 대부분 공대생이었음 



미대

힙스터 다수

취향이 뭔가 있어보이는 애들 많음

대부분 옷을 잘 입는데 유행을 따라가는 느낌이 아니라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인스타엔 인물 사진보다 있어보이는 풍경이나 사물 사진이 많음 

사진 설명은 불친절함 시크한 척 

간혹 자기 사진을 올려도 어플 필터 떡칠된 느낌의 사진이 아닌 

남이 찍어준 자연스러우면서도 예쁘게 나온 사진을 올린다

음식도 페북 '오늘 뭐먹지?'에 나올법한 제임스 치즈 등갈비 이런 거 안 올린다

집에서 해먹는 보리밥이나 죠스 떡볶이를 올릴지언정(킨포크st...?)

개나 고양이 사진을 올려도 꼭 종자있는 핫한 개나 고양이 사진 올림

올드 잉글리쉬 쉽독이나 러시안 블루 이런 애들

음스타그램도 종종 올림(물론 외국 힙스터 음악)

페북에 긴 글 안씀


이정도 과 말고는 표본이 별로 없어서 못쓰겠네 한 명 한 명 아는 애들 얼굴 떠올리면서 쓰니까 재밌다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며칠 인상깊게 본 영상들  (1) 2016.10.04
교회에 대한 추억  (0) 2016.09.25
내가 싫어하는 글 스타일1  (6) 2016.09.18
이맘때의 언시반 풍경  (2) 2016.09.03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  (0) 2016.08.16

'나 글 잘쓰지? 나 센스있지? 내 묘사 완전 기발하지?'

매 단락 매 줄 매 단어마다 이런 생각이 뿜뿜대는 글.
싫다.
이런 글은 주로 부자연스런 비유가 줄마다 들어가 있고, 과장을 일삼으며, 계산된 찌질함을 계산된만큼 드러낸다.

이런 글은 99% 남자가 쓴다.
요샌 페북이 좀 한물가서 이런 글이 적은데 몇년전만 해도 자기가 센스있다고 자부하는 남자애들이 페북에 이런 류의 글을 열심히 써올리고 좋아요를 수집했었다. 

웃대나 디씨 특정갤러리 같은 남초 커뮤에도 꽤 많았고.

요새는 페이스북 서울대 대숲 페이지, 일베 같은 데에 이런 글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듯하다.


가끔은 아 남들한테 인정 받을(남들을 웃길) 저 묘사 생각하려고 얼마나 짱구 굴렸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짠함), 몇몇 묘사엔 실제로 감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존나 별로다.

글에서 중2중2한 자의식 과잉이 느껴진다 해야되나.
글을 자기가 쓰고 싶어서, 혹은 자기가 할 말이 있는데 전달하려고 쓰는 게 아니라
남한테 보여주려고, 자신의 센스나 글솜씨를 과시하려고 쓰는 게 느껴져서 싫은듯.
본질 없는 잔기교를 과시하려는 애들이 싫다.
그런 글 보면 글쓴이 면전에 대고
응 아니야 너 노잼 니 글 존나 별로~~~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심술이 올라옴.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에 대한 추억  (0) 2016.09.25
학과별 인간 특성  (3) 2016.09.18
이맘때의 언시반 풍경  (2) 2016.09.03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  (0) 2016.08.16
내가 만난 교수들 1. 강정인  (2) 2016.06.21

공채 필기 시험을 앞둔 언시반 풍경

2명 이상 모이면 언제나 서로 상식을 질문, 대답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서 문제를 일으킨 독성 물질은? PHMG 인산염!

티비 프로그램을 몰아 보는 시청 양상은? 빈지 뷰잉!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만든 이란의 영화 감독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근데 그거 왜 알아야돼? 올해 죽었대.

채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이 때의 언시반 아이들은 일년 중 가장 지성(이라기보단 사실은 잡상식이) 넘친다.
퀴즈 프로그램이라도 나가면 우승할 기세.

북한이 GPS를 교란하기 위해 사용한 기법이라든지,
3대 영화제 작품상 결과라든지,
대만 총통 취임식에서 불려진 노래 따위도
다 꿰고 있는 것이
이 시기 언시생들이다.

외우기 어려운 건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 개드립도 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빠가 맥주먹고 키아~~"


또한 이 시기 언시생들은
자기가 외우기 싫은 것,
외우기 너무 복잡하거나 귀찮은 것은
" 아 그런 거 안나와"
라는 말로 퉁치고 그냥 넘어가곤 한다.

"히잡 차도르 얘네 많이 가리는 순서대로 말해봐!"
"아 그런 거 안나와."

이런 식이다.
일종의 자기합리화이다. 외우기 싫으므로ㅌㅋㅋ

또한 근거없는 예측들이 난무하기도 한다.
"올해 왠지 히치콕 나올 거 같애. 왠지 느낌이 그래."

아무튼
필기 준비기간 언시반 분위기는 재밌고 좋다.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과별 인간 특성  (3) 2016.09.18
내가 싫어하는 글 스타일1  (6) 2016.09.18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  (0) 2016.08.16
내가 만난 교수들 1. 강정인  (2) 2016.06.21
까칠한 남자새끼들은 추종자가 존나 많네  (11) 201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