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월의 작곡과 작사도 정말 좋지만,

라이너스의 담요 연진의 목소리에 이런 느낌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연진하면 밝고 아기 같은 그런 느낌만 생각했는데, 이런 처연한 가을 느낌이 있을 줄은. 

먹먹한 가을 밤, 날씨가 쌀쌀해져가는 지금 바로 이 환절기에 어울리는 노래.

이별이 아니어도 이별 같다. 





 어제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오랜만에 시청하게 되었다. 제주어쿠스틱페스티벌이라는 공개 방송이었다. 장필순이 나왔다. 장필순!!! 하면서 채널을 고정하고 음악을 감상했다. 곧이어 후배 가수랑 무대를 함께 꾸민댄다. 누구지? 설마 제주도 사는 이효리? 아, 아이유가 나왔다.



 짜증이 났다. 아니 무슨 듀엣할 어린 애가 아이유 밖에 없냐? 설상가상으로 음향 사정이 안 좋아서 아이유는 박자도 다 틀린다. 하지만 문제는 박자가 아니다. 그냥 아이유 목소리가 장필순 목소리랑 너무 안 어울린다. 붕붕 뜬다. 생각만 해도 빡치는 <너의 의미>가 떠올랐다. 바로 그 <너의 의미> 때문에 장필순에 아이유가 얹어진 걸 본 순간 나는 짜증이 난 것이다. 



 난 꽤 오래 전부터 산울림의 팬이었다. 씨디는 물론, 엘피도 있다. 김창완의 목소리를 들으면 세상 만사가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만큼 좋아하고, 김창완이라는 인간 개인에 대한 호감도 엄청나다. 산울림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단연코 <너의 의미>였다. 


  

 아이유가 <너의 의미>를 리메이크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는 궁금했다. 와 이 좋은 노래를 어떻게 새롭게 불렀을까.


 노래를 듣고 나니 화가 났다. 최악의 <너의 의미>였다.  

아이유는 노래 내내 예쁜 척만 하고, 김창완의 목소리는 그 가운데 어색하게 껴 있다. 아이유가 자기 노래에서 보여줬던 아이유의 장점들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고, 그저 예쁜 척 하는 목소리만 남아 있다. 한없이 가볍고, 깊이는 없다. 힐링캠프에서 아이유는 많이 고민하고 청춘의 느낌으로 <너의 의미>를 불렀다고 했는데, 그 느낌은 전혀 와닿지 않는다. 노래를 리메이크할 때는 원곡과 같은 스타일이라면 원곡의 독보적인 느낌을 뛰어 넘거나, 혹은 리메이크하는 뮤지션의 스타일로 노래를 재해석해야 하는데, 아이유의 <너의 의미>는 원곡과 같은 스타일이지만 원곡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곡이 되어버렸다. 


 아이유가 <너의 의미>를 망쳤다. 


 나는 아이유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날>이나 <너랑 나> 같은 아이유 본래의 곡은 좋아한다. <금요일에 만나요>도 참 좋고. 얼굴도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한다. 근데 아이유가 노래를 잘하고, 가창력이 좋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이유의 목소리가 희소가치를 가진 '분위기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창력보다 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윤종신 못지 않게 '희소 가치'에 환장하는 사람으로서... 아이유는 그렇진 않다. (태연이 아이유처럼 나왔다면, 아이유랑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그런데 분위기 있는 목소리의 끝판왕급인 김창완이나 장필순에 아이유를 끼얹으면...아니 왜 그러세요...


 아이유의 <너의 의미>는 어딜 가든 들려서 피할 수조차 없다. 영화관 광고에 나오는 아이유 <너의 의미>가 끝판왕. 노래가 싫은 건 그렇다 쳐도 화면과 노래도 따로 노는 그 이상한 광고...난 생활 속에서 아이유의 <너의 의미> 테러를 당할 때마다 속으로 욕이 나오는 걸 참는다.





*

 이 포스팅을 하려고 찾아보니 아이유 본인도 <너의 의미>가 리메이크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고, 김창완의 느낌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는데, "그래서" 김창완의 도움을 받았단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 리메이크가 잘못됐다는 걸 김창완이 몰랐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산울림팬 둘(50대 남성, 20대 여성)이 이 노래에 대해 나와 같은 반응인 걸 보면서 생각은 확신이 되고, 무슨 생각으로 이 노래를 이렇게 내놓는 걸 허락했는지 김창완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지경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생각이었을까. 이게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내놓은 거라면, 음악가는 나이가 들수록 능력이 급격히 쇠퇴하기 마련이라는, 언젠가 이석원이 했던 말에 격한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다. 


**

 아이유는 <너의 의미>를 비롯해 리메이크 앨범을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채운 것이라고 말했던데, 뭐 그래도 잘 팔리긴 했겠지만, 음악적 욕심이 있는 '프로'였다면 그래선 안됐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노래보단 잘할 수 있는 노래를 리메이크했어야지. 





없는 가창력 바짝 끌어모아 불렀음에도 아이유의 <너의 의미>보다는 만 배쯤 좋은 

2001년 핑클 리메이크 앨범 수록곡 <늘 지금처럼>. 

  




정말 정말 정말 좋아서 감동의 눈물이 났다. 음악 듣고 눈물 흘려본 거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특히 음악 듣고 내 상황이랑 비슷해서나 어쨌든 '나'를 개입시켜서 운 적은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나랑 아무 상관 없이 음악 자체가 감동적이어서 울어본 건 얼마만인지. 나이 먹으면서 새로운 음악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고, 좀 좋다말고 그래서, 어릴 때처럼 좋음을 더 이상 엄청 좋게 느낄 수 없나보다 하면서 슬퍼하고 있었는데 이 노래가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해줬어.


이런 노래를 만들어주고 불러주신 모두에게 감사해요. 2집 나온 날 향음악사에 씨디 사러 가려다가 미루고 흐지부지 됐는데... 다음 주엔 꼭 학교 끝나고 향음악사 가서 씨디를 사와야지. 아 정말 좋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이규호는 최고야...





1.


폴 매카트니 내한 축 


 내 블로그 유입 검색어 원 탑 폴 매카트니 (별 글도 아닌데 4년째 내 블로그를 먹여 살리고 있는 해당글: http://seoulnight.tistory.com/14 )의 내한 소식을 이제야 블로그에... 으허으흐ㅓㅝ어 상상만 해온 일이 드디어 현실이 되다니ㅠㅠ 소식이 전해진 당일 난 정말 넋을 잃고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소식 전해진 당일에 내 블로그도 (평소보단...)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셨었네. 비틀즈매니아 까페 보니 거의 기정 사실인듯. 으헝...펑나면 나 울 거...ㅠ_ㅠ 아무튼 곧 다가올 그 예매전쟁날을 위해 난 얼른 20만 대군을 준비해야 겠다... 흐헝헝


 죽기 전에 폴맥 할배를 직접 볼 수 있을까 진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취업하고 돈 벌면 꼭 폴맥 콘서트에 한 번은 가고야 말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백수의 마지막(일까...?)을 달리고 있는 지금 날 위해 와주시는구나. 흐헝헝. 감사합니다! 






2. 


 내일 이규호 2집이 나온다고 한다. 2007년쯤이었나, 언니 컴퓨터에 있는 음악을 옮기다가 이규호의 음악을 처음 듣고 '음, 새로나온 가순가?' 했는데 그게 거의 그 때 당시 10년 전에 나온 노래라는 걸 알고 경악했었다. <머리 끝에 물기> 맨 앞 부분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기분이 참 좋았었는데. 


 아무튼 그 이후 나에게 이규호는 언제나 궁금한 인물이었다. 대체 왜 앨범을 내지 않고 있는 건가. 뭐하고 살고 있는 거지. 뭐 그런. 몇 년 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이규호, 윤영배, 장필순이 함께 공연을 해서 가서 봤었는데, 이규호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 전까지 이규호를 실제로 본 적 없던 나와 친구 M은 저기 앉아 있는 저 사람은 여자일거다 남자일거다 한참을 헷갈려하다가, 결국 노래가 시작되고 그가 이규호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이규호는 왜 늙지 않는가, 이규호의 성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궁금함이 추가되었다.


그런 이규호의 2집이라니.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기다리지조차 않았던 바로 그 앨범이 드디어 내일이면 나온다. 공연도 인터뷰도 방송 출연도 많이 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봄. 일단 티저는 충분히 좋다. 



3. 

 

 이건 사실 음악 얘기 아니라 드라마 얘기긴 하지만... 좀 끼워 넣어보자면, 요새 jTBC에서 시작한 드라마 <밀회>를 보 기 시작했는데, 정말 마음에 든다. 어릴 때 아빠 차 안에서나 듣던 클래식을 나이 먹고 들으니 왜이리 좋던지. 덕분에 바흐의 평균율을 듣고 있다. 어릴 땐 음악 시간에 클래식 틀어주면 마냥 졸리기만 했었는데, 클래식이 좋다니 하루 아침에 취향이 고상?해졌을린 없고 잘생긴 유아인 덕분인가...라지만 사실 유아인도 별로, 김희애도 별로...(김희애는 이뻐서 보는 재미가 있는데 딱히 호감은 안 간다...) 내가 밀회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바로 박혁권... 나의 혁권 더 그레이트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이토록 매력적인 캐릭터로 출연하다니. 아무튼 오랜만에 듣는 클래식은 뭔가 마음도 차분하게 해주는 것 같고 좋다. 

 

 대다수의 사람이 그랬겠지만, 나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 다녔었다. 학원에 가면 음악가 이름을 붙인 각각의 방음이 되는 방들이 있었고, 조금은 까칠한 분위기의 여자 선생님들이 있었더랬다. 피아노 학원의 숙제는 싫었지만, 피아노 학원 곳곳의 피아노 소리와 뭔가 몸가짐을 조심해야만 할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는 좋아했었다. 하농 연습 제대로 안해가서 손등 맞는 게 너무 싫어서 학원을 관두게 되었지만...(누구나 그랬을 것 같지만 나 역시 하농도 엄청 싫어했었다.) 음 무튼 <밀회>를 보면서 피아노 학원 다니던 시절 이후 잊고 있던 피아노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아마도) 파국으로 치달을 주인공 둘의 사랑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당분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드라마에서 왜색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PD의 전작인 하얀 거탑에서도 느꼈던 그 미묘한 왜색), 그마저도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의 왜색이라 좋고... 간만에 연출, 연기, 음악, 내용 다 괜찮은 드라마다. 당분간 클래식 좀 들어야지. 






드라마에서 이선재(유아인)가 치는 바흐의 평균율. 실제로 이곡을 친 피아니스트는 누구였을까.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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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이번 앨범 좋다.

패닉을 좋아하고 이적의 별밤과 김진표의 야간비행을 모두 즐겨들었던 옛날 사람으로서, 다행이다와 무한도전 가요제의 말하는 대로, 압구정 날라리로 이어지는 이적의 음악은 그 음악들이 그에게 가져다 준 대중적 인기와는 반대로 전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아마 많은 패닉팬들이 그랬겠지. 이적을 보며 역시 결혼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삶의 안정은 창작자에게는 독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번 앨범을 보니 요즘 아내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가...아니면 결혼이 가져다 준 안정과 행복이 일상 속에서 무뎌져 다시 결핍이 생긴건가 하는 생각이 드네. 마침 앨범 이름도 <고독의 의미>. 

아무튼 이적이 행복하건 말건, 음악 수용자는 행복하다. 





전주없는 노래 좋아하는 내 취향은 한결같네 이적의 간드러지는 이 창법도 간만

더 좋은 노래는 <뜨거운 것이 좋아>지만 그건 링크를 못찾겠네 흐헝. 







소년들의 음악은 한결같이 좋다. 내가 소년취향이라 그런가? 재주소년 음란소년 20세기소년 굴소년단 모두 좋다. 가자미소년단만 들어보면 되겠구낭.



저는 재주소년을 좋아합니다.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고 계기가 있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재주소년을 좋아하기 전까지는 귤, 명륜동, 앨리스 같은 재주소년하면 누구나 알 법한 곡들만 알았습니다. 재주소년의 팬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앨범을 몇 장 냈는지조차 몰랐거든요. 그들에 대해 아는 건 그들이 군대에 다녀왔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이사를 한 날이었고, 이사를 도와준 선배와 술을 한 잔 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시각은 새벽 두 시였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 그를 속으로 엄청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 화면에 뜬 그의 이름을 보고 마음이 많이 설렜습니다. 목소리가 떨릴까봐 전화를 받는 것이 고민될 정도였습니다. 술을 한 잔한 그와 맨 정신 형광등 불빛 아래의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창틀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며 그와 전화하는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에는 제가 술을 한 잔 하고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때 그의 통화 연결음이 바로 재주소년의 '유년에게'였습니다. 전화를 받은 그에게 통화 연결음이 무슨 노래냐고 묻자, 그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제주도라 했습니다. 학교 답사로 제주도에 간 거였고, 나는 그에게 나한테 말도 없이 제주도에 갔냐고 맨정신으로는 절대 하지 못했을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에 있는 재주소년이네. 라는 뭐 그런 뻔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웃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전화해서 미안하다는 나에게 "나도 그저께 했는데 뭐가 미안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술을 먹고 거는 전화는 십중팔구 술에서 깨고 나면 후회하기 마련이지만, 그 전화는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오롯이 좋은 기억으로만 남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그가 "너랑 있으면 내 일상이 깨지는 게 두려워."라는 말만을 남겨 놓고 떠났습니다. 동아리 오빠들과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술집에서 잠깐 빠져나와 술집 앞에 있는 신촌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밤새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열통쯤 했을까. 그는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전화기에선 무심하게도 재주소년의 '유년에게'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텅 빈 운동장에 앉아 붉게 해가 지는 것을 보며 나의 유년에게 인사한다'는 그 평온한 멜로디와 가사가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나는 길가에 앉아 울면서 제발 전화좀 받으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다음 주도 그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나는 상처가 나면 상처 부위의 딱지를 자꾸 뜯어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면 분명 회복 속도는 더디지만 결국 다 낫고 나면 더 이상 상처가 아프지 않습니다. 슬픈 일이 있으면 그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그 생각을 합니다. 무언가를 애써 도피해서 잊으려 하면, 나중에 우연히 그 일과 관련한 무언가를 마주하고 자연스럽게 그 일이 떠올랐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잊기 시작해야하니까요. 



밤새 걸었던 응답 없는 전화 탓에, 재주소년의 '유년에게' 후렴구는, 텅 빈-하는 구절만으로도 저를 울컥하게 만드는 노래가 되어있었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저는 레코드점으로 가 재주소년의 '유년에게' 앨범을 샀습니다. 그리고 동네 스타벅스에 앉아 '유년에게'라는 이름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쓴 시나리오는 해피엔딩이었고, 그 시나리오는 내 바람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쓰여진지 7개월이 지나고서야 다시 만나게 된 그와 나는 결국 좋게 끝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드는 일은 없겠지요.




이제 남은 것은 재주소년입니다. 나는 재주소년을 좋아합니다. 이 이야기가 재주소년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기엔 우습지만 어쨌든 나는 재주소년을 많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알게되고 좋아하게 되면서 행복한 순간은 너무 짧았고, 슬픈 순간은 너무 길었지만. 그래도 나는 재주소년이 좋습니다. 그가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주려고 했지만 주지 못한 채로 내 책상 한 켠에 남아있는 책갈피와 비누방울이 서운하지 않을 만큼,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탑밴드2를 4화를 다시보기로 보는데 야야라는 밴드가 나왔다. 음악이 독특하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신대철 말고는 정말 반응이 안좋았다. 물론 밴드의 비주얼은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스모키좀 제발...ㅠㅠ저 음악에 오히려 비주얼을 담백하게 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로로스를 처음 들었을 때 같은 신선함이 느껴졌다. 움 역시나 검색해봤더니 헬로루키 대상까지 받은 밴드였다. 하지만 유영석 김도균 김경호는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라는 가혹한 혹평을 했다.

 

 야야의 사례도 그렇고(야야는 결국 신대철의 의지로 뽑히긴 했지만) 탑밴드2를 보면서 점점 아쉬워져가는 건 네임밸류가 있는 몇몇 밴드들(데이브레이크, 칵스, 피아 등) 제외하곤 점점 그저 그런 밴드들만 뽑는 것 같다는 것이다. 특색 없는 락밴드들 말이다. 물론 직장인 밴드인데 엄청난 기타연주를 보여주고 그런 사람들 보면 나도 경외심 드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프로 밴드는 자기 음악을 해야하고 자기 특색이 있어야 하는 것일텐데. 4회까지 본 지금까지는 베이직'만' 충실한 밴드들을 많이 뽑고 있는 느낌이다. 경연 뒤에도 기억에 남는 밴드는 흔치 않고 대부분 어디 클럽에서 공짜 공연을 한다해도 안 들을 그저그런 음악을 한다. 아닌 밴드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


 탑밴드1에서 우승한 톡식과 준우승한 포도 뜨지 못했다. 탑밴드2 우승팀도 이대로 가다간 비슷할 것 같다. 데이브레이크나 칵스 피터팬컴플렉스 같이 원래 인기있는 팀들이 우승하지 않는 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심사위원 선정의 문제인 것 같다. 이건 탑밴드 뿐만 아니라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공통적인 문제다. 탑밴드의 심사위원은 신대철, 김경호, 김도균, 유영석이다. 네 명 다 인간적으로 정말 매력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유영석은 라디오 들으면서 좋아하게 되서 오빠밴드까지 다 챙겨볼 정도로 좋아하고, 김도균 아저씨도 정말 좋다. 김경호는 나가수에서 정말 좋았고 신대철도 원래 좋다. 


 하지만 네 명의 아쉬운 점은 지금 '괜찮은' 음악을 만드는 현재진행형 음악인이 아무도 없다는 거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음악을 만들었다해도 지금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네 명 중 두 명이 거장 느낌의 '베이직'을 보는 뮤지션이라면 나머지 두 명쯤은 현재진행형 뮤지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 명 다 그렇지 못하기에 음악에 대한 감각이 과거에 멈춰있는 것 같다. 신대철은 그나마 덜한 것 같지만. 젊은 시절에 명곡을 많이 썼다고 해서 지금도 그 감각이 여전할 거라는 건 신기루 아닐까. 물론 그들이 쌓아온 권위가 있기에 대중에게 그들의 평가를 정당화하기는 훨씬 수월할테지만. 


 신대철보다는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이, 유영석이나 김도균보다는 홍대에서 김창완밴드 하고있는 김창완이 더 적절한 심사위원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머지는 음악 듣는 게 직업이고 지금도 대중을 상대로 평론을 하는 차우진 같은 음악평론가들이 심사를 했다면 더 나은 심사를 했을 거다. 시청률 때문에 그러지 않았겠지만.


 많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런 우를 저지르기 쉬운 것 같다. 과거의 영광을 가지고 있는 '거장'들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한다고 심사가 잘되는 게 아니다. 지금도 그 감각을 잘 유지하고 있는 뮤지션들을 심사위원으로 세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슈퍼스타k'에서 그동안 그 역할을 잘 해주고 있던 심사위원이 바로 윤종신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가지면서도 현재도 감각을 잃지않은 뮤지션. 윤종신은 정말 신기한 게 90년대의 비슷한 뮤지션들과는 조금 달리 90년대 음악이지만 지금 들어도 정말 안 촌스럽다 싶은 엄청난 명곡은 별로 없는데 (동의하지 않을 윤종신 팬들도 많겠지만 그 시대를 살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그 시절의 음악을 돌아듣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 대신에 지금 만드는 음악은 지금의 잣대로 듣기에 정말 명곡들이 많다. 이게 왜 신기하냐면 대다수의 (과거의 영광을 가진) 뮤지션들은 과거에는 엄청난 음악을 만들었었지만 지금은 그럴 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김현철의 '동네'나 '형', '춘천 가는 기차'는 지금들어도 시대를 넘어선 명곡의 느낌이 있는데 김현철은 지금 괜찮은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이. 많은 뮤지션들이 그렇기 때문에 "역시 창작은 어릴 때 더 잘하는 걸까"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윤종신은 그 예외에 있다. (사족을 달자면 비슷한 포지션에 유희열이 있는데, 유희열의 요즘 노래들은 그의 예전음악만 못하지만 유희열의 '듣는 감각'은 지금도 유효해보인다.)


 '슈퍼스타k'에서는 윤종신이 '희소가치'를 부르짖으며 대중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간파하고 특색있는 지원자들을 찾는 역할을 했고, 이승철이 '베이직'을 보는 역할을 해서 균형을 맞췄다. 덕분에 슈퍼스타k3에서 버스커버스커라는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밴드를 배출해낼 수 있었다.

 
 음악을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베이직'을 보는 걸 절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창력이나 연주력 같은 대다수의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기본 말이다. 하지만 그 기준으로 뽑은 지원자가 우승을 해도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기란 어렵다. 오디션 내내 대중은 베이직에 충실한 지원자에게 엄청난 지지를 보내는 것 같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다같이 데뷔해서 뚜껑을 열어보면 그 결과는 달라진다. 슈퍼스타k3에서 울랄라세션이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지지를 받고 부동의 우승후보였지만 뚜껑을 열어 둘 다 음반을 내보니 버스커버스커가 훨씬 더 인기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태까지 슈퍼스타k 시리즈는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어왔다. 베이직에 충실한 지원자가 대중의 지지를 더 많이 받으며 결국 우승을 하고, 베이직은 조금 떨어지지만 '희소가치'가 좀 더 있는 지원자는 준우승을 하는 그런 구도말이다. 케이팝스타도 그랬고. 직관적으로 '비교해' 듣기엔 베이직이 더 뛰어난 이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희소가치가 있는 지원자들은 호불호가 갈리게 마련이고. 하지만 데뷔를 하면 우승자보다는 준우승자가 더 인기를 끌 확률이 높다. 결국 프로세계에서는 '베이직'을 채우는 사람들은 널렸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더 중요하다. '베이직'을 넘사벽으로 채우면 모를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다른 지원자와 비교해 '잘하는'(베이직에 충실한) 지원자를 응원하던 대중들은 그들이 대중음악계에 나오면 그들의 음악을 굳이 찾아들을 필요성을 못느낀다. 그들이 아니어도 잘하는 프로들은 널렸으니까.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희소성있는 참가자를 응원하던 팬들은 그들이 데뷔하면 더욱더 응원한다. 왜냐면 그들이 '잘해서' 좋아한 게 아니라 그들의 음악 스타일이 좋아서 응원했기 때문에. 그런 팬들에게는 그들을 대체할 뮤지션이 없다.  


 다시 탑밴드로 돌아와서, 동어반복이지만 탑밴드에서는 시대 대중음악의 트렌드에 맞는 '희소가치'를 보는 사람은 그나마 신대철 한 명이고 다들 '베이직'을 본다. 그래서 안 된다. 물론 '베이직'과 '희소가치'를 동시에 극한으로 채우는 국카스텐 같은 괴물이 나타나서 우승을 한다면 다른 얘기지만 아직까지 예선을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슈퍼스타k4에서 윤종신이 빠진다는데 그렇다면 이제 포스트 버스커버스커나 투개월, 존박이 나올 확률은 더 줄어드는건지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음악 스타일은 달라도 '현재진행형' 뮤지션인 싸이가 윤종신의 자리를 채운다는 건 바람직하고도 똑똑한 선택이다. 그래서 슈퍼스타k4는 기대가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지 않기도 한다.


 결론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 문제많고 특히 탑밴드2 심사위원들 좀 갈아엎으라는 거. 이 심사위원 라인업과 심사기준으로는 검정치마나 페퍼톤스 같이 인디계의 아이돌 같은 애들이 무명 때 나왔으면 예선도 통과 못했을 것 같다. 마치 버스커버스커가 슈스케에서 처음에 탑11에 들지 못했던 것처럼. 포스트 국카스텐을 뽑지 못한다면 포스트 검정치마 포스트 언니네이발관이라도 발굴해내야 할 것 아닌가. 음악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에 대한 슬픔은 이제 면역이 됐으니, 거 이왕 하는 거 잘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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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음악 소망상자에 예전에 넣어둔 노래들을 가끔 다시 듣곤 한다.이 노래도 그 안에 있었다. 3년 전쯤 넣어둔 모양인데 처음듣는 노래같았다. 아마 소망상자에 넣을 때도 그랬겠지만, 역시나 꽂혔다. 노래가 조금 짧은 게 아쉬울 정도로 좋다. 


새벽 세 시쯤 누군가 전화 너머에서 불러주는 노래 같다. 그런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열 다섯살 때였나 ㅎ오빠가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려고 하려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한데 아마 오그라들어서 거절했던 것 같다. 사실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 노래를 불러주면 좋기보다는 어쩔 줄 모를 것 같지만, 그 상황을 막연히 생각만하면 로맨틱하다.  


소중하고 반짝이는 순간이 떠오른다. 다시는 받을 수 없을 그 전화도. 


 



너무 좋아 이성을 잃은 상태이므로 리뷰는 이성을 찾고나서 차차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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