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음악 소망상자에 예전에 넣어둔 노래들을 가끔 다시 듣곤 한다.이 노래도 그 안에 있었다. 3년 전쯤 넣어둔 모양인데 처음듣는 노래같았다. 아마 소망상자에 넣을 때도 그랬겠지만, 역시나 꽂혔다. 노래가 조금 짧은 게 아쉬울 정도로 좋다. 


새벽 세 시쯤 누군가 전화 너머에서 불러주는 노래 같다. 그런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열 다섯살 때였나 ㅎ오빠가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려고 하려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한데 아마 오그라들어서 거절했던 것 같다. 사실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 노래를 불러주면 좋기보다는 어쩔 줄 모를 것 같지만, 그 상황을 막연히 생각만하면 로맨틱하다.  


소중하고 반짝이는 순간이 떠오른다. 다시는 받을 수 없을 그 전화도. 


 



너무 좋아 이성을 잃은 상태이므로 리뷰는 이성을 찾고나서 차차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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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는다는 건 지금의 나에게는 정말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일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고등학교 동창이 올린 그 애의 아이 사진을 보고 벙쪘다. 벌써 걸어다니더라고...근데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도 내 나이 때 언니가 걸어다니고 있었어. 


어디 가면 자식 안낳을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 집에서 그 말을 하면 엄마가 "너처럼 애 좋아하는 애가 어디 자식 안낳고 배기나 보자."라고 말씀하시는데 일단 지금으로서는 진심이다. 물론 애들을 엄청 좋아해서 그에 얽힌 일화도 엄청많지만...아이 사랑은 조카 사랑으로 해줄거라고 다짐하고 있다. 빨리 조카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 애는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자기 엄마 아빠랑도 못하는 모든 얘기를 이모랑 나누는 사이가 될 거야. 꼭 그렇게 될테다...


아이를 안낳을 거라고 다짐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한 입 먹고 살 정도의 돈은 무슨 일을 해도 벌 수 있을 테고 많이 못 벌어도 나는 그냥 그 정도에 만족하고 살면 되는데, 아이가 생긴다면 그럴 수 없게 된다. 아이는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게 아니니까 내 가난을 그 애가 나랑 같이 감수할 이유는 없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가난해서는 안되지. 특히 가난하지 않을 방법이 있는데도 나 살고싶은대로 살겠다고 가난하게 살면 그건 무책임한 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 위해서 기꺼이 가난할 각오가 된 나한테 그건 좀 가혹한 일이다. 


결국 돈 때문에 애 낳기 두렵다는 말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식이 생긴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잘 키우고 싶은데 내가 그럴 역량이 되는지 인격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긴 말 하기 싫어서 왜 애 낳기 싫냐고 질문 받으면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고 짧게 대답한다. 그게 어쩌면 더 진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인격이나 역량이 자식의 행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아이를 잘 키우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어서 아이를 낳기가 두렵다. 나중에 정말 좋은 사람 만나서 '이 사람과 함께라면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고 자신이 없다. 그리고 만약에라도 준비가 덜된 나 때문에 내 자식이 불행하다면 나 자신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일 것 같다. 그래서 아이를 만약, 정말 만약에 낳는다 해도 인격적으로 좀 내 자신이 성숙해진 다음에 낳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사실 부모님의 영향도 조금은 있다. 우리 언니는 엄마 23세, 아빠 22세 때 예기치 않게 생긴 그런 아이였고. 나는 엄마 29세, 아빠 28세 때 생긴 아이였다. 역시 나또한 원치 않은 아이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우리 부모님의 교육은 언니 때와 나 때가 너무 달랐다. 사실 우리부모님이 나를 키울 때처럼만 내가 나중에 자식을 키울 수 있다면 반쯤은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니를 키울 때처럼 자식을 키운다면 그건 아닐 것 같다. 이건 우리 엄마가 EBS 교육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울면서 당신 입으로 먼저 이야기한 부분이다. 언니한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고. 첫 아이를 키울 때의 시행착오는 많은 부모가 겪고 특히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더하다고 한다.    


언니는 첫 아이라 많은 기대를 받았고 특히 예기치 못한 결혼이 양가의 반대에 부딪혀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낳게 된 아이였기 때문에 양가 부모님에게 '증명'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라도 잘 자라야 했다. 엄마의 창창한 청춘이 언니 때문에 펴보지도 못한 채 사라졌고 엄마는 그 청춘을 언니에게서 회수하고 싶어했다. 엄마 아빠 특히 엄마가 언니에게 얼마나 집착했을지 보이는 배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어렸을 때 집안을 생각해보면 언제나 엄마와 언니가 싸우고 있는 풍경이 떠오른다. 그런 데 비해 언니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집안 풍경은 언제나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있는 풍경이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된 아빠는 철이 없었고 그래서 책임감도 없어서 엄마랑 매일 싸웠다. 그게 어린 언니한테는 어떤 영향을 줬을까. 더 어렸을 때 아빠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아직 군인이거나 대학생일 때는 엄마가 돈을 벌어야 했기에 언니는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자랐고. 가끔 언니에게서 그 시절 생겼을 그늘이 보일 때가 있는데 자매지만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커서도 우리 자매는 확연히 다르게 자랐다. 난 별 기대를 안받고 자랐다. 가끔 그게 좀 서운할 때도 있지만. 내가 언니보다 공부는 좀 더 잘했었는데도 부모님은 나한테는 별 기대가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나에게 가진 교육방침은 언니와는 정반대였다. 언니는 공부에 애초에 재능이 없었는데도 과외를 붙여줬고 문제집을 사다줬고 성적표를 확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학에 간 후에도 지금의 직업을 알아보고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곳에까지 엄마가 직접 보내서 결국 언니를 지금의 직업까지 도달하게 만들었다. 중간중간에 언니가 하고 싶다던게 없었던 건 아닌데, 내가 아는 것만 해도 한 서너개 된다. 언니의 바람은 다 반대의 벽에 부딪혔었다. 실업계 고등학교 가겠다는 것도, 고등학교 자퇴하겠다는 것도 벽에 부딪혀. 알바해보고 싶다는 것도 못하게 해. 뭐 스튜어디스 요리사 유학 등등 그 이후 언니의 꿈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다 부모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엄마는 언니에게 끝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했었다. 


나에 대한 교육방침은 아예 반대였다. 어렸을 때 언니에게는 전과를 사줬었으면서 엄마는 무슨 교육방침의 변화였는지 나에 대해서는 그 흔했던 전과금지의 교육방침을 택한다.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엔 전과 한 번 못보고 아주 창의적으로 숙제를 해갔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원에서 부모님이 도와줘야 하는 무슨 숙제를 내곤 했었는데 그걸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해주는데 우리엄마는 절대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 "니 숙제는 니가 해야지" 라는 방침이었다. 학원도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내가 알아봐서 다녔다. 다른 애들이 어디 학원을 다니나 보고 집에와서 거기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주는 식이었다. 내 성적표는 내가 보여주기 전에는 나온 줄도 몰랐고 그래서 오히려 나는 평생 성적표를 숨겨본 적 없이 내 손으로 꼬박꼬박 보여주곤 했다. 외고도 내가 외고입시 학원 친구들 따라 갔다가 이거 하겠다고 해서 준비하게 됐고. 학교는 내가 가기 싫은 날은 안 가도 됐다. 부모님이 나한테 욕심냈던 유일한 순간은 고1 말에 이과 문과를 나눌 때 였는데 그 때까지 나에 대해 아무 말이 없던 아빠가 이과를 갔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던 거였다. 이과에 가서 의대에 갔으면 좋겠다고. 그게 부모님이 나에게 가졌던 유일한 욕심이었다. 나는 나한테는 아무 기대도 없는 줄로만 알았던 부모님이 나에게 기대한다는 사실에 들떠서 어떻게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고 그래서 재수까지 했다.


재수를 실패하자 처음으로 나에게 가졌던 기대마저 사라지신 듯 했다. 그 때부터는 정말 '내놓은' 자식이 됐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고나서 과학학원이랑 재수 학원은 엄마 아빠가 알아봐줬었는데, 내 인생에 드문 날들이었다. 근데 그게 끝나자 나에대한 기대도 끝이었다. 엄마 아빠는 기대를 놓아버리고 "그럼 그렇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모드로 또 돌변. 이 때 내가 별 생각을 다하다가 반대를 무릅쓰고 나 작곡과 입시 준비하면 어떻겠냐고 묻자 너무도 흔쾌하게 "그래. 하고 싶은 게 그거면 해. 학원 보내달라면 보내줄게." 하던 엄마가 생각난다. 뜬금없는 작곡과 입시 했다가 삼수마저 실패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여유로우셨을까. 뭐 덕분에 삼수 커리큘럼도 내가 짰고, 도서관도 내가 다닌다고 다녔고, 학원도 내가 알아봐서 알아서 시험쳐서 갔다. 학원은 도서관에 박혀있느라 접수날짜를 까먹고 놓칠 뻔 했는데 가까스로 접수해서 갔다. 학원에 들어가서 문과로 옮기고 전국 몇등 하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들고와서 내가 한시간 정도 "이 정도로 계속하면 서울대 갈 수 있대!" 하면서 옆에서 붙잡고 쫑알쫑알 말을 해야 겨우 "와 정말? 수고했네." 하는 부모님의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수험생 기간에 스트레스 받아서 히스테리라도 부릴라치면 언제나 엄마는 "대학 가도 너인생 못가도 너인생이지 우리랑 별 상관도 없는데 왜 우리가 니 일로 스트레스 받아야 돼." 라는 말을 즐겨하셨다. 언니 고3 때 마루에서 TV도 못보던 시절이 오버랩됐다. 내 수능 전날에 우리 가족은 황금어장을 보면서 셋이 깔깔대고 있었다. 대학 원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삼수 대학원선데, 내가 고민을 할 때도 "너 대학인데 너가 알아서 써야지. 가고 싶은 곳으로 써." 하는 정도였다. 친구들이 거의 다 첫째라 이런 부모님이 특이한 편인데 부모님은 내가 삼수 때 어디대학 무슨과를 썼었는지 아마 지금도 잘 모르실거다. 심지어 내가 그 당시 Y대와 K대 사이에서, 그리고 Y대에서는 사회학과와 신문방송학과 사이에서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몇날며칠 계속되는 고민에 지겨웠는지 엄마가 "난 너가 이대정도만 가도 만족이야 사실. 니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그 대학들은 그 중에 어디대학 어디과라도 상관없어. 그냥 니가 볼 때 다 떨어지지만 않을 정도로 쓰고 싶은 대로 써." 라는 말씀을 남겼다. 난 그 말이 나한테는 정말 기대없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속상해서 울었지만.


대학에 와서도 나와 언니에 대한 부모님의 교육방식은 여전하다. 언니는 서른이 다 된 지금도 외박이 자유롭지 않은데 나는 그냥 "밖에서 자고 갈게." 한 마디 미리 하면 된다. 스물 여섯이었나 일곱 살 때 언니가 돈을 다 모아놓고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했었는데 엄마 아빠가 어딜가냐고 위험하다고 못가게 해서 언니는 못갔었다. 그런데 난 이번 여름에 혼자 37일동안 유럽에 간다. 허락을 맡고 말고 할 과정도 딱히 없었다. 이렇게 자유로운 대신 대학 때까지 알바를 못하게 보호받았던 언니와는 달리 나는 알바를 '장려' 심지어 '강요'받는다. 심지어 아빠가 반대할 줄 알고 "나 새벽 DVD방 알바해도 돼?"라고 넌지시 물었는데 아빠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너 하고싶으면 하는 거지."라는 대답을 해서 충격 받았었다. 공장 알바도 하고 싶으면 하라했다. 어디 가서는 아빠가 못하게 해서 빵공장 알바 못했다고 하지만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 지키기로 하는 말이다. 내놓은 자식인 거 티나는 건 여자애가 열두시 넘어도 집에서 전화 한 통 안 오는 걸로 됐지 뭐...빵공장 알바는 집에서 너무 멀어서 못했다. 언젠가부터 내 결정에 대해 부모님에게 묻는 게 의미없는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근데 나에 대한 부모님의 이런 교육방식이 살면서 많은 경우에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언니에게했던 교육방식보다 좋은 것 같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아줌마처럼 학원 안알아봐주지. 대학 원서 써야하는데 경쟁률 안알아봐주지. 내 성적표에 관심 별로 없지. 이렇게 고민했던 세월이 길었는데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지나보니 안 그래도 괜찮았네 뭐 싶다. 언니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못하고 부모님의 기대대로 살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있다. 난 그런 게 거의 없다. 대부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으니까 뭐. 그리고 언니는 지금도 뭐든 혼자서는 잘 못한다. 그래서 나를 잘 데리고 다닌다. 유럽여행도 가고싶은데 혼자는 무섭다고 나보고 같이가자고 했다. 근데 난 혼자 가는 게 좋아서 거절했고. 혼자 못하는 거 별 상관 없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언니면 좀 불편할 것 같다. 언니는 외로움도 많이타고, 자기가 응석도 많은 편이라고 하는데 타고난 성격차이도 있겠지만 교육방식의 차이도 있었을 것 같다. 저런 성격때문에 언니가 힘들어하는 걸 볼 때면 좀 안되어보일 때가 있다. 뭐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님 특히 엄마한테 받은 스트레스의 양은 언니와 내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고. 


결과적으로 부모님의 교육방식이 언니에 대한 방식보다 나에 대한 방식이 더 좋았다는 건, 내가 언니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내가 언니보다 자라는 과정에서 덜 상처받고 좀 더 행복하게 자란 건 맞는 것 같다.


지금 또 나의 진로문제가 코앞인 상황에서 내가 진로가지고 고민하면 부모님은 또 "너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씀하신다. 방송국 아니면 안돼 신문사 아니면 안돼 라고 지정해주면 또 소처럼 그 지시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된 나이건만 그런 지시따윈 절대 없다. 부모님이 내 학점 모르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고 학사경고를 받아도 등록금 낼 학기가 한 학기 연장되지 않는 한 별 관심이 없으실거다. 그리고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해도 내가 어차피 대출로 해결할건데 어쩌고 하면 바로 그래 하고 마실 분들. 


언젠가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언니한테는 저렇게 해놓고 나한테는 이렇게 해? 라고. 그랬더니 엄마 대답. 


"너희 언니는 내가 첫 애고 하니까 욕심이 컸지. 그래서 걔를 힘들게 했고 나도 너무 힘들었고. 근데 너는 별 욕심도 없었고 욕심부려봤자 안 된다는 것도 알아서 그렇게 안했지. 그리고 너희 언니는 내가 주장하면 결국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데 너는 어차피 내 말 안들으니까 포기했어."  



아. 저 말 듣고 생각해보니 무조건 냅둔다고 그것도 다가 아니네. 내버려두면서 삐뚤어지지는 않게 자식을 키우는 방법은 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버릇 없을 때는 나도 엄청 맞고 자랐는데 (언니는 버릇 없을 때 말고도 성적표 숨겨서 늦게 들어와서 어째서 저째서 참 많이도 맞고 자랐다.) 그래도 그렇게 맞고 자라서 이렇게 '전과' 없고 상식적 수준의 양심 정도는 가진 성인이 된걸까? 체벌은 절대 좋은 교육방침이 아닌 것 같은데, 답은 체벌뿐일까? 맞지 않고 자랐다면 내가 좀 막장이 됐을까? 뭐 역시 결론은, 자식을 낳아서 키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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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색이다 

패션에 대해서도 회색 
영화취향도 회색  
정치적성향도 회색
대학 오기 직전에 아빠한테 아빠 신방과는 어떤 과야 하고 물으니
아빠가 응 거긴 회색분자들의 과야 라고 대답했었다
그때는 발끈했었는데 다녀보니 맞는 말이다
신방과는 회색과다
회색인 나는 잘 찾아왔다 
나랑 친한 친구도 회색인데 
그 애랑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제일 자주 쓰던 우리의 유행어 두개는 바로
"과연 그럴까"랑 "그것도 맞아" 였다
이 얼마나 회색스러운 말들인가
때에 따라 진한 회색일 때도 연한 회색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평생 회색이겠지
회색이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회색
회색이다
흰색에게는 거멓다고 욕먹고
검은색에게는 하얗다고 욕먹는 
회색

유채색이었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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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늠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존중하는 거라는 내 말에

나를 설득하던 친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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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히 일어나서 
돈까스를 튀겨서 
내가 사랑하는 케이지비레몬과 함께 아점을 먹었다
한 지 41시간 된 밥이긴 하지만 한 그릇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반찬 다 만들었는데 밥통에 밥이 없으면 눈물나
어제 도착한 선거공보를 읽으면서 밥을 먹었는데
녹색당 홍보지가 감각적이었다 본받아라 진보신당 내가 갈등하잖아
 
오디오에는 그저께 산 서울서울서울 컴필레이션 씨디를 엄청 큰 소리로 틀어놓았고 
돈까스를 튀기면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처음 샀을 땐 아오 얘네 노래 대충만들었네 내 이만천원! 하면서 욕했는데 듣다보니 그냥저냥 들을 만 하다   
기름을 아끼지 않고 마구 부어댔더니 완전 바삭한 돈까스가 만들어져서 정말 맛있었는데 하도 많이 튀긴 덕에 금이와 곤지도 포식했다  

임장현은 새벽 한시 사십구분에 밴드가 해체됐다고 싸이 쪽지만 한통 띡 보내놨다 얜 또 뭔가 C의 말대로 잘생긴 이향익에 대한 임장현의 열등감이 밴드의 분열을 만들었을까 하고 고민하다 검색해보니 이향익이 교통사고로 못일어나고 있다네 미안해 오해해서...빨리 낳아요 새로운 음악을 낳아요 

7시 반쯤에 S랑 C가 우리집에 와서 셋이 낚시를 가기로 했는데 S가 학교에 차갖고 갔다면서 지 학교 끝나자마자 우리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럼 한 여섯시쯤 온다는 소린데 얼마 안남았다 
우리집에서 밥먹고 낚시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집에 밥이 없어서 내가 이제 해야하고 애들 오기 전까지 씻기도 해야한다는 것

하면 되지 그게 왜 문제냐 싶은 건
오늘까지 기획기사가 마감이라는 사실
그리고 난 방금 아이템을 바꿨고(원래 아이템도 하나도 취재 안한 터라 아쉬울 게 없음), 취재 안하고 가상의 에이씨 비씨를 만들어서 기사써야할 판이라는 거다 
근데 세 시간째 기사는 한 자도 안쓰고 낮술이나 마시며 현실도피하다가 카톡 그룹채팅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교수님을 욕하고 있다 
우리도 이 사태를 초래한 건 교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게으름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간지 기자라 너무 여유가 없으신 건 아닌가요 교수님 기획기사라매요 일주일이 뭡니까...
주간지 출신 이윤삼 교수님을 본받아요  

친구새끼란 놈이 "야 너 동정을 구하고 있지만 사실 괜찮지?" 라는 뻘소리를 해대서 그런가
괜찮은 것도 같다 사실 모르겠다 

낮술 먹고 제정신 아니라 그런 것 같기도하고.

이 와중에 아빠를 찾는 빚쟁이 아저씨들이 집에 급습
아빠없다고 없다고 없다고요!!!!!!!!!!!!!!!!!!!!!!!!!!!!!!!!!!!!!!!!!!!!으어 뭔가 소설같은 하루네 
아빠는 우리은행에게 난 kt에게 쫓기고 있다 핸드폰 요금 미납해서 매일 정지해버리겠다고 협박문자가 오고있어... 

다 모르겠고 
예수님이 부활해서 쉬는데 너는 대체 언제 부활할 셈인가요.
그것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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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지 못하는 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보다도 할 건지 말 건지가 더 중요한   
그런 것들이 살다보면 가끔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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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너무 많다
쉴 틈이 없어
과제 과제 과제 발제준비 조모임 과제 과제 동아리 과제

이러다 말라 죽는 거 아니겠지
이미 감기 걸리고 피부 뒤집어졌다(스트레스 때문인듯)
피부과랑 가정의학과 가봐야되는데 갈 시간도 없다
이와중에 일복터져서 알바랑 과외 스카웃 전화 왔다 개강하고 나선 구한 적도 없는데
그렇게 일자리 애타게 찾을 때는 없더니ㅠㅠㅠ그래도 돈 버는 것도 중요하니까 안할 수 없다   

힘들어서 괜히 가까운 사람한테 응석만 부리게 되네  
기사는 오늘 밤 12시까진데 언제 다쓰지

헤르미온느의 시계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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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좀 행복한 것 같다
걱정도 많고 불안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슬프거나 우울해서 우는 일이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행복해서 웬만한 화나 짜증도 참을 수 있고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동아리 오빠들도 동생들도 다 좋고
가끔 만나는 오랜 친구들은 반갑고

10이 행복의 끝이라면 7.5쯤 될까
학기가 끝날 때까지 지금만큼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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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동 그 길 아직도 지날 땐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해요
밤의 공원도 그 햄버거집도 지하상가 그 덮밥집도

이건 내 얘기도 아닌데 난 왜 이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날까
윤종신의 감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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