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유투브로 이런 저런 야구영상을 보다가 jTBC에서 올해 wbc 전에 했던 '정수근의 찾아가는 인터뷰'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정수근'하면 보통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건들이나 그의 현역시절 활약보다도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때 서세원 쇼에서 봤던 그의 재치있는 입담을 먼저 기억하는 터라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결과는... 완전 재밌었다.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이 후배인지라 반말을 하면서 편하게 대화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고 편해보였고 보통의 리포터들이 하는 인터뷰보다 선수들이 훨씬 편하게 인터뷰에 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근이 야구선수의 입장을 잘 알기에 야구선수 입장에서 때론 난감할 수 있는 질문도 편하게 잘 물어보고. 한 선수 당 두 편씩 15분 정도 밖에 되지않는 인터뷰임에도 굉장히 알차고 재미있어서 밤새 여러 선수들의 인터뷰를 몰아서 보았다. 



야구를 좋아하는 터라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다. 우리 팀은 요새 좀 잘 나가는 터라 경기 후에 수훈선수 인터뷰도 자주 있다. 하지만 요새는 수훈선수 인터뷰를 챙겨 보지 않게 된다. 우리 나라 스포츠 방송국들은 보통 수훈선수 인터뷰를 젊고 이쁜 여성 리포터가 하거나, 캐스터와 해설자가 통화하듯이 한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인터뷰를 할 때도 딱히 재미있게 인터뷰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젊은 여성 리포터가 인터뷰를 할 때는 정말 최악이다. 구장 인터뷰는 신인급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나가서 더 한 것 같긴 한데, 준비해온 질문지 읽기에 급급한 (가끔은 선수의 대답에 관심도 없어보인다.)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모습에 수훈선수 인터뷰를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해진다.



야구시청 짬밥을 좀 먹으니, 이제 그 날의 수훈선수 인터뷰를 안보고도 내가 질문지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다. "0회 타석에 들어섰을 때 홈런을 칠 느낌이 드셨나요?" "홈런을 친 공은 어떻게 노리고 친 건지." "홈런을 쳤을 때의 마음?" "요새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올해 팀이 가을 야구 할 수 있나요?" 질문이라고는 있는 질문지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말바꿔서 하는 정도? 정작 수훈선수 인터뷰를 보고 있을 응원팀 팬들이 정말 궁금한 질문을 하는 건 드물다. 선수의 대답에 따라 적절한 후속 질문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물론 그 날 그 경기에 대한 인터뷰인지라 질문이 한정될 수 밖에 없는 건 이해하지만, 그 와중에도 좀 더 재미있는 질문 한 두 개씩을 추가하면서 인터뷰를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포츠 아나운서고 피디고 그런 노력이 있는지조차 궁금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노력이 없으니까 스포츠 방송국 4개가 다 비슷한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고, 다 비슷한 야구정보 프로그램을 하는 거겠지. 프로그램을 차별화할 생각은 안하고 반반한 아나운서 얼굴로, 몸매로 쉽게 쉽게 시청률 올릴 생각만 하고.



임찬규 물벼락 사건도 이런 연장선에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어제 다저스 경기를 마치고 푸이그가 곤잘레스와 다저스 아나운서에게 파워에이드를 어마무지하게 뿌려대는 걸 보면서 내가 다 시원하고 그 경기를 이긴 선수들의 신나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는데, 한 편으로는 임찬규 물벼락 사건이 떠올라서 마음 한 구석이 싸했다. 물론 그 사건은 물을 뿌리지 말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뿌린 임찬규의 과실이지만, 경기 후 승리의 즐거운 순간에서도 아나운서 눈치보면서 물을 뿌리면 안 되는 한국 방송의 분위기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말로 인터뷰어가 정수근 같은 선수 출신 리포터였어도 경기 후 승리해서 즐거운 맘에 물뿌리는 걸 가지고 그 난리를 쳤을까. 야구 선수 무식에 감전사까지 운운하면서. 시발놈들.



애초에 야구 선수라는 사람들이 연예인들처럼 인터뷰하는 말발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런 경우엔 인터뷰어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가 아니라 다른 분야를 봐도 그렇다. 같은 사람을 인터뷰한 거라도 지승호나 김혜리가 한 인터뷰가 다른 기자들이 한 인터뷰보다 재미있고. '설국열차' 관련된 수많은 봉준호 인터뷰를 봐도 봉준호 후배라는 경향신문 기자나 익스트림무비가 한 인터뷰가 그 수많은 인터뷰 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것처럼.     



말빨 좋은 선수출신 수훈선수 인터뷰어를 정해두고 해당 인터뷰어가 인터뷰를 하면 수훈선수 인터뷰가 훨씬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구장 수훈선수 인터뷰 자체가 지금은 짬낮은 애들이 하는 거라는 인식이 좀 있어서 선수 출신이 하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식이야 바꿔 나가면 되는 거고. 은퇴한 선수들 팬서비스 느낌으로 팬들도 좋고 일자리도 제공해주고 좋지 않나. 



야구장에 여성팬들이 늘고 있다고 하고 실제로 야구장에 가도 체감상 여성 관객이 40퍼센트는 되는 것 같은데 왜 스포츠 방송국들은 야구 경기나 후속 야구정보프로그램의 타겟 시청자를 남자로만 잡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 시청률 올릴 생각이 있으면 다른 방송국과 차별화하고, 타겟을 넓혀야지. 스포츠 전문 방송국도 어느새 네 개나 되는데, 그 넷은 서로 경쟁할 의지도 없어보인다. 아이러브베이스볼이나 베이스볼투나잇야나 베이스볼S, 베이스볼워너비까지 진행하는 여자 아나운서 얼굴빼고 다른 게 대체 뭔지. (그나마 후발주자인 XTM의 베이스볼워너비가 방청객 시스템도 만들고, 워너비 문자투표도 하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다른 방송국은 그냥 의지가 없다.) 프로그램 진행이야 여자 아나운서들이 발음도 좋고 진행 전문가들이니 그대로 한다고 쳐도, 수훈선수 인터뷰나 구장 찾아가서 선수들이랑 이야기하고 노는 곁다리 코너까지 걔네가 할 필요는 없잖아. 담벼락 인터뷰니 뭐니 맨날 똑같은 화면 비슷한 내용들 이제 지겹다. 스포츠 방송국 피디들은 경인방송의 '불타는 그라운드'가 왜 성공했는지 생각좀 해봐라.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스포츠를 엄청 좋아해서 스포츠 방송을 하게 된 스포츠 덕후들처럼 보이지 않고, 스포츠 프로그램 피디도 마찬가지로 피디가 되고 싶었는데 스포츠 방송국에 입사하게 돼서 그냥 일하는 사람들로만 보인다. 매일 하는 야구정보 프로그램들만 가지고 이런 소리 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류현진과 친구들'에 낚인 거 생각나서 또 빡이...친다. 프로그램들을 진정 그 따위로 밖에 못만드나. 물론 제작 환경 상의 한계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드려는 노력들을 좀 했으면 좋겠다.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없는 건 나뿐인가. 아니 팬 입장에서 스포츠 시장이 얼마나 제대로 된 프로그램도 없는 블루오션인데...팬이 보고싶은 그런 프로그램 하나를 못만들어 주나.   



+)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인터뷰어와 선수 사이에 느껴지는 묘한 권력관계가 불편한 사람은 나뿐일까. 여성 리포터와 선수 사이의 인터뷰는, 말하자면, 섹션 티비 볼 때 김슬기나 황제성 같은 인터뷰어와 톱스타가 인터뷰할 때 느껴지는 권력관계 같은 게 느껴져서 불편하다. 선수 입장에선 '야구도 모르는 애들이 인터뷰하네.' 하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그에 비해 정수근과의 인터뷰는 그것보다는 '야구 잘했던 야구 선배'와 하는 인터뷰 같이 느껴져서 그런 권력관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보는 사람도 한결 편하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와 공감대를 가지고 정서적으로 친밀한 사람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여성 아나운서도 그럴 수 있겠지만, 여성 아나운서가 그런 인터뷰어의 역할을 위해 선수들이랑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는 건 한계가 있을테고, 사실상 불가능할테니 말이다. 




 

나는 햇빛을 좋아한다.

예전엔 어쩌다 가끔 학교에 일등으로 가는 날에는, 그 다음 아이가 올 때까지 절대 교실 불을 켜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교실에 일이등으로 도착하는 날이 많아서 자주 그랬다.

그러면 나 다음으로 온 아이는 거의 대부분 "왜 불도 안켜고 있어." 라고 말하며 불을 켰다.


해가 떠 있는데 인공불빛을 켜는 것이 정말 싫다.

햇빛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형광등을 켜야하는지.

학교 다닐 때 가끔 다같이 자자며 수업시간에 불을 꺼주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좋았다.

형광등 빛이 없고 햇빛만이 가득찬 교실에선 마음이 안정되었다.


지금도 햇빛이 잘 안들어서 조금 어두운 곳이더라도, 해가 떠있는 낮에는 불을 거의 켜지 않는다.

밤의 인공불빛을 사랑하지만 그보다 더 낮의 햇빛을 사랑한다.

햇빛 알레르기가 없어서 다행이다.


아무튼 아래 블로그를 발견해서 즐겁게 보고 있다. 

밤에도 대리만족. 


http://sunlight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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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학교 게시판을 보면서 2013년 들어서 처음으로 내가 서울대 연고대 못 간 사실에 빡침을 느꼈다. 수리 나형 6번 마킹 딱 하나만 제대로 했었어도 이런 병신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니는 일은 없었을 텐데. 대선 기간 선배들이 주도한 박근혜 당선을 반대하는 서강인 선언 덕분에 서강부심을 느꼈었는데, 그런 것 따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역시 사랑충들한테는 날 빡치게 하는 힘이 있다. 


병신들아 확실히 판결나고나서 시국선언을 하면 뭔 소용이 있냐. 판결 제대로 하고 수사 제대로 하라고 압박용으로 시국선언하는 건데.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이 시국선언 깜이 안된다면 뭐 이승만 정도는 해야 시국선언할 수 있다는 건가. 역시 사랑방은 안 들어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다들 나같은 생각으로 안 들어가서 사랑방이 저 지경이 된 걸 수도 있지만. 

 



4월 토익을 봤었는데 토익을 보러 간 학교에서 해병대를 방불케 하는 문구를 보았다. 토익은 망함. 


회사 근처 까페. 점심 먹고 갔었는데 우리한테 음료수 한 잔 사주기 아까워하던 상사의 쪼잔함을 목도했다. 상사가 자신의 아메리카노만 시켰는데 까페 주인이 세 잔으로 나눠서 줌. 내 동료는 이 사건을 후에 현대판 우동 한그릇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노동절에 고등학교 찾아가서 고2 때 담임 선생님이랑 갈비를 먹었다. 스승의 날 미리 방문. 근데 선생님은 나보다 류현진 야구에 관심이 있었다. 선생님이랑 밥 먹는데 류현진 야구가 동시에 하고 있던 터라 찬밥 신세였음. 

같은 날. 선생님이랑 밥먹고 나서 친구와 간만에 상도동 만남. 중앙대 가서 스피커로 음악 틀어놓고 캔맥주 마시며 봄을 즐겼다.

올해 첫 빙수. 회사 동료와.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동료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동료 이상의 사이다. 이제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이. 

회사 일과 도중 심부름으로 택배 부치러 성대 우체국 갔다가. 이때는 지나다니는 성대생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하지만 지금 그들은 시험기간, 나는 백수. 꺄하하. 

일요일인데도 출근했던 날. 저녁이 되어 회사 동료와 함께 홍대에서 예매해둔 공연을 보았다. 얄개들 짱짱맨. 맥주 마시며 보는 까페 공연 짱짱맨.

서울재즈페스티벌 with y. 첫날은 몹시 더웠고 둘째날은 비왔고 이래저래 날씨가 안따라줘서 너무 힘들었다. 킹스오브컨비니언스 공연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생한 기억이 강했음. 둘째날 데미안 라이스 공연은 바닥에 물퍼내면서 봤다. y는 '난민수용소 위문공연 같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흑흑. 나중엔 너무 힘들어서 '데미안 라이스 새캬 노래 좀만 불러라. 집에 가고 싶다.' 하는 상태에 이르렀음. 하지만 (내 돈에 대한) 의무감에 막곡까지 다 듣고 왔다. 

엄마가 선물 받았다면서 무안인가 신안에서 온 산낙지를 줌. 맛있었다 챱챱. 언니가 징그럽다고 안 먹는 게 좀 의외였다. 어릴 땐 분명 같이 먹었던 것 같은데...

미생 안 본 직장동료한테 미생짤 캡쳐해서 보내주곤 했었다. 둘이 맨날 공감하며 엉엉엉. 직장인은 힘든 것이었다. 직장인 친구들에게 박수를. 짝짝짝. 

가족들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힘든 직장 생활 기간동안 내게 위로가 되어준 우리 개. 가족은 소중하다.

새벽 기술시사 가기전에 맥주마켓에서. 레몬타르트랑 사이다 둘다 내가 좋아하는 것. 흐흐. 안 그래도 되는데 동료가 기술시사 같이 가줌. 고마웠당. 

직장 동료와의 마지막 만찬. 대학로 맛집 돌쇠 아저씨네~~. 양이 엄청 많았다. 남은 피자 싸가서 저녁에 술안주로 먹었음. 마지막 출근날이었는데 상사가 또 말없이 4시간이나 지각을 해서 둘이서 오붓하게 점심을 먹었다.  

같은 날 밤 마지막 만찬2 요것도 직장동료랑. 내가 벼르고 별러왔던 대학로 '인생의 단맛'. 마지막 날 결국 가게 되었다. 두 잔 더 먹었는데 그건 없음. 창의적 칵테일이라고 해서 칵테일이름들이 다 특이하다. 처음엔 '창원남친'이랑 '우주비누거품' 먹었고 두번째는 '부반장은 섹시해'랑 '빈말' 먹었다. 내가 우주비누거품이랑 빈말 먹었는데 이제 보니 뭔가 맥락이 있었네. 암튼 좋은 곳.

회사 계약기간 끝나자마자 다다음날 학교 놀러갔다. ㄱ이랑 ㅂ이랑 셋이 놀다가 ㄱ이는 시험기간이라고 학교로 돌아가고 ㅂ이랑 같이 학교 앞 이자까야에서 술머금. 냠냠. 마싯엇음. 쫌 어이없게 비싸긴 했지만. (아마도 냉동일 참치 4점, 연어 4점, 문어 4점에 15000원이라니!) 내가 사줌. ㅂ이가 두달동안 쌀국수가 먹고팠는데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서 내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고했다...또르르...

갑작스런 이사 소식에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집에 와서 며칠을 집에서 뒹굴거리다보니 상념에 젖어 내 방 한 컷. 중1 때부터 만 11년을 산 집인데. 좀 아쉽네. 창밖으로 보이는 뒷산도 이제는 안녕이구나. 

언니랑 집에서 야구보는데 언니가 편파해설 들으려고 누르다가 발견하고 소리지름. 김동훈 기자님ㅋㅋㅋ놀라서 바로 연락했음.익숙한 목소리로 해설을 들으니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날도 야구 이겼다.

회사일 끝내고 본격 집잉여생활 시작. 집잉여생활 동료들. 아침에(는 사실 오후) 자고 일어나면 양쪽에 한마리씩 자고 있다. -.-;;

또 신촌 놀러감. 대학원라이프에 찌든 ㅌ이랑 홍대에서 술먹음. ㅌ의 소개로 가게된 홍대 호시탐탐이라는 곳인데 좋았다. 술 잔뜩 먹고 싶었는데 같이 진탕 술먹을 사람이 없어서 내가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 난 언제나 꽐라가 될 기세로 술을 먹곤하지. 헤헤. 그래도 이 날은 자제함. 

잉여생활하면서 올시즌 하나도 못봤던 엘지 야구 하이라이트를 몰아서 다봤다. 6월 2일 경기는 진짜 너무 짱이어서 하이라이트를 5번은 본 것 같다. 이미지엔 표시되어있지 않지만 15, 16일 경기도 모두 이겼다. 감동적이다. 근데 언제 DTD할지 모른다...

향음악사 가서 음란소년 음반 샀다. 뭐 우리나라 건데 14500원이나 해.ㅠㅠ 8곡 든 주제에. 그래도 샀츰...대학와서 3년동안 열심히 모았던 향음악사 포인트 한 번에 다 써버렸다. 잉잉. 3월인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좋아했던 음반인데 신촌갈 일이 없어서 못사다가 샀음. 몇 달동안 들어도(유투브로ㅠㅠ) 안질렸었는데 씨디 사서 몇 번 들으니 쫌 질렸당. 그래도 요새 발정나있어서 그런가 노래가 내 맘 같아 좋네요...

주말엔 직장인 ㄴ이와 간만에 만나서 샹그리아 한 잔~~. 국내 최대의 대기업 S사에 다니는 ㄴ이의 회사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라 좀 신기하다. 이상하게도 친한 친구들 중에는 얘가 최초의 직장인이다. 우린 그럴 나이가 지났는데...ㅠㅠ무튼 친구야 화이팅!!! 둘이 개그치다가 쓰러질 뻔 한 날. 웃겨죽을 뻔 했다. 

이사갈 집 청소하러 갔다가. 저 멀리 한강이 보이긴 하네요...이거 보고 웃겨서 친구들한테 "야 엄마 말대로 한강이 보이긴 보여..."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부럽다는 반응이어서 당황했음. 그래도 집 앞이 한강공원인 건 좋다. 여름방학동안 보드 기술을 익혀보겠습니다.

잉여생활하면서 오로라공주 다봤다. 꿀잼... 발시려워서 곤지를 발쿠션으로 이용함. 곤지는 '이새키가 또 왜이래'하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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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다큐페스티발 2013에서 보게 된 '아버지의 이메일'. 주위에서 평이 좋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봤다. 그리고 영화는 내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다.



영화는 소재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가족들과 딱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컴퓨터를 배워 둘째 딸에게 42편의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충분히 보고싶다. 영화감독인 둘째 딸이 아버지의 이메일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건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정도로, 아버지의 이메일은 매력적인 소재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이메일을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이메일 자체가 영상화하기 어려운, 활자들이기도 하고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을 영상화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테다. 애초에 영상화하기 어려운 소재라는 이야기다. 거기에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구구절절하게 세상에 드러낸다는 것도 그리 쉬운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중간에 감독의 어머니가 둘째 딸인 감독과 이야기하다가 드러난 과거의 상처를 감당하지 못하고 "더 이상 이런 거 안물어봤으면 좋겠어. 니 언니한테도 괜히 아픈 상처 끄집어내지 말고." 라고 말하는 장면은 감독과 감독의 가족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듦으로써 짊어져야만 했을 무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는 아버지 개인의 삶이 우리 나라의 현대사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한다. 열네살 나이에 인민군이 싫어 목숨을 걸고 월남했던 아버지는 6.25를 겪고, 베트남 전쟁에 일하러 가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일하러 가고, 88올림픽 자원봉사를 하시고 말년에는 평생 살던 집의 재개발 문제에 투쟁하시다 돌아가신다. 그야말로 아버지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6.25 때 실종된 처가의 두 처남이 전쟁 전에 보도연맹 활동을 했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낙인찍혀 원하던 외국이민을 가지 못했던 아버지는 반평생을 아내를 원망하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술만 마시며 우울증을 가진 채 살다가 세상을 떠나신다. 영화는 우리 나라의 현대사가 한 가정에 미친 영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사회의 흐름 앞에 한 개인과 가정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 속 아버지가 특별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내 외할아버지는 1920년대 생이셨는데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삶을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할 정도로 내 외할아버지의 삶도 우리 나라 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 하는 삶이었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집이나 사연 없는 집이 없는 그런 시대가 우리나라의 1900년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엄청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고, 때문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기 보다는 아버지 개인과 이 가정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보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눈물도 많이 흘렸다. 현대사와 아버지의 삶 사이의 연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눈물보다는 한숨이 더 많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아버지 개인과 가족들에게 맞추어 영화를 봤고, 그러다보니 내 가족과 부모가 생각났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동안 꽤 많이 울고 말았다.



다큐멘터리 속 아버지는 내 기준에 굉장히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일찍이 영어를 배워 미군부대에서 일을 했고, 전쟁을 겪고도 돈을 벌러 베트남에 갔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갔고, 88올림픽 자원봉사를 했으며, 운송회사에 경비일까지. 심지어 일을 하지 않아도 됐을 노년에는 지역 복지관까지 다니시며 인터넷과 포토샵까지 배우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참 운이 없었다. 아버지의 불우한 가정사는 그 시절 모두가 하나씩 안고 있던 것이라고치더라도, 그 이후의 삶도 굉장히 운이 없었다. 아버지가 베트남에 갔을 때 베트남 전쟁은 끝물이었고, 처가는 '빨갱이 집안'으로 몰려 이민의 꿈도 무너졌다. 힘들지만 열심히 해보려했던 운송회사에서는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치어 감옥까지 갔다. 이쯤되니 우리 현대사의 굴곡도 굴곡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지지리도 운 없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고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보려했던 아버지가 일련의 좌절들을 겪으며 우울증에 걸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강한 사람이었어도 다큐멘터리 속 아버지의 삶을 살았다면 아버지만큼은 살 수 있었을까. 돌아가시던 해에 컴퓨터를 배워 딸에게 마흔 통이 넘는 이메일을 써내려가던 아버지의 마음이 정말 와닿아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삶. 아버지는 가족 중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둘째딸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마지막 말을 건네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메일에서 당신을 용서하라 말씀하셨지만, 실은 이해받고 싶었던 것일 거다. 



내가 만들었던 영화의 주제 중 하나는 '세상에는 오해가 아주 많은데, 오해는 오해를 풀려는 마음, 그것이 혹여 아닐까 의심하는 의지가 없으면 절대 풀리지 않는다.'였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이 가족이라 할지라도)에게 관심이 없고 혹시 오해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오해를 푸는 것을 주저한다. 불편함과 대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당신의 이야기를 건넸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가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GV에서, 감독은 감독의 언니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감독의 언니는 영화 속에서 내내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이고, 아버지를 이해하려하지 않고, 동생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딱히 탐탁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언니에 대한 그런 묘사 때문에 둘째 딸인 감독도 언니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감독의 언니도 이해가 갔다. 첫째 딸은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의 좀 더 직접적인 피해자였으며, 아버지의 정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심지어 아버지의 이메일조차 본인은 받지 못했고, 동생이 받은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애초에 첫째 딸과 둘째 딸 사이의 포지션 차이도 포지션 차이지만,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언니가 취한 입장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관객으로서 나는 언니가 아버지를 용서는 못해도 이해는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뉴스를 보다보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저 그 사건 자체가 안타까운 사건들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그런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다. 누가 잘못했고 잘못안했고 할 것 없이 그냥 가족들 모두가 안타깝고 슬펐다. 영화 속의 가족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행복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짜증나는 일들이 한꺼번에 겹쳐서 일어났다

그 때 네이트온에 접속했더니 무심하게도 오빠생일알림이 떴고 그 시점에 정말 모든 게 폭발해버렸다

실은 오빠 진짜 생일도 아니라 가짜 생일인데 말이다

진짜 생일이었다면 아련했겠지만 가짜 생일이라 짜증만 났다

페이스북이랑 카카오톡을 지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한테 문자로 연락이 왔다

용건 없는 연락을 안해도 돼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시나리오 아이디어 녹음하려고 몇 달만에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켰을 때

핸드폰에 오빠와 한 통화기록이 십분쯤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당연히 들을 수 없었지만 지울 수도 없었다 

이런 나 자신한테 너무 자괴감이 들어서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꾸 도망치고만 싶어진다 


아침에 나라가 우리집에 와서 같이 삼겹살을 먹고 뒹굴거리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일어나서 피시방에 갔다 

롤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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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음악은 한결같이 좋다. 내가 소년취향이라 그런가? 재주소년 음란소년 20세기소년 굴소년단 모두 좋다. 가자미소년단만 들어보면 되겠구낭.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영화를 보는 일은 내겐 흔한 일이 아니다. 언제나 봐야하는데 보지 못한 영화가 쌓여있기 때문에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간만에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보게된 영화다. 그 유명한 탕웨이 전화하는 사진이 이 영화 속 장면이라는 걸 알게되고나서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여차저차해서 보게됐다. 


영화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감성이었다. 2010년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촌스러운 연출, 가족 드라마 같은 느낌의 내용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주인공 아라이의 꿈이 나타날 때마다 화면이 흐물거리고, 장면 전환도 윈도우 무비메이커에도 있는 '왼쪽으로 화면 사라지기' 같은 보통의 상업영화에선 쓰지 않는 기능이 여과없이 쓰였다. 2010년에 이런 영화 연출이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리듬은 느린 편이고 그래서 좀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아라이의 엄마와 이모가 꽤 주요한 역할인데 그런 면에서 홈드라마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고. 하지만 순수한 탕웨이의 모습이 꽤나 예뻤다. 탕웨이의 활짝 웃는 모습이나 전화 받는 모습 등은 여자인 나도 정말 반할 정도였다. 남자들한테는 탕웨이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될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지루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의 캐릭터들이 살아있어서 좋았다. 그중에서도 탕웨이의 놈팽이 남자친구 아쉬 캐릭터에 정이 갔다. 아쉬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폭행 사건을 자주 일으켜 감옥에 다녀오는 탕웨이의 양아치 남자친구다. 자기도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탕웨이를 놔주는 역할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었다. 꼭 아쉬처럼은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조차 자제할 수 없는 나쁜 점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고 또 그런 점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이유가 되는 경우도 살다보면 종종 생기니까. 주변 인물인 아쉬에게 이입돼서 주연인 아라이와 아이렌이 이루어지기를 별로 바라지 않았었는데...이건 일반적인 감상은 아니겠지. 


아쉬 말고도 아라이의 무기력한 캐릭터도, 부모 없이 외삼촌 아래서 자란 아이렌 캐릭터도 꽤나 현실적이었다. 아라이의 엄마 캐릭터는 현실적이되 딱히 정이 가진 않았지만. 


영화를 다 봤는데도 여러가지 미스터리가 남는 영환데, 아라이와 아이렌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설정에 맞춘 의도된 것인지, 그냥 영화 만들다보니 어쩌다 그렇게 된 포스트모던적인 설정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지만(궁금해서 인터넷 찾아봤는데도 별 말이 없다.) 그런 설정이 이 영화만의 특징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꼬아 생각하면 좀 유치한 것 같기도 하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인도인 미스터리 (-.-)



그래도 요새 쏟아져 나오는 많은 사랑 이야기들이 드라마고 영화고 할 것 없이 꽤나 비현실적인 우연에 기대어 인연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소개팅이라는 현실적인 시작과 친구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발전해나가는 구성은 참 현실감있고 좋았다. 




모두 잠들어 있는 아침에 맡는 밥냄새는 황홀하다. 예약된 시간에 맞추어 밥을 하는 전기밥솥의 부지런함에 괜스레 고마워진다.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건 실은 큰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인간성을 찾을 수 없을 듯한 그 어느 곳에서도 결국은 인간성을 찾아내고야 만다. 엄마가 아궁이 앞에 앉아 졸면서 하는 가마솥 밥냄새가 아닌, 전기밥솥의 밥냄새에도 황홀해지는 나처럼. 사람을 마주하지 않는 소통이 사람을 마주하는 소통보다 몰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그 아무도 몰인간적인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 건, 사람을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소통도 인간적이라는 반증이다. 결국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완벽하게 몰인간적인 사회는 SF영화 속에나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인간에 대해 품고 있는 희망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았다. 고등학교 때 집에 DVD가 있어서 본 '스몰 타임 크룩스' 이후로 우디 앨런의 영화는 처음 보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작년 여름에 나는 진짜 파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영화는 처음 3분이 넘도록 마냥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여유로운 음악과 함께 보여지는 파리의 풍경은 환상적이고, 그 장면이 3분이 넘도록 지속된다는 걸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물론 실제 파리는 영화 속의 파리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오웬 윌슨은 나에게는 성룡과 함께 나오던 액션 영화의 어리버리한 인물로 각인되어있어서 영화 속에서 다른 배우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을 주지만, 역할과는 꽤 어울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뮤즈인 마리옹 꼬띠아르는 정말 분위기 있고 영화랑도 잘 어울리고. 찾아보니 파리 태생이구나. 


설정이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우디 앨런의 내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좋지만 이 내용이 소설이나 만화 같은 다른 매체로 구현되는 건 상상이 안 되고, 영화라서 좋은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작년 여름에 갔던 파리를 계속해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파리엔 5일인가 6일밖에 있지 않았지만. 내가 갔던 곳이 꽤 많이 나왔다. 시테 섬 주변의 세느강변, 노트르담 성당, 팡테온 근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에펠탑, 몽마르뜨, 파리의 여러 거리들. 얼마 전에 007스카이폴을 영화관에서 봤을 때도, 내가 갔던 런던 곳곳이 나와서 작년 여행을 떠올리며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는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여서 그런 생각이 더 했다. 모네의 작품 속 풍경과 완전히 똑같은 영화 속 정원에 못 가본 게 아쉬웠고,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서 방문하는 미술관도 내가 못가본 곳이라(찾아보니 '오랑주리 미술관') 아쉬웠다. 나중에 파리를 방문한다면 두 군데 다 가봐야겠다. 


영화의 주제도 공감이 갔다. 사람은 언제나 과거를 바라보고 미화하면서 사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산다. 얼마전엔 작년 생일이 참 행복했었다고 일기를 썼었는데, 작년 생일엔 그 때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었다. 비단 그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겪을 때는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기억 속에 남으면 언제나 행복했던 듯 남는 것 같다. 


영화 속의 주인공과 에드리아나처럼, 나도 그리워하는 시대가 있었다. 1930년대 경성에 태어나 박태원이나 이상과 함께 모더니즘을 논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1970년대 미국에 태어나 히피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했었다. 1970년대 서울도 나쁘지 않고. 하지만 지금의 시대로 훗날의 누군가는 황금 시대로 여길 시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영화를 통해 하게 됐다. (문화적으로 충분히 그럴만한 시대다.)


아무튼 영화 속의 풍경이 참 아름다워서 마음이 좋았다. 파리에 가보지 않았더라면 영화를 보고 마냥 파리를 동경하게 되었을테지. 파리에 가봤기에 영화를 보고도 파리에 다시 가고싶다 하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로 참 아름답고 좋았다. 




작년 여름 파리 몽마르뜨에서, 민성오빠 민지와 함께 마시던 샹그리아. 갑자기 기타를 맨 프랑스 남자가 나타나서 넷이 합류해서 같이 술을 마셨었지. 이 때 참 행복했었는데. 여행을 할 땐 여행이 그렇게 즐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즐겁구나. 정말로 사람은 언제나 과거를 바라보며 사는 모양이다.